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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빈 Mar 19. 2021

입을 땐 입고 벗을 땐 확실히 벗는다?

이런 모순 가득한 나라

이번 편에서도 지난 편에 이어 내가 독일에서 5년을 살며 느꼈던 독특한 문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에 살 때 독일 차, 독일 맥주, 독일 약, 독일 소세지, 독일 공구 등 독일산 물건들은 우리 일상생활에 심심치 않게 등장해서 독일이란 나라에 대한 친근함을 심어주었는데, 이 시리즈에서 소개하는 독일의 문화는 나에게 독일을 한없이 낯설게 느끼게 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그렇게 느낄지, 아니면 내가 유독 독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기에 많은 것을 신기하게 느낀 것인지 항상 궁금하다. 


7. 입을 땐 확실히 입고 벗을 땐 확실히 벗는 나라


내가 1편에서 베를린을 제외한 다른 도시의 사람들의 옷차림이 보수적인 편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그 글을 읽은 사람들은 독일은 몸을 드러내는 것에 대하여 보수적인 나라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오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드비치를 생각하면 떠올리는 첫번째 나라는 아마 프랑스일 것인데, 독일도 Nudity에 대한 관용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이기 때문이다. 


독일에는 FKK(Freikörperkultur, 신체의 자유를 추구하는 문화)라는 문화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말 그대로 몸을 자연 상태와 그대로 자유롭게 드러내는 문화이다. 벗은 몸을 수치스러운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고자 하는 정신에서 비롯된 문화로서 18세기 부터 유럽 전역에 퍼지기 시작하였고 독일에서는 약 1900년 부터 활발히 적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문화의 일원으로 사람들은 호수와 바다에서 남녀 구분 없이 나체로 수영하고 일광욕을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기 시작했다. 

해변에서 FKK 존이 시작됨을 알리는 표지판


독일에는 맑고 깨끗한 호수들이 많아서 사람들이 여름에 호수에서 수영하는 것을 즐기는데 큰 호수에는 대부분 수영복을 입고 수영하는 일반존과 나체로 수영하는 FKK존이 마련되어있다. 큰 공원에도 FKK 존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뮌헨의 영국 정원 (Englischer Garten)이 이로 유명하다. 


FKK존이 아닌 호수와 공원에서도 사람들은 옷을 갈아입을 때 나체를 드러내는 것을 크게 꺼리지 않는다. 호수나 공원의 일반 존에서도 아무 가림막 없이 비키니를 상의를 갈아입는 여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남녀 구분없이 나체를 드러내는 공간은 또 있다. 바로 사우나.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는 도시의 사우나는 수영복을 입어야 하는 곳도 있지만 보통의 사우나는 남녀 혼용에 모두 나체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가 자주 가는 사우나는 수영장, 탕, 건식/습식 사우나, 휴식공간이 있는 시설이다. 수영장에서는 모두 수영복을 입어야 하고 탕과 사우나에 들어갈 땐 벗어야 한다. 그리고 복도와 같은 이동 공간을 걸어다닐 때와 휴식공간에서는 보통 나체 위에 샤워 가운을 입는데 간혹 그냥 나체로 걸어다니는 할아버지들도 계신다. 


여기가 바로 우리가 자주 가는 사우나의 수영장

나의 첫 사우나 경험은 당연히 어색했다. 혹시 우리 회사 사람을 보게 되면 빛의 속도로 도망칠 생각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혹시나 불쾌한 눈빛을 받진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그런 걱정은 사우나에 들어선 후 약 30분 만에 바로 접어둘 수 있었다. 온갖 연령의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는 그 공간에서 사람들은 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돌아간 모습이었고 그 곳에 '야한 느낌'은 1도 없었다. 예쁘고 멋져보이거나 야해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맨몸은 정말 그냥 허연 몸뚱이다. 그리고 서로를 빤히 쳐다보지 않는 것이 예의여서 불쾌한 눈빛을 받거나 한 적은 아직 없다. 여기저기에서 나체를 보는 것이 너무 쉬운 나라이기에 타인의 나체를 본다는 것이 큰 의미가 없어서 가능한 일인 것 같았다. 


나는 FKK를 지지하는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써 아직 내 맨몸을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럽고 아무 거리낌 없다고 말할 순 없다. 그러나 나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터부시 하지 않는 그 문화는 지지한다. 나체=성적인 것으로 연결되지 않는 그 문화는 아주 많이 지지한다. 이 문화로 인해서 많은 범죄나 불필요한 판타지 생성이 많이 예방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8. 코를 풀 것이냐 훌쩍일 것이냐...


