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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브봉봉 Aug 31. 2023

너가 건강하다면, 그걸로 너의 몫은 다한거야.


아이는 엄마를 성장시키기 위해 온 존재라는 말을 하죠?

정말 그렇다는걸 매순간 느끼고 있어요.

다양한 상황 속에서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그리고 엄마 이전에 한 사람이자 어른인 내가 선택해야 하는 선택은 무엇일까? 에 대해 늘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언제나 저의 선택이 옳을 수 없겠고, 그 선택으로 인해 아쉽고 돌이키고 싶을 때도 많겠지만

그렇기에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거라 믿어요.

최근에 아이 자체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요.

저를 한뼘 더 성장시켜준, 일화 하나를 소개해드려요.






1.

어제 오후는 말이죠, 기분 좋은 날이었어요.

학교 동료 중 누군가 저에 대해 칭찬을 해주었다는 말을 전해들었거든요.

누군가에게 인정 받는다는건 참 기분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이것말고도, 하원길에 불었던 선선한 바람과 아이들과 함께 사먹은 아이스크림이 좋았어요

미술학원에서 잠깐 원장님과 말할 기회가 있었는데, 원장님의 피드백도 유달리 행복했구요.



"아이들이 참 안정적이예요. 정서지능이 높다는 말이 느껴져요.

어머님은 어쩜 그렇게 아이들을 잘 기다려주세요?"

적다보니 정말 기분 좋은 날이 맞았네요!


둘째를 미술학원에 첫째와 같이 데려다주고, 집에 와서 이르게 함께 먹은 저녁도 풍부했구요.

밥 먹는 내내 둘이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요.


그렇게 잔잔하게 흘러가는 오후였어요.

둘째 미술학원 끝나는 시간에 맞춰 첫째와 함께 데리러갔어요.

문앞에 있는 킥보드를 보더니, "킥보드 타고 갈까?" 라고 첫째가 묻더라구요.


첫째는 킥보드를 타고, 둘째 킥보드도 챙겨서 나갔지요.

사고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2.

아이가 제법 빠르게 킥보드를 탔거든요.

그런데 보드블록이 깨져서 튀어나와 있는 곳에 킥보드가 걸려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어요.

넘어진건 정말 찰나였는데, 벌떡 일어나서 뒤돌아 울면서 달려오는 아이 얼굴을 보니 피범벅이예요.


여기 홈에 킥보드가 딱 끼어서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 넘어졌어요 ㅠㅠ


얼굴은 보드블록에 쓸려서 이마, 코, 입술, 턱까지 쭈욱 쓸려서 찰과상을 입었고 입안은 터졌는지 피가 철철 나더라구요.

제가 가장 먼저 해준 말은,


"괜찮아. 엄마가 바로 앞에 있어"

"다쳤으면 우리 병원에 가면 되는거야."


실은 아이에게 이렇게 말을 해줬지만, 제 자신에게 하는 말과 같았어요.

"이빨이 다쳤으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가장 컸거든요.

그런데 이 상황을 해결할 사람은 저밖에 없잖아요.


단단하게 마음을 먹었어요. 설령 이가 부러졌더라도, 괜찮다. 방법이 있을거야. 라고 생각했어요.

근처 치과에 모두 전화를 돌려 접수 가능한지 여부부터 체크했어요.


그리고 미술학원 원장님께 물 한병을 빌려서 아이에게 줬어요.


"하준아아. 피가 많이 나지?"

"물 마시면 조금 나을거야. 불편하면 피는 뱉어도 돼."


아이는 너무 아픈지 못하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면, 기다렸다가 하준이가 할 수 있을 때 한번 해보자. 엄마는 윤이(둘째) 데리고 나올게."


둘째를 황급히 데리고 나왔더니, 아이가 물로 입안을 헹궈서 뱉고 있더라구요.

피가 조금 멎은 입안을 살펴보니 앞니 뒤쪽에 이상이 있어보여요.

잇몸이 움푹 패여있는게 보였거든요.

병원으로 출발했어요.




3.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많이 아픈지 아이는 계속 울었어요.

저의 어릴적 이야기를 해줬어요.

아이들이 속상하거나, 다쳤을 때 제가 겪었던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면 아이들이 늘 안심하더라구요.

'나에게만 생긴 일'에서 '엄마에게도 생긴 일'이라는 초점 변화가 일어나며, 아이들의 마음에 한뼘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우선, 턱을 다쳤던 삼촌 일화를 말해주었어요.

"준아, 윤아. 우리 삼촌있잖아."

"삼촌도 어릴 적에 놀다가 넘어져서 턱을 다친적이 있는데, 20바늘이 꿰맸어."

"그런데 지금은 어때?"


"시간이 지난 뒤에는 괜찮아질거야."

"삼촌 지금 정말 건강하잖아!"


그리고 치과 갈때마다 제가 늘 해주는 이야기도 해줬어요.

