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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해 Dec 10. 2023

꾸준함_세상 어려운 일

2023년 여름이 오기 전 기타 학원을 다녔다.(연말인 지금 생각해 보면 올해 한 일중에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인 것 같다.)

예전부터 기타를 배우고 싶었다.

악기 하나를 잘 다루고 싶었다.

악기를 잘 다루는 사람이 내 기준 최고로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뭐 이런 것보다는... 멋졌다.

그래, 나도 멋져 보이고 싶었다.

오래전부터 기타를 배우고 싶었지만 중앙기관에서 열심히 일만 하던 때에는 가끔 '아... 나도 기타 잘 치면 좋겠다.'라고 생각만 할 뿐 기타 학원을 가는 건 엄두도 못 내었고, 올해 중앙기관에서 나와 새로운 기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이번에는 진짜 기타를 배워야지라고 생각했었다.

새로운 기관에 발령받은 후 서너 달은 일에만 집중했고 어느 정도 일에 익숙해지고 난 다음부터 동네 기타 학원을 알아보았는데, 생각보다 기타 학원이 많았다.

여러 군데 전화로 문의를 하였는데 지금 다니고 있는 기타 학원 원장선생님과의 통화가 가장 기억에 남아서 고민 없이 지금의 학원을 선택했었다.

지금 다니는 학원은 타 학원에 비해 수강료가 저렴한데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원장님께 전화상으로 대뜸 이렇게 물었다.

"원장님 다른 학원에 비해 수강료가 많이 저렴한데 이유가 있나요?"

어이없는 질문에 원장님이 속 편한 웃음소리를 내시며,

"우리는 수강생이 많거든요, 하하하."

정말 간결하고 깔끔한 답이었고 그 답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인연이 닿은 학원을 몇 번의 계절을 지난 지금도 다니고 있다.




기타 학원에 귀여운 생명체가 둘 있다.

하나는 러시안블루 고양이인데 원장님 댁 고양이란다.

가끔씩 학원에 와서 캣타워에 널브러져 있는데 정말 귀엽다.

항상 '고양이, 나만 없어!' 삶이라 학원에 고양이가 있는 날에는 꼭 내 것인 양 귀여워했다.

그리고 우리 기타 선생님, 귀엽다.

남자 선생님인데 몇 살인지 기타 선생님이 본업인지 집이 어딘지 MBTI가 뭔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기타로 맺은 인연인데 다른 부분을 가미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긴 한데 아무래도 기타 선생님도 나와 같은 생각인 듯싶다.

몇 번의 계절을 지나도록 보고 있는 사이지만 기타 외에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으신다.

아무튼 귀엽다.

20대 후반이나 많이 되어야 3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처음 본 날 똘똘이스머프가 연습실에 들어오는 줄 알았다. 똘똘이스머프나 명탐정 코난 같은 이미지다.(어차피 선생님이 이 글을 볼 일은 없을 테니 내 마음대로 양껏 속 시원하게 표현하고 싶다.)

아주 똘똘해 보이는 이미지인데 목소리까지 또랑또랑하다. 목소리가 좋아서 혹시 보컬수업도 하시냐 물어본 적이 있는데 아니란다. 목소리가 좋다는 말은 처음 들어 봤다며 씩 웃었다.(흠. 귀요미)

인상 좋은 원장님과 똘똘이 기타 선생님 그리고 고양이. 내가 다니는 학원의 모습이다.




기타를 시작한 지 두어 달이 지났을 때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근데요, 띠딩띠딩 하는 거 있잖아요, 기타 한 줄씩 튕기면서 하는 거... 그거는 언제 배워요?"

"아... 아르페지오 말씀이세요?"

"이름은 몰라요. 그냥 띵까띵까 하는 거"

얼마나 무식한 질문이었을까? 이 무식하고 괴상망측한 질문에도 귀요미 선생님은 정성껏 답을 해주셨는데...

"제가 기타를 가르쳐보니까요, 아르페지오로 빨리 넘어간 수강생들은 대부분 기타를 그만두시더라고요.

코드로 연주를 할 때는 한 음이 소리가 안 나더라도 표가 잘 안나거든요. 그때는 잘 모르다가 아르페지오로 연주를 하게 되면 한 음 한 음 연주를 하니 그제야 소리가 잘 안나는 걸 느껴서 다시 기타 코드법부터 연습을 하느라 고생하시고 아니면 한계를 느끼고 그만두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만의 커리큘럼이라고 한다면 아르페지오는 되도록 늦게 시작하는 거예요. 시간이 한참 지나서 다시 코드연습으로 돌아가지 않도록요. 그런데 원하시면 아르페지오 가르쳐드리는 것부터 할 수는 있어요."

"아... 그럼 선생님. 저는 아르페지오 제일 뒤에 제일 늦게 한~~~ 참 뒤에 가르쳐주세요. 저는 성실하지도 열심이지도 않은데 잘하고 싶은 욕심만 많아서요. 거기다가 또 완벽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엄청 받고 결국 관두고 딱 이래요. 아마 코드연주도 제대로 못 하는데 한 음씩 내기를 했다간 금방 관둘 거예요. 그러니 제~~~ 일 뒤에 한참 뒤에 띵까띵까를 가르쳐주세요."