밥을 먹을 때 쩝쩝 소리를 내며 먹는 것, 코를 훌쩍이는 것 모두 독일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게하는 행동들이다. 그러면 독일인들은 몸으로 내는 불쾌한 소리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모든 독일인들이 공공장소에서 아주 자랑스럽고도 힘차게 내는 소리가 있으니 바로 코 푸는 소리이다. 레스토랑 안에서도, 회사에서 미팅을 하다가도, 지하철 안에서도 독일인들은 아주 우렁찬 소리로 코를 팽! 팽! 푼다. 난 사실 코 훌쩍이는 것 만큼 코 푸는 소리도 불쾌하다. 특히 콧물 많이 들어있는 코푸는 소리... 그래서 당연히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조용히 코를 풀고 오는게 예의가 아닌가 싶은데 독일에서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코를 푸는 것이 예의'인 양 여기저기에서 다들 코를 풀어댄다. 


'외국인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독일 문화'라는 기사 안에 '공공장소에서 코를 크게 푸는 것'이 포함되어있다 (ㅋㅋ)


9. 마음에 점만 찍는 점심


중학교 때 한 선생님이 점심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마음에 점을 찍는 것'이라고 하셨다. 점 하나를 콕 찍는 것처럼 가볍게 먹어야 몸에 좋다는 의미라는 설명을 덧붙이시면서. 그런데 이것은 사실 먹기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에겐 참 지키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다. 나 역시 지루한 회사 생활의 한 줄기 빛 같은 점심시간에는 맛있는 것을 제대로 먹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심을 딱 마음에 점을 찍듯이 먹는 민족이 있으니 바로 독일인들이다. 회사 내 칸틴(구내식당)에 가면 아주 덩치가 큰 독일 남자들과 날씬한 독일 여자들 모두 공통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메뉴는 샐러드이다. 커다란 아저씨들이 샐러드 볼만 하나 두고 밥을 먹는 모습은 지금 보아도 신기하다. 이렇게 앉아서 먹는건 그래도 양반인 수준이다. 독일 직장인들은 샌드위치 하나만 사서 걸어가며 점심을 먹는 경우가 아주 많다. 시간이 없어서 그런 것도 딱히 아니다. 동료들과 서서 1시간씩 이야기를 하며 샌드위치를 먹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주로 먹는 샌드위치의 모습들. 독일어로는 Belegte Brötchen(위에 뭔가를 올린 빵).

우리 회사 칸틴에서는 한식도 제공이 되는데, 형태는 고등학교 때의 급식과 같다. 식판 위에 반찬, 국, 밥, 메인메뉴가 올라온다. 가끔씩은 태국 음식, 피자, 버거 같은 것을 시켜먹기도 하고 차를 타고 나가서 레스토랑에서 먹기도 한다. 식사 멤버는 보통 한국 동료들로 이루어져 있다. 독일인들에게는 너무 헤비한 메뉴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먹는 한국인들을 보면 독일 동료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먹어도 살이 안찌니?'와 '점심 때 그렇게 많이 먹으면 오후에 졸려서 어떻게 일을 하니?'이다. 그 때마다 내가 하는 생각은 '어떻게 일에 집중을 잘하려고 점심을 포기하니, 난 그냥 일을 포기할래'이다. 


이렇게 이번 편에도 독일의 독특한 문화들을 소개해보았는데 이로써 나에게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문화들은 대강 다 적어본 것 같다. 지금만큼 Globalization이 이루어진 시대가 없는데도 세세한 문화들은 각 나라마다 이토록 다르다는 것이 참 재미있다. 그리고 적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문화라는 것은 항상 합리적, 논리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까지 그래왔기에' 굳어진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공원과 호숫가에만 가도 빨개벗은 사람을 볼 수 있는데 왜 내가 엉덩이가 보이는 반바지를 입고 나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볼까? 공원과 길거리의 차이가 무엇이길래? 이것은 그저 공원은 '나체가 허용되는 곳', 길거리는 '엉덩이를 보이면 안되는 곳'으로 굳어진 관습의 결과라고 볼 수 있고 이런 점들은 생각할 수록 참 웃기다. 


다음 편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쓸 수 있을 예정이다. 이제는 정말 뾰족히 생각나는 독일의 독특한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항상 문화 충격 탐지 레이더를 켜두고 있다가 내 리스트가 조금 모이면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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