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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로브스키, 이 예쁜 쓰레기

by JLee


이 아이를 처음 만났던 그날이 기억납니다.


남편과 연애 시절, 기억도 나지 않는 어느 기념일, 남편이 선물이라며 스와로브스키 상자를 하나 내밀었어요.


한껏 기대를 안고 상자를 열었는데… 웬걸, 그 안에 들어있던 건 귀걸이도 목걸이도 아닌 그저 작고 반짝이는 예쁜 쓰레기였어요. 하아... 그때의 실망감을 잊지 못합니다 (남편은 아직도 모름).


하지만 눈을 초롱초롱 뜨고 지켜보는 남편에게 차마 진실을 얘기할 수 없어, 거짓 리액션과 "땡큐!"를 남발했고, 그 결과 매 기념일마다 남편은 이 예쁜 쓰레기를 들고 왔습니다.


박스도 안 버리고 다 모아 놨어요


그런데 너무 재밌는 게 뭔지 아세요?


처음엔 '같은 돈이면 이왕이면 귀걸이나 목걸이를 사 오지' 싶은 마음이던 저도, 한 개 두 개 모이다 보니까 어느새 이 예쁜 쓰레기 모으는 재미에 홀딱 빠져있더라고요!


그렇게 모인 식구들이 이젠 제법 불어나 스무 개 가까이 되는데요, 그중 몇 개만 여러분들께 소개해 볼까 합니다.




Kris Bear - Graduation

이 아이는 제가 대학원 졸업했을 때 받은 선물인데요.


선물 받은 그날 남편이 자세히 본다고 들고 있다가 실수로 떨어뜨려 저 졸업장이 똑 떨어져 버리는 사고가 있었어요. 진짜 어찌나 속상했던지ㅠㅠ 곰돌이랑 졸업장 붙들고 울었던 기억이 있네요 ㅎㅎ (다음날 남편이 본드로 감쪽같이 붙여놓음)



Flower Daisy

이건 결혼 5주년 기념 선물이었어요.


남편 말로는 결혼 5주년 기념꽃이 '데이지'랬는데, 어디서 본 정보인지 제가 다시 찾아보니까 그런 말은 안 나오네요 ㅎㅎ 어쨌든 예쁘면 됐죠.



Puppy - French Bulldog & Poodle

불독과 푸들도 한 마리씩 입양했는데요.


제가 어릴 때 토이푸들을 키웠었거든요, 그 강아지랑 너무 똑 닮은 푸들과, 그냥 귀여워서 입양한 불독까지 두 마리가 나란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요.



Kris Bear - Christmas

몇 년 전,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곰돌이도 몇 마리 더 입양했습니다.



Ballet Shoes

이건 제가 취미발레에 폭 빠졌을 때 받은 서프라이즈 선물이었어요. 생일도 기념일도 아니었던 날에 받은 선물이라 더더욱 감동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Kris Bear - Sweet as Honey

얘는 이유가 좀 닭살스러운데요^^;; 남편과 제가 서로를 부르는 애칭에서 착안한 "Sweet as Honey" 곰돌이고요.



Kris Bear - Sending you Love

그리고 얘는 가장 최근에 합류한 새 식군데요, 올해 밸런타인데이에 받은 선물이에요.


한동안 변함없던 스와로브스키 가족에 새 식구가 들어온 걸 환영하는 마음으로 정중앙에 자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면서 예전만큼 사 모으지는 않게 됐지만 각각의 이야기와 추억이 담긴 아이들이다 보니 여전히 거실 캐비닛 한켠에 잘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먹지도 못할 쪼매난 애들이 다 모이면 값이 꽤 나갈 겁니다. 반지, 귀걸이, 팔찌 같은 주얼리면 끼고 차고 나갈 수나 있지, 얘네는 가끔 한 번씩 들여다보는 것 외에는 딱히 할 게 없으니 실용성 면에서는 빵점이에요.


그렇지만 가끔은 이렇게 실용성 따위 1도 없는 소비도 하면서 사는 거죠 뭐.


'가성비'는 제로여도

'가심비'는 만점일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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