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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결혼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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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Jan 27. 2021

효자랑 산다는 건

일 년에 서, 너번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고등학교 친구들인데 어쩌다 보니 결혼도 비슷한 시기에 하고, 서울 근처에 자리 잡으며 더 열렬히 서로의 삶을 응원해주는 사이가 되었다. 여자들이 만나면 접시가 깨진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내가 그랬다. 조심성 없는 나는 컵을 깨거나, 접시를 종종 떨어뜨렸다. 18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덜렁대는 내 모습에 친구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나도 그들이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만큼 말할 필요 없는 사이이니까.


그러니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무엇보다 진솔했다. 보통은 두개의 주제로 정해져 있는데, 남편이 알면 안 되는 이야기와 우리보다 잘 사는 남들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를 동시에 흥분시키고 탄식을 유발하는 주제도 늘 똑같았다. 바로 ‘효심 깊은 아들


우리의 배우자는 다 다른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비슷한 게 있었다. 내 남편들의 효심이 결혼하고 깊어졌다는 것이다. 남편의 효심이라는 주제는 심각하고 심오했다. 누구나 부모에 대한 효도를 당연시 하지만, 결혼한 남자의 효심은 남달랐고, 공통점도 있었다.


(1)남편의 기억에 자신의 부모님은 고생한 시절이 있었고, (2)남편은 예전에 꼭 속을 썩인 적이 있다. (3)그리고 앞으로의 효도 계획에 배우자를 은근히 끼워 넣어 함께 동참해 주길 바란다.


자꾸 듣다 보니 내 남편의 가슴 절절한 사연도, 다른 효자들의 사연도 결국 내 이야기였다. 효자, 효녀가 만들어지는 레퍼토리는 똑같았다. 유교사상을 중시했던 대한민국에서는 효자 아닌 사람을 더 찾기가 어려우니까. 세상 어느 부모가 고생하지 않고 자식을 키울 수 있고, 애는 원래 말을 안 듣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리고 말을 안 들으니까 애지 잘들으면 그게 애냐는 말이지.


들을수록 점점 더 와 닿지가 않았다. 똑같은 영화도 계속 보면 무감각해지고 허점도 보이듯이. 더군다나 세상에 더 특별하거나 잘난 효심도 없으니까.


효심이라는 주제는 아름답고 가슴 찡해야 하는데, 하필 남편의 것이라는 이유로 선뜻 내키지 않은 주제였다. 왜 내 남편이 남친이었을 땐, 저렇게 매사에 효자인 줄은 새까맣게 몰랐을까. 결혼하고 알았다. 나를 속인게 아니라면 내가 속은거다. 어디든 따라다니는 효자멘트는 꼭 나에게 짐을 떠맡기는 거 같았다. ‘다음에 여기 모시고 오자’

맛있는 거 먹으면 생각나고, 좋은데 가면 또 생각나고, 좋은 거 쓰면 또 생각나는 거. 효자들의 과업은 이렇게 하나씩 늘어만 간다.


다음에 꼭 모시고 갈 음식점만 수백 개

다음에 함께 갈 여행지만 수십 개

다음에 사 드려야 할 선물만 수백 개


그 마음을 어느정도 짐작하건데, 본인이 효자라는 걸 떠들어 댈 곳도 나밖에 없으니 그럴것이다. 앞에서는 말도 못하고, 오늘도 효도 List는 또 채워져간다.


거기다 남편은 대체 무슨 죽을죄를 졌길래 배우자라는 이유로 함께 속죄 하 듯 효도를 같이하자며 그 무게를 나와 나누려는 걸까. 속을 썩인걸로 효도의 양을 결정할 수 있다면 난 남편보다 1톤 트럭 한대 더추가요~ 우리 엄마에게 효도하기도 바쁜데.


