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옮기기를 정말 잘했다.
지금만큼 즐겁게 회사를 다닌 적이 없다. 회사를 옮기기를 정말 잘했다. 이전 직장을 다니면서 아쉬워했던 점을 몇 달 전에 정리했었는데, 이걸 정리하면서 내가 어떤 환경에서 즐거움을 느끼는지 알게 됐다. 기록 차원에서 적어둔 것들을 살짝 꺼내보았다. 순서는 무관하다. 기회가 되면 이것에 대해 더 자세히 풀어써봐야지.
일할 때 외로웠다. 리더를 포함해 7명인 팀이었다. 나와 함께 업무 논의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르는 걸 찾아가면서 일하는 건 차라리 쉬웠다. 알아서 내 일을 찾아 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내 일에 관심 갖는 사람이 없는 건 얘기가 달랐다. 업무 논의를 할 사람이 없다면 내가 그 팀일 필요도 없었다. 일을 같이 하는 사람이 없을 순 있어도, 논의를 할 사람도 없는 환경은 나와 맞지 않았다. 회사가 그리는 큰 그림 속에 내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떠나는 날까지 회사는 내가 떠나는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았고, 내가 나온 자리는 충원 인력 없이 사라졌다.
회사에 생기가 없었다. 즐거울 때 일이 더 잘되는 나한텐 단점이었다. 회사가 노는 곳은 아니지만 지루한 곳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커피컵 홀더에 적히는 오늘의 운세가 그나마 재미있는 모먼트였다. 팀원들과 친했지만 점심 시간은 조용하기만 했다. 일이 재미있던지, 회사가 재미있던지, 사람이 재미있던지, 셋 중 하나만이라도 재미있었어도 결정이 그렇게 쉽진 않았을 것이다. 같이 고생하는 사람들 말고는 마음을 붙일 곳이 없었다.
납득이 되지 않았다. 무언갈 결정할 때 실무진의 의견을 들으려고는 했을 수도 있다. 내가 가장 답답했던 건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내려진 결정인데 설명이 필요하냐는 사람도 있었다. 이 방향으로 가게 된 이유에 대해 물으니 '이렇게 가자고 해서. 문제 있어?' 가 답변인 식이었다. 맥락을 모르니 일을 해도 남의 일 같았다. 내 일로 만들고 싶어서라도 납득을 하고 싶었다. 납득이 안돼서 답답했다.
선택들이 아쉬웠다. 아이디어는 정말 좋았다. 처음에 접하고선 왜 아직 터지지 못했을까 의아할 정도였다. 동료들은 경쟁력 있는 상품을 이제라도 자리 잡게 하려던 사람들이었다. 이들로 하여금 다른 먹거리를 찾도록 시키면서 가만히 놔두질 않았다. 기존 상품에 집중하도록 도와줘도 모자랄 판국이었다. 어설프게 자리 잡은 상태에서 다른 먹거리를 찾다보니 제대로 자리 잡은 것이 없었다. 소외된 상품이 내가 봐도 좋은 상품이라 방치되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의사결정엔 뚜렷한 근거들이 없었다. 운좋게 잘 된 일들 때문에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달랐다. 어느 분야에서든 유저들은 상전이다. 온갖 화려한 것들로 현혹시키든, 우리를 멋들어지게 포장해서 꼬시든, 유저를 붙잡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한다. 톡 건드리기만 해도 사라질 유저들인데, 이 유저들을 동원해서 우리의 숨은 목적을 달성시킨다는 발상 자체에 동의할 수 없었다. 또 본질을 잃으면서까지 눈 앞의 유혹을 좇고 있었다. 대행이 힘들어 떠났지만 또다시 대행사가 된 기분이었다. 정말 고급스럽고 비싼 꿀단지를 얻고 나면 직원 모두가 만족할 것이라고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설령 그 꿀단지가 우리가 바라던 바가 아니었더라도.
할 수 있는 게 적었다. 여기저기서 해달라는 걸 해야했고, 해보고 싶은 걸 할 자유가 많지 않았다. 한 사람의 취향이 기업의 색깔에 강하게 나타났다. 문제는 그 취향에 있었다. 어설프게 얻은 성공들이 걸음의 폭을 옭아맸다. 습관적으로 작은 성취를 얻는 방법을 고집했다. 앞의 생각들과 6번의 생각이 섞이자 이 곳에서의 미래를 그리는 걸 멈췄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게 뭘까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이런 연속적이고 복합적인 생각들은 계속 맴돌았다. 마음이 떠난 순간부터 내 책상은 언제든 떠날 수 있게 깨끗했다. 또 어느 순간부터는 회사 이야기가 나올 땐 침묵하게 됐다. 지치기 전까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려고 노력했다. 제 풀에 지치면서부터 얻을 것과 필요한 것을 비교하게 됐다. 비교 끝에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이른 시기에 두 번째 퇴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