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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빈 Feb 25. 2021

쥐새끼, 학생 먹이, 판자촌...

내가 몰랐던 독일의 모습들

한국 사람들은 독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가 한국 사람의 평균치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아주 모른다'라고 대답해도 무방할 것 같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독일에서 5년을 살며 겪은 크고 작은 문화 충격의 요소들을 나열해 보고자 한다. 나름 많은 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문화들을 경험해봤다고 자부하는 나에게도 독일은 '오잉?' 스러운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독일이 이런 모습이 있는 나라구나' 하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으면 한다. 


1. 넌 너무 귀여워. 그래서 쥐새끼 같아. 


한국 사람들은 귀여운 대상을 무엇이라고 부를까? 할머니가 손자, 손녀를 부를 때 강아지 새끼라고 하는 것을 책에서 읽은 적은 있는데 실제로 부르는 것은 보지 못한 것 같다. '귀염둥이' 정도가 통상적으로 쓰이는 표현인 것 같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귀여운 것을 칭할 때 쥐 같다고 한다. Kleine Maus (작은 쥐), Mausi(쥐를 더 귀엽게 이르는 표현, 쥐돌이 정도?), Mäuschen(역시 쥐를 더 작게, 귀엽게 이르는 표현, 쥐방울, 쥐새끼 정도?) 모두 귀엽고 사랑스러운 대상에게 쓰이는 표현이다.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에게 Du kleine Maus!(이 작은 쥐돌아!)라고 하는 경우가 많고 연인 사이에도 남성이 여성에게 Mäuschen(쥐방울)이라고 애칭처럼 부르는 경우가 많다.    


보통 쥐는 바퀴벌레와 동급으로 취급되는 혐오 동물이 아니던가? 중세 시대에 유럽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을 옮긴 주범이 쥐가 아니었나?! 


내 머릿속은 늘 이런 물음표로 가득 차 있었는데 독일인들이 그렇게 귀여워하는 쥐를 남자 친구 부모님 댁 정원에서 처음으로 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 쥐는 정말 귀여웠다! 몸 크기와 모양은 딱 호두알같이 작고 동글동글하고 정원에 떨어져 있는 땅콩을 잽싸게 주워가는 모습이 진짜 앙증맞았다. 


알고 보니 온갖 귀여움의 대명사인 그 쥐는 바로 '생쥐(Maus)'이고 병균을 옮기고 음식을 훔쳐먹는 쥐는 '시궁쥐(Ratte)'로 이 시궁쥐는 독일에서도 기피대상, 박멸 대상이었다. 


왼쪽이 귀여운 생쥐(Maus), 오른쪽이 시궁쥐(Ratte)

우리 고양이 셀마를 처음 보았을 때 남자 친구의 부모님이 Du süße Maus! (이 귀여운 쥐야!)라고 하셔서 ‘고양이에겐 쥐라고 하면 실례가 아닐까?’ 하고 우리 모두 웃은 적이 있는데 이제는 나도 종종 셀마를 Mausi라고 부른다. 생쥐들은 작고 귀여우며 셀마도 작고 귀엽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젠  Mausi의 어감도 귀엽게 들린다. 


2. 학생 먹이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초대형으로 포장되어있어서 대량으로 구매해서 먹는 스낵을 ‘인간 사료’라고 부르는 것을 보았다. 주로 코스트코에서 파는 치즈볼을 그렇게 부르는 것 같았다. 


독일에도 인간 사료가 있다. 바로 ‘Studentenfutter(학생 먹이. Student는 학생이고 Futter는 동물의 먹이)’이다. 참 웃긴 점은 인간 사료는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재미로 부르는 이름이라면 독일에서의 학생 먹이는 견과류와 건포도가 섞인 스낵을 부르는 정식 명칭이라는 것이다. 마트에 가면 온갖 다양한 브랜드에서 출시된 학생 먹이를 찾아볼 수 있다. 

마트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학생 먹이들

위키피디아에 찾아보니 ‘Studentenfutter‘는 무려 17세기부터 건포도와 견과류가 섞인 스낵을 칭할 때 사용된 명칭이라고 한다. 견과류는 당시에 구하기 힘들고 값비싼 간식이었어서 대학교에 갈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한 사람들만 먹을 수 있었기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렇지만 왜 동물의 먹이를 뜻하는 Futter가 붙게 되었을까? 아마 이 값비싼 간식을 먹지 못하는 서민들이 ‘부유한 사람들의 먹이’라고 비꼬듯이 부르다가 정착된 것이 아닐까?


3. 전기도 물도 안 들어오는 판자촌? 


여권이 만료되어서 최근에 여권 갱신을 위해 프랑크푸르트 영사관에 다녀왔다. 영사관 건물은 Niederrad라는 동네에 있는데 허허벌판 같은 곳에 우뚝 서있는 고층 건물이어서 영사관이 있는 층에서 창문으로 꽤 먼 곳까지 볼 수 있다. 


내 순서가 되길 기다리고 있는데 내 앞의 커플이 창문 밖을 보며 ‘저기에 전기랑 물은 들어올까?’, ‘겨울엔 진짜 춥겠다. 집도 다 판잣집 같은데’, ‘그래도 노숙자보단 저런 집이라도 있는 게 나을 거야’라고 걱정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것을 엿듣게 되었다. 무엇을 보고 하는 이야기인가 궁금해서 창밖을 흘끗 내다보니 그들이 쳐다보고 있는 것은 ‘Schrebergarten (슈레버가튼, 렌트용 정원)’이었다. 나도 독일에 왔을 때 이 정원들을 보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인 줄 알았던 기억이 나서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Schrebergarten은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지만 도시에 살아서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렌트용 정원이다. 보통 1년씩 렌트비를 지불하며 정원 가꾸기 용 도구를 보관하기 위한 창고, 그리고 간단히 식사를 할 수 있는 오두막이 딸려있다. 위 커플이 걱정했던 것처럼 전기와 물이 안 들어오는 곳도 있지만 수도는 없어도 우물은 다 있고 렌트비가 좀 더 높은 곳은 전기도 들어온다. 

Schrebergarten의 모습. 판자촌으로 착각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나도 친구들과 함께 Schrebergarten을 렌트한 적이 있었는데 여름에는 고기 구워 먹기에 너무 좋았고 직접 재배한 채소를 따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정원 가꾸기의 주축이었던 친구 커플이 뮌헨으로 이사를 가면서 지금은 렌트를 종료한 상태이지만 친구들과 다시 뜻을 모으면 재 렌트 의사 100%이다. 


지금까지 나에게 충격을 주었던 독일의 문화를 세 가지 적어보았는데 내가 사족을 너무 길게 붙여서인지 글이 끝도 없이 길어진다. 어쩔 수 없이 이번 편은 여기에서 자르고자 한다. 그리고  ‘내가 몰랐던 독일’은 긴 시리즈로 포스팅을 해야겠다. 생각해보니 독일의 독특한 점이 많아서 다 소개해주고 싶은데, 읽는 사람들도 쓰는 나만큼 재미를 느낀다면 좋겠다. 그러면 다음 편도 기대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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