네 효도는 네가, 내 효도는 내가 각자 알아서 하되, 그걸로 스트레스 받지말자고 손가락 걸고 약속했다. 내가 생각하는 효란 의욕만 넘치는 효도, 며느리나 사위가 전하는 대리 효도가 아니다. 각자 이루고 싶은 효도는 지은 죄값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장 할 수 있은 효도정도는 며느리인 나에게 미루지말고, 니 효도는 남편 당신이 해주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대리 효도 진행중이다. 우리 아버님은 며늘아기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하시고 우리 엄마는 사위 목소리가 듣고 싶다하셨다.

아..버..님

이 세글자 입떼기가 어찌나 힘들던지. 그거 한번 해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남편때문에 꾸역꾸역 해냈다. 그리고 뭐라 말할 줄을 몰라 늘 식사하셨는지 질문만 되풀이하다 끊었다.


식사 하셨어요?
아~
식사 하셨어요?
아~
식사 하셨구나.


아버님은 내 똑같은 질문에 경상도 사투리로 “밥 무따. 고기 무씀니더~”라고 늘 경쾌하게 대답해주셨고 같은 시간 늘 같은 멘트로 전화드리고 끊고를 반복했다. 남편은 나보단 편하고 여유있게 장모님을 대했다. “어머님, 운동 좀 하세요. 배가 많이 나오셨던데.” 라며 막말을 하는 사위의 농담까지도 좋으셨던지 전화를 쉽게 끊지 않으셨다. 두분이 좋아하는 것보다도 남편이 좋아하고 아내가 좋아하니 하게 되는, 배우자로서 할 수 있는 효도는 딱 거기 까지였다.


생사 확인 전화, 안부 차 전화 ,

특별할 때 전화, 이유없이 그냥 거는 전화

별거 없이 자주 연락드리는 거


며늘아기와 사위가 할 수 있는 효도는 몸이 멀다고 마음까지 멀게 하지 말고, 사소한 소식도 자주 전화드려 알려드리는 것, 잘 지내고 있음을 들려 드리는 것 뿐이었다. 이것도 ‘일’ 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핑계를 붙이게 된다. 일이 바빠서 시간이 안 나서 어렵고, 퇴근 후엔 지하철 안이라 어려웠다. 그래서 자연스레 각자의 효도를 서로에게 이관시켜 우리일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 부부의 최선책은 다음과 같다.

퇴근 후, 지하철 플랫폼까지 가는 길에 전화 한 통.

지하철 출구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전화 한 통.


그럼 양가에 한 번씩은 할 수 있다. 난 보통 어머님께 먼저 전화드리고, 상대적으로 편한 마음으로 우리 집에 전화드린다. 여전히 시댁에 전화 드리은 일은 풀기 어려운 숙제 같다. 미루면 남편한테 혼날 것 같아 황급히 끝내는 숙제. 숙제까지 다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한숨 돌리면, 우리집 효자는 마치 혼자만 숙제를 끝낸 듯 심각하게 양가의 소식을 전한다. 이미 알고 있지만, 할 말 많지만 하지 않겠다. ‘참 큰일 하셨네요’ 이렇게 효심 깊은 효자들이 넘치는데 전국 효심 자랑 한번 해보면 내 남편, 예선 이나 통과나 할 수 있을까? 진짜 고수는 말하지 않아도 실력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말만 하지말고 효도도 실력으로 보여줄 수 없냐고.


친구들과 남편의 효심이라는 주제를 다 풀어내기엔 하루로는 부족하다. 실컷 떠들었는데 헤어질 때마다 우리 다음에 는 1박 2일로 만나자며 아쉬움으로 헤어진다. 그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아마 셋 다 내색하진 않아도 비슷한 자기 위안을 할 것이다.

‘역시 그놈이 그 놈이구나’


나도 잠시 생각을 해 본다. 나중에 우리 아들에게 받고 싶은 효도가 있을까?

아마 머리도 하얘지고, 허리도 구부정해서 내가 볼품없는 엄마일지라도 내 아이가 힘차게 엄마라고 외쳐주는 목소리. 그 목소리만 있으면 바랄게 없을 거 같은데. 나도 그런 날이 오겠지. 말 나온 김에 나는 우리 엄마에게 전화나 한 통 더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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