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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빈 Mar 01. 2021

인사부터 언어까지. 왜 이렇게 이상해?

독일 생활 6년차가 소개하는 독일 

내 업무 수첩에는 며칠 전부터 '독일 문화 충격'을 적는 리스트가 생겼는데 생각날 때 마다 한 가지씩 추가하다 보니 벌써 꽤 긴 리스트가 되었다. 독일 생활 초기에 많은 것을 새롭게 경험하며 느꼈던 생소하고 낯선 느낌들을 다 까먹었다고 생각했는데 마트에 가면서, 병원에 가면서, 길거리를 걸으면서 그리고 독일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평소보다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니 다시 하나 둘씩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전 편에 이어서 이번에도 그 중 몇가지를 나열해보도록 하겠다. 


4. 'Bisous'는 프랑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것은 불어불문학을 전공한 나와 나의 친구들에게만 큰 충격으로 다가올 점인 것 같기도 하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프랑스 문화도 자연스럽게 함께 배우게 되었는데, 그 중 늘 등장하는 것은 프랑스인의 인사법 'Bisous(비주)'였다. 이것은 바로 두 명의 사람이 만나서 서로의 양쪽 볼에 쪽 쪽 키스를 하는 인사법이다. 각 지방마다 총 몇 번을 키스를 하는지가 다르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저렇게 인사를 한다고 하니 실제 프랑스에서 저 인사법을 사용할 때가 되면 어색해하지 않고 잘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여러번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막상 저 인사법을 써먹을 기회가 없었는데 독일에 와서 남자친구의 친구들을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서로 Bisous를 하는 것을 보고 머리에 작은 뿅망치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든 적이 있다. 새침하고 고상하게 서로의 볼에 쪽 쪽 키스를 하는 인사법은 프랑스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생각했던 지금까지의 나의 작은 세상을 허물어뜨리는 뿅망치였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과 독일의 메르켈 총리.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서로에게 이렇게 인사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독일의 Bisous는 'Wangenkuss'라고 한다. 볼키스라는 의미이다. 이제 와서 알게된 사실인데 이 볼키스 인사법은 프랑스만의 전유물도, 프랑스와 독일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네덜란드에도 있고 슬로베니아에도 있는 인사법이다. 네덜란드에서는 3번을 하는 것이 통상적 관례라고 한다. 네덜란드인인 직장 동료와 인사를 할 때 내가 2번으로 끝내려고 하자 그 친구가 '미안, 우리는 꼭 3번을 해야해서' 라며 한 번 더하고 웃던 모습이 생각난다. 


볼키스 인사법을 할 때에는 정말로 볼에 입술을 대고 쪽 키스를 하진 않는다. 입술을 모아서 쪽 소리만 내거나 쪽 하는 시늉만 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정말 볼에 쫙! 하는 뽀뽀를 해주기도 하는데 남녀를 가리지 않고 친밀한 사람에게 한다. 난 한국인인지라 친한 남자사람친구가 내 볼에 뽀뽀를 해주었을 때에는 심장이 살짝 콩하고 뛸 수 밖에 없었다. 


5. 왜 병원 대기실과 엘레베이터는 예외인지?


이것은 위에 적은 '인사'와 이어지는 테마인데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나에게 늘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이어서 넣기로 했다. 독일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말을 거는 문화가 주류 문화가 아니다. 서로 서로 다 아는 작은 마을에서는 길거리 사람들과 인사를 하지만 도시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꼭 서로 인사를 하는 장소가 있으니 바로 병원 대기실과 엘레베이터이다. 


독일에서 처음 병원에 갔을 때 대기실에 앉아있었는데 뒤에 들어오는 아주머니께서 'Hallo (할로, 안녕하세요)' 하고 들어오셔서 누구에게 하는 인사인지 고개를 돌리고 주변을 둘러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뒤따라서 들어오는 사람들도 모두 'Hallo'나 'Guten Morgen(구튼 모르겐, 좋은 아침)'을 말하며 들어오고 나갈 때에는 꼭 'Tschüss (츄스, 안녕)' 나 'Ciao (챠오, 이탈리아어의 안녕인데 독일에서도 많이 쓴다)를 말하고 나가는 것이 아닌가. 다른 병원 대기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웃기는 점은 인사들은 다들 살갑게 해도 그 외의 대화는 전혀 나누지 않는다는 점인데 대체 왜 인사는 꼬박꼬박 하는 것인지가 의아했다. 

