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뼘이 필요했다.
살아가는 동안 딱 그만큼, 한 뼘이 필요했던 거였다.
어릴 적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성인이 될 때까지 그들의 안락한 그늘아래에서 자라고
성인이 되어 사회가 주는 보호막 속에 한 명의 조직원으로 살아가고
진정한 조직원이 되었을 때 사회 초년생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살아가고
그렇게 순리 속에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가고자 하였고 그렇게 살고 싶어 했다.
봄이 오면 겨울의 매서운 바람들이 자리를 내어주고 봄내음이 가득한 꽃길을 걸으며 한 해가 지나 또다시 봄이 왔음을 느끼고 어느덧 이마에 땀 한 방울 흘러내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쨍하게 내리쬐는 햇볕에 또다시 여름. 해 질 녘 선선한 바람에 이내 큰 한 숨을 내쉬면 어느새 계절이 바뀌는 순간이 다가오고.
또 한 번의 겨울... 속 끝까지 시린 한 겨울의 시름 속에서 그렇게 한 해가 지나감을...
서글프고도 애틋하게 바라보는 그런 삶이었다.
그런 삶인 줄 알았다.
겨울의 포근함이 유일한 안식처였으나 일 년 내내 땡볕 아래 한 줌의 그늘자리 없이 서서 버텨야 했고
탈진해 쓰러져 허우적거려도 누구 하나 손 내밀어 주지 않는 삶이었다.
결국 또 혼자 일어서야 했고 일어서고 나면 또다시 돌부리에 넘어지기 일쑤였다.
그런 삶인데도 몰랐다.
나 또한 사람들이 한 뼘씩은 가지며 살아가는 그늘막. 그 그늘막 하나쯤은 있다 생각하며 살아왔으나.
없었다... 그런 그늘막은...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늘막이 있다고 살아왔고 그 믿음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안타깝게도...
진작에 알았어야 했다.
진작에 눈치챘어야 했다.
모든 순간순간 들이닥친 그 힘듦을 헤쳐나감이 나의 그늘막 안이라 가능했다고, 그늘을 만들어 주어 살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 그 모든 것들은 여름 쨍쨍한 날의 그 뜨거운 열기를 오롯이 나의 피와 살을 깎고 또 깎아내어 버텨왔던 것이었음을 진작에 알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허무함도 갈증도 억울함도 반쯤은 줄어들어 있었을 테니...
착각 속에서 웃으며 계속 사는 것이 행복했을까
모든 것이 허구였음을, 스스로 만들어낸 프레임에 갇혀 눈이 멀어있었음을 귀가 닫혀있었음을
지금에서야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이 행복일까
모든 것을 밀어내었다.
울음이 솟구쳐 올랐지만 그간의 힘듦과 괴로움을 양손 힘껏 밀어내었다.
따뜻함이라고 나의 한 뼘자리 그늘막이라고 알고 지내왔던 수많은 날들을, 거짓의 거풀대기를 속시원히 벗겨내듯 한 여름 소나기같이 밀어내었다.
언제나 시원한 그늘막이라 믿었던 보호막을 그 거추장스러운 보호막을 똑바른 눈으로 응시하며 수많은 올가미들을 갈기갈기 찢어내어 속 시원함 보다는 서러움이 물밀듯 밀려왔지만 가슴이 찢기듯 아파왔지만...
여태 믿고 살아온, 올가미 속에서 살아내 온 나의 멍청함과 어리석음에 한 끝으로 욕지기를 내뱉으며 쏟아지는 눈물을 양손으로 거칠게 닦아내었다.
잠시 밝았고 잠시 반짝이다 원하지 않았어도 또다시 흑화가 되어버려
새벽으로 넘어가고 밤을 새워 수많은 책들을 뒤적이고 몸을 뒤척여도 그 어디에도 답은 없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들을... 내가 거절한다.
글. 그림 by 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