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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Sep 27. 2024

마지막 담임

비가 내리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오랜만에 하릴없이 옛날 메일을 뒤적였다. 아주 오래된 편지가 눈길을 끈다. 윤조였다. 쌍꺼풀이 예쁜 윤조의 눈매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윤조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요리학원엘 꾸준히 다녔을까?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졸업장은 받았을까?

윤조는 2005년에 **중학교에서 만난 2학년 학생이다. 그 무렵엔 화장한 학생들이 없었던 때였는데 윤조는 입술에 꼭 윤기가 반짝거리는 립밤을 바르고 학교에 나타났다. 눈동자에서는 늘 눈물이 톡 떨어질 듯이 보였는데, 아이들은 그것이 색깔 콘택트렌즈 때문이라고 했다. 


윤조 엄마는 고교 때 남자 동창과 사랑에 빠져 윤조를 낳아서, 나보다 어렸다. 윤조의 집은 학교에서 멀어서, 윤조를 자가용에 태워서 등교시켰다. 윤조는 어떻게든 자주 지각과 조퇴를 했다. 그러던 윤조가 3일 동안 결석을 했고 할머니의 사망 때문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나는 그 때문에 여러 날을 애먹어야 했는데, 사망으로 인한 상고 결석은 증빙 서류가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부모와 함께 짜고 친, 거짓말을 밝혀내는 과정을 겪으면서 윤조는 엄마의 힘보다 교사가 더 강하다는 걸 인식하게 됐다. 그 후부터 윤조는 솔직하게 내게 메일을 보냈다.          


선생님..제가 지금..너무 힘들어요...몸두..마음두..
 학교생활두..너무 지치구....요즘같으면..자퇴하구싶을만큼..
 힘들어요..선생님....공부하는것두..싫어지구...
 친구들이랑 같이 어울리고 노는것두...이젠..재미두없구요...
 처음엔...집이랑..학교가 멀어서...너무일찍일어나구..그래서..
 몸이피곤하기만 했는데...지금은..그렇지가 않아요...
 마니..지쳐요...어제 엄마한테는..아파서..도저희 못일어 나겠다구..
 말씀드렸더니..하루만 쉬라고..선생님께 전화드린다고 해서..
 빠졌는데...그래서..오늘은 정말 갈려구했는데...
 용기가 샐기지않았어요... 몸두..마음두 다지친데..
 학교가면...공부두안될꺼같구..괜히..애들한테 짜증만낼꺼같구...
 그래서..갈수가없었어요...공부시간에..딴생각만하구...
 그리구..안그래두..집에들어오는게..감옥같아서싫은데...학교나가면..혼자..방황하구..
 돌아다닐것만같구....그래서..아에집밖으루..나가기가싫어져요...
 제가...생각없이..행동하는거..알아요...근데두...학교가는..
 자체가..싫어져요...ㅠ그냥 선생님께 연락안드리구...
 학교 나가버리지 말까..생각하기도했었는데...또선생님께..
 큰실망만..남길꺼같아서..제맘속에 있는생각들..고민들...말해요..ㅠ
 사춘기인것같기두하구..아닌거같기두하구...
 선생님..어떻게 해야될지를 모르겠어요..ㅠ       


         

나는 윤조를 어르고 달래기도 했고 혼을 내기도 했다. 참고 견디는 것도 배우는 거라고, 어른이 되는 건 그런 거라고, 훈계했다. 윤조는 글쓰기에 소질 있으니 조금만 더 노력해보자고, 그래도 학교는 졸업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나는 윤조에게 엄격한 담임이었을 것이다. 윤조는 겨우겨우 버티면서 2학년을 마치고 중3이 되던 봄에 자퇴했다......      


윤조의 편지를 보다 보니, 이제 서야, 아이의 마음을 잘 받아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아이가 힘들다고 할 때, ‘많이 힘들지?’ 하고 안아줄걸. 좀 더 아이의 말을 믿어주고 인정해줬으면 자퇴한 후라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을까? 어쩌면 내가 그녀의 마지막 담임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윤조의 아빠와 엄마는 회사 차의 기름을 빼서 자기 차에 넣고 다녔다. 그걸 아이 입으로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아이가 부모로부터 무얼 배울까? 걱정했었다. 아이도 거짓말을 잘했고, 그랬기에 나는 아이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 않았었다. 그러다 보니 그의 말을 그냥 수용하기보다 간격을 두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를 그녀에게 더 가깝게 하지 못하고 그녀가 마지막 담임에게서 멀어져간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이제 와 소용이 없지만, 그녀의 담임으로서 역할을 소홀히 한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자퇴 후에 보낸 윤조의 편지는 이렇다.   


       

저는여..ㅠ 목감기걸려서 목소리도 제대로안나와서ㅠ
 넘힘들어요~ㅠㅠ 히^^
 언제한번 찾아뵙고싶은데ㅠ못찾아뵙고 있어여~ㅠㅎ
 

선생님저요~^^ 4월달부터 요리학원다녀요!!!ㅎ
 그동안은 못다니도 있었어요~ㅠㅠㅎㅎ
 그래서 좀늦은만큼!!4월달부터!! 열씸히~!!다니면서~
 검정고시도 준비할꺼구요!^^ 요리 필기시험붙어서~
 실기도 정말열심히 배울꺼예요!!!^^ 학원다니면서~
 메모하는것도 차근차근 배우구요~ㅋ 저그동안..ㅠ 학교에서ㅠ
 형편없었잖아요ㅠ 공부도안하고ㅠㅎㅎ근데 제가좋아하는공부를하니까~ 기분이막 날아갈꺼같이 좋은거있죠....ㅎㅎㅎㅎㅎㅎ
 그래서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걸할때 행복을 느끼나바여~ㅎㅎ   
  


     

맞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할 때, 행복을 느낀다. 나는 윤조 같은 아이들을 가르칠 때가 좋았다. 노는 지금도 나쁘진 않지만...... 

'아아, 그때 좀 더 아이들에게 푹 빠져서 더 사랑해줄걸. 괜히 선생 노릇 하느라고 훈계하며 힘 빼지 말고! 말이다.'


지금은 윤조가 서른 중반인 어른이다. 그녀는 그렇게 앓던 시절을 잘 극복하고 멋진 요리사가 되었을까? 마지막 담임은 잊었겠지만, 어디서든 그녀가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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