일반적인 독일 병원의 대기실. 특별할 것은 없지만 궁금해 할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넣었다.

엘레베이터에서의 상황은 더욱 웃기다. 엘레베이터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인사를 하고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은 인사를 하고 나간다. 우리 회사가 있는 건물은 여러 회사가 함께 입주해있는 큰 고층 건물인데 15층의 사무실에서 근무할때는 내려오고 올라가며 인사를 참 여러번 해야했다. 


어차피 대화나 눈마주침 같은 그 외 interaction을 전혀 하지 않을 거면서 왜 그리 인사는 하는지, 병원 대기실과 엘레베이터에서는 왜 모든 독일인들이 그토록 인사성이 밝아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6. 끝도 없이 길어지는 독일어의 단어들


앞 편에서 다룬 독일의 문화충격 요소들 모두 나에게 독일이라는 나라를 참 낯설게 느끼게 했는데 이번에 소개할 바로 이 점을 처음 접했을 때 내가 독일을 몰라도 정말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턴을 하던 시절, 독일어에 완전한 까막눈이었을 때 전철 역에 써있는 단어들을 보면서 '와,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다. 그런데 독일어 단어들은 굉장히 기네.'하는 생각을 항상 했다. 인턴 후 어학원에 다니면서 그제서야 독일어에서는 한가지의 대상을 지칭하는 단어들을 모두 모아 붙여서 쓴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 때 나는 '이런 무식한 언어가 다있단 말이야? 왜 이런 이상한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지?'하며 멘붕을 한 기억이 있다. 


이 단어 조합 규칙의 기본 원칙부터 설명해보자면,


Reis = 쌀

Reiswaffel = 쌀로 만든 와플 

Reiswaffelfabrikant = 쌀로 만든 와플 공장 직원

Reiswaffelfabrikantentochter = 쌀로 만든 와플 공장 직원의 딸


이런 식으로 단어를 무한정 늘려갈 수 있는 것이다.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대체 이런 식으로 단어를 늘리고 모두 붙여서 쓰는 언어가 이 세상 다른 곳에 또 존재할까?


긴 단어의 예시들을 더 소개해보자면, 


· Geburtstagsgeschenk = 생일 선물 

  (Geburtstag은 생일, Geschenk는 선물)


· Zeiterfassungssystem = 회사에 있는 출퇴근 체크 시스템 

  (Zeit 은 시간, Erfassung은 기록, System은 시스템)


· Straßenverkehrsordnung = 도로 교통 질서 

  (Straße는 도로, verkehr 는 교통, Ordnung 은 질서)


· Rindfleischetikettierungsüberwachungsaufgabenübertragungsgesetz = 소고기 라벨링을 할 때 감시하는 블라블라...과제 수행 어쩌구 법 

  (거짓말이 아니고 실제로 있는 단어다)


이런 긴 단어들을 말할 때 주의할 점은 해당 단어가 어떤 개별 단어로 이루어져 있는지 파악하여 그 개별 단어 대로 끊어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쓸 때는 붙여 써도 말할 때는 끊어 말해야하는 2단계 복잡성을 가지고 있는 요상한 규칙이다. 

서로 다른 단어들이 붙어서 어떻게 한 단어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간단한 픽토그램

독일어에서는 숫자를 풀어서 쓸때도 모두 붙여 쓴다. 예를 들어 9,432라는 숫자를 알파벳으로 쓴다고 치자. 

이것은 'Neuntausendvierhundertzweiunddreißig' 가 된다. 


아참, 독일어에서 숫자 32를 이야기 할때는 Zweiunddreißig, 즉 '2 and 30' 라고 말한다. 45는 'Fünfundvierzig' 즉 '5 and 40'이다. 1의 자리 숫자를 먼저 말한다. 왜그런지는 나도 모른다. 독일어 언어의 이상함을 말하자면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정도여서 오늘은 여기에서 멈추기로 해야겠다. 안그러면 독일어를 처음 배울 때의 그 속터짐과 이상함의 느낌, 대체 왜 이런 이상하고 불편한 규칙들이 생겼는가에 대한 의문, 왜 그 오랜 시간동안 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문 때문에 오늘 잠을 편히 자지 못할 것 같다. 


그러면 나는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한 더 흥미로운 것들을 많이 모아서 다음편으로 돌아오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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