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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해 Dec 05. 2023

그럴 줄 알았어

"그럴 줄 알았어."

"그럴 것 같더라니, 몰랐니? 예상 못 했어?"



새벽 4시 55분 경북 경주 인근 지진 발생이라는 안전문자에 잠이 깼다.

깊이 잠들었나?

흔들림을 못 느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암막커튼을 열었다.

산사 펜션은 한밤중이었고 밖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해가 뜨려면 한 참을 기다려야 했다.

커피포트에 전원을 켜고 물을 끓여 커피를 내렸다.

잠은 깼는데 정신은 아직 깨질 않아 일어난 김에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진한 커피 향을 맡으며 그리고 마시며 아직은 한밤중인 밖을 보았다.

눈을 뜨자마자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이 왜 떠올랐을까?

'그럴 것 같더라니 몰랐어? 예상 못 했어?'라는 말이 왜 생각났을까?


살면서 자주 어쩌면 많이 듣던 말이었다.

이 말을 들을 때면 항상 다른 사람들은 다 그럴 줄 알았는데 예상했는데 나만 몰랐던 것 같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진짜 다른 사람들은 다 예상했구나 생각하고 자책도 했다.

또 상대방에게 아무런 말도 못 하거나 어쭙잖은 해명 아닌 변명만 두서없이 나열하곤 이내 고개를 떨구기 일쑤였다.


휴직을 하고 난 후 마음 씻어내기를 하면서 부정적인 생각들, 속상한 일들은 거의 떠올린 적이 없다.

자고 먹고 산, 바다를 보며 책을 읽고 기타도 치면서 아무 생각 안 하기, 할 거면 좋은 생각하기를 계속하던 터라 이른 새벽 눈을 뜨면서 떠오른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은 좀 당혹스럽기도 했다.


예전 중앙기관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나를 싫어하고 나 또한 몹시 싫어하던 상사가 있었다.

싫어했다는 말로 그 상사를 표현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하지만 직원들을 갈아 넣어 승진한 사람이라고도 표현을 했었다.

그런 상사에 대한 소식을 최근에 들었는데 아프단다. 출근을 못 한단다.

아마도 머리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한다.

내년에는 중앙기관에서 근무를 못 하고 다른 곳으로 발령을 나갈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럴 줄 알았어.' 한다.

사람들에게 못 되게 굴고 직원들 괴롭히더니 그럴 줄 알았다고 어쩌면 벌 받은 것이라 한다. 


상사의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묘했다.

나도 머리가 아픈데 나도 머리에 이상이 있는 사람인데 나도 그 상사 때문에 아주 힘들었는데...

사람들은 진짜 그럴 줄 알았을까?  정말 벌이었을까?

사람들은 내가 쓰러졌을 때도 그럴 줄 알았다고 말했을까?




언제나 많은 결정을 하며 살아간다.

매일매일 선택을 하며 그 선택에 책임을 지기도 수정을 하기도 하며 삶을 이어간다.

일을 할 때는 당연하거니와 일상생활에서도 수많은 선택과 결정을 한다.

결과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있었던 그때의 선택들, 조금은 틀어진 부분에 수정을 가미한 일들 그리고 아쉽게 실패한 것들...

옳은 결정을 내릴 수도 잘못된 결정으로 아파할 수도 있다.

'그럴 줄 알았어.'는 없다.

자신이 내린 결정에 남이 '그럴 줄 알았어.'는 없다.

설마 그럴 줄 알았더라도 그 당시 그럴 것 같다고 같이 고민하고 얘기하지 않았다면 그 결과에 대해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자기는 다 알았다는 듯이 너만 몰랐다는 듯이 시간이 지난 후에 이미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결정들에 그럴 줄 알았어를 시전 하며 다 아는 척, 너만 바보라는 척, 신이나 된 척할 필요는 없다.