"준아, 윤아. 엄마가 어릴 때 가장 무서웠던 곳이 치과였다는 말 기억하지?"

"이빨이 아픈데도 꾹 참고 할머니한테 이야기 안했다가, 결국 너무너무 아파서 갔더니 엄마가 황금니를 했잖아!"


"맞아. 엄마 입 안에 황금니 있어!"

아이들이 제 입안에 있는 황금이빨을 신기해해요.

치료받은 이빨이라는 걸 알면 깜짝 놀라거든요.


"우리가 아플 때 바로 병원을 가면 조금만 치료를 하면 되는데, 아픈걸 참고 참다가 가면 더 큰 치료를 받아야 될수도 있어. 우리가 지금 병원을 가는건, 그래서 가는거야.

하준이의 이빨이 어떤지 보려고, 윤이랑 엄마가 옆에 있을게."



아이는 이제 조금 진정된 것 같았어요.

마음이 안정되었는지 잠깐 잠이 들었더라구요.

아이가 잠이 들자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어요. 둘째도 그걸 느꼈는지 "엄마 이것 좀 봐봐."라고 하며 저를 부르더라구요.



신호가 멈춘 구간에 잠시 뒤돌아보니, 둘째가 병뚜껑을 한쪽 눈에 끼우곤 "짜잔!"이라고 말을 하는 거 있죠. 그 모습을 보니까 웃음이 터져나왔어요.

"윤아, 고마워. 윤이가 엄마를 웃게 해주네! 엄마가 실은 지금 조금 무섭고, 걱정이 됐거든!"

"엄마. 괜찮아."



아이에게 건넨 괜찮다는 말은, 돌고 돌아 다시 제게 왔어요.



4.

치과진료를 막상 받으려니 아이는 무서워서 울기 시작해요.

"내일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오늘 편안하게 잠자기 위해선 꼭 진료를 받아야해."

"바르게 눕고, 입 벌리자."


저는 아이가 꼭 해야하는 일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이야기해요.

치과 치료를 받는 순간, 울거나 찡얼거려도 절대 달래주지 않습니다.

그건 아이가 자신을 위해 꼭 해야하는 일이니까요.


겁이 난 아이는 중간중간 울기도 했지만, 무사히 진료와 치료를 마쳤어요.

그때 아이를 꼭 안아주고 충분히 토닥여줘요.


"엄마는 하준이를 믿었어. 너무 자랑스럽다. 기특해"


의사선생님께서 진료를 마친 뒤 소견을 말씀해주셨어요.

엑스레이상 이가 금이 가진 않았지만, 많이 흔들리고 있다.

아직 난지 얼마 안된 영구치는 뿌리가 흔들리긴 하나 외상으로 인한 것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최악의 경우: 이가 빠질수도 있으니, 이 부분을 잘 지켜봐야한다.

신경이 괴사된 경우: 이가 검게 변한다. 평상시 잘 지켜봐줘라.

이가 시린경우: 신경이 손상되었을 수 있으니, 신경치료를 받아야한다.


3가지 경우를 제시해주셨고, 경과를 지켜보고 한달 뒤 다시 사진을 찍어보기로 했어요.




5.

치과진료를 마치고 아이들과 빵집에 들려 부드러운 빵을 샀어요.

한달동안 앞니를 최대한 쓰지 않아야하고, 부드러운 제형의 음식만 먹어야한다고 하시더라구요.

아주 조심해야하는 시기예요.


저도 당연히 신경써야겠지만, 결국 아이가 해내야하는 과정이겠죠.

집에 와서 보니 어느새 옆니로만 먹고 있는 아이를 보며 귀여워 웃음이 났어요.


"잘해낼거야."


메디폼을 이마, 코, 턱에 붙여줬어요.

큰 반창고 세개가 얼굴에 턱, 앞니는 흔들리고 있는 7살 아이는 평상시처럼 웃으며 저녁을 보내요.


"하준아, 많이 다치지 않아서 엄마는 참 감사해."

"이빨에 금이 가지도 않았고, 한달간 조심하면 되잖아!"


"오늘은 정말 기분 좋은 날이다."



엄마, 맞아!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네!



건강한 아이를 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어요.

건강한걸로, 이미 너의 몫은 다했구나.

나는 너의 성장에 이제 감사할 일만 남았구나.



이미 자신의 최선의 몫을 해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고마워요.

한달 뒤, 아이의 이가 여전히 흔들릴 수 있지만 또 좋은 방법이 있으리라 믿어봅니다.

우리에겐 우리가 있으니까, 괜찮아요.




다친 다음날에도, 아침 루틴을 해내는 7살!






이미 건강함으로 제 몫을 해내고 있다생각하니 아이들에게 감사함이 더 생기더라구요.

조금 더 기다려주고 싶은 제 마음의 여유도 생기구요.


그리고, 생각해보니 엄마도 건강하니 몫을 다 한거기도 하네요:)

건강하기 위해 애쓰는 우리 엄마들, 애쓰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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