그냥 입 다물고 보고만 있었으니 그 결과에도 입 다물고 자기 할 일이나 하면 된다.


우리는 결국 다양한 경험과 형태들로 크고 작은 생채기를 남기며 매일을 살아간다.

매일은 하루가 되고 이틀이 되어 어느덧 내가 걸어온 나의 삶이 된다.

삶이기에 옳은 결정은 칭찬하고 잘못한 결정은 '그때는 이게 최선이었잖아.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야. 방법을 찾아보자.' 하면 된다.

과거로 이미 결정된 일에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 대신 현재의 일 그리고 미래의 일에 '그렇게 하자, 이렇게 해 나갈 거야.' 하면 된다.

그리고 현재의 일이 미래의 일이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되었을 때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시금 새로이 출발 선상에 서면 된다.

어쩌면 조금은 결과를 빗나간 과거의 모습으로 남게 되더라도 그 모습이 결코 잘못된 선택으로만 남아있지는 않다.

원하던 결과에는 성취감과 보람 그리고 만족감이 찾아올 것이고 조금은 빗나간 결과에는 시행착오에 대한 분석과 또 다른 도전을 향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그럴 줄 알았어'는 없다.

갑자기 몸이 아파 출근을 하지 못하는 그 상사에게도 '그럴 줄 알았어'는 없다.

몸의 이상신호도 무시한 채 앞만 보고 달려온 이에게 쉴 시간이 주어졌을 뿐이라는 사실로 받아들이면 된다.

조금은 이른 나이에 몸이 마비가 된 경험을 한 나 역시 조금은 이른 나이부터 몸을 돌보고 아낄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과 이 경험으로 나에게 온전히 쉴 시간을 주어야 하는 이유를 깨닫고 한 발짝 물러나 쉴 시간을 가지면 된다.


세상의 시간과는 반대편에 서서 세상과는 반대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지금.

어서 현장에 복귀해서 다시 일하고 또 일하고 한 단계 더 높이 승진을 해야 하지 않느냐, 그러다가 잊히고 나중에 후회한다, 그렇게 쉬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말 듣기 좋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나에게 '그럴 줄 알았어'는 없다. 

몇 번을 곱씹어 봐도 반대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지금의 시간이 과거가 되어 돌아보더라도 나에게 '그럴 줄 알았어'로 남아있을 수는 없다.

세상과 반대방향으로 걷다 보면 반대의 것들이 보인다.

정말 소중한 것, 잊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온전한 나의 모습이 보인다.

일 년 이 년 일찍 승진하는 게 얼마나 하찮은 경쟁인지 알게 된다.

그 하찮음 속에서 홀로 반짝 빛을 발하고 있는 진짜의 내 모습을 보게 된다.

그렇기에 '그럴 줄 알았어'는 없다.


서서히 해가 뜨고 날이 밝아 온다.

패딩을 입고 장갑을 야무지게 끼고 조금씩 밝아오고 있는 펜션 밖으로 나갔다.

아직은 모두가 잠든 시간. 혼자 조용히 등산로를 산책한다.

주차되어 있는 차들 위로 서리가 잔뜩 끼어 있고 '호호'하고 불어 본 입에서 뽀얀 입김이 나온다.

온전한 나의 시간이다.

이 시간을 즐기려 그 새벽에 일어났나 보다.

잠시 새벽 산책을 즐기는데 어제는 보지 못한 게시판이 눈에 들어온다.

'멧돼지 출몰 지역, 멧돼지 조심'

멧돼지가 있단다. 그러니 조심하란다.

멧돼지가 나오면 어떻게 뭘 조심하지? 이미 나왔는데?

그럼 등산로를 막아야 하는 거 아냐?

아직은 어두운 등산로, 입김이 나는 차가운 공기 속, 등에서 식은땀이 살짝 난다.

'멧돼지라니, 내 이럴 줄 알았어!'

이럴 줄 알았어

글. 그림 by 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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