"넵. 제일 한참 뒤에 띵까띵까 합시다."


성실하지 않다. 꾸준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동안 꾸준하게 성실히 한 건 직장생활뿐이었다. 이 또한 지금은 유한 파업 중이지만.

직장생활도 직장이었으니 꾸준하게 성실히 다녔을 뿐 직장이 아니었음 진작에 관뒀을 것이다.

초여름에 댄스학원을 다닌 적이 있는데 한 달 만에 그만두었었다.

운동은 해야겠는데 날은 점점 더워지고 있어 걷기만 계속할 수가 없었고 헬스를 하자니 재미가 없어서 선택한 것이 댄스였다.

댄스는 단체 운동이다 보니 못 하는 게 너무 두드러졌다.

남들은 신경도 안 쓰는데 다른 사람보다 못하는 내가 나만 신경이 쓰였다.

거기다 뭐든 완벽해야 하는 성격에 한 동작도 그냥 넘기지를 못해서 진도는 더디기만 했고 한 동작을 오십 번도 넘게 혼자 되풀이하곤 했었다.

학원을 다녀와도 집에서 유튜브를 보면서 진짜 진심으로 열심히 했었다.

그러다가 한 달 만에 알게 되었다. 댄스는 나와 맞지 않음을... 거기다가 내가 선택한 건 방송댄스였기 때문에 일단 댄스는 고사하고 노래도 처음 듣는 곡이어서 쉽지가 않았다. 그 한 달간 평생 들을 아이돌 노래는 다 들은 것 같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매일같이 댄스연습을 하다가 문득 깨달은 것이다. 안 맞네... 동작이 안 되니 너무 스트레스받네. 대회를 나가는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왜 운동으로 하는 댄스조차도 완벽해야 하는 거지?

그만하자. 그렇게 한 달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그만두던 날. 원장선생님께 그만둔다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말을 했는데...

원래 그만둔다고 하면 이유도 물어보고 아쉽다고 하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보자 하지 않나?

알았단다. 한 번을 말리지도 않고 이유도 물어보지 않으셨다. 그냥 알았단다.

내가 그만둘 게 보였나 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또한 원장선생님 스타일이셨나 싶은데 그래도 한 번을 안 말리시니 나로선 더더욱 과감히 그만둘 수 있었다.(말리셨음 한 달은 더 했을 수도...)


이렇듯 꾸준하지도 성실하지도 않은 나여서 기타는 더욱 놓고 싶지 않았다. 

이거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 싶었다. 진짜 뭐라도 하나만...

그렇게 꾸역꾸역 기타를 배운 지도 반년이 지나갔다.

학원가는 날에는 가기 한 시간 전부터 거실에서 뒹굴거린다. 학원 빠질 만한 이유를 찾으려고...

가기 싫어~ 날이 추워~ 수많은 고뇌와 번뇌를 반복하다가 꾸역꾸역 기타 가방을 등에 업다시피 하고 끌려가는 소처럼 나가서 딩가딩가 하다 온다.

"선생님, 오늘은 정말 학원에 오기 싫었어요."

"또 왜요..."

"날이 춥잖아요."

"히터 틀어드릴게요."

우리 선생님은 분명 대문자 T 일 것이다.(나중에 꼭 물어봐야지)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어쨌든 기타를 계속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기분이 좋다.

선생님한테 가끔 칭찬도 듣는다. 물론 혼도 내신다.(흠. 귀요미)

잘한단다. 내가 잘하고 있다니 스스로 우습지만 잘한단다.

믿지를 않으니 비교치를 못 봐서 본인이 못 느끼는 거다, 지금 기타를 시작한 개월 수를 생각하면 잘하고 빠르다 하신다.  배우는 속도가 중고등학생과 비슷하단다. 흠...

그런데 열심히 안 한단다. 좀만 더 열심히 하면 진도도 엄청 빠르게 나갈 것 같은데 너무 열심히 안 해서 안타깝단다.

우리 선생님은 분명 T다.

기분 좋으라고 빈 말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이런 선생님이 칭찬을 하신다.  물론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도 하셨지만.

몇 달 전에 이 말을 듣고 난 후 내가 정말 열심히 안 하나 분명 집에서 연습도 하는데... 곰곰이 생각했다.

연습을 하기는 한다. 대신 일주일에 두 번? 세 번?

매주 목요일에 학원을 가는데 일주일 내내 놀다가 수요일, 목요일 또는 화, 수, 목 이렇게 학원 가는 날이 다가올 때쯤에만 연습했다.

그러니 잘 될 리가 없었다. 코드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고 소리도 정확하게 나질 않았고 맑은 소리도 내지 못하니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를 받으니 하기 싫어지고...

그런데도 리듬감이 좋고 음감도 좋다고 하셨으니 어쩌면 원 그릇은 괜찮을 지도 모르겠다.

그 후 매일 기타를 쳤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기타를 쳤다. 하루에 단 십 분이라도 기타를 쳤다.

손가락이 굳는 느낌이 사라졌다. 무리 없이 코드 진행을 하고 코드마다 청량한 소리가 났다. 그러다 보니 기타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사라졌다.


지금은 집 안에서 왔다 갔다 할 때마다 기타를 치고 있다. TV를 볼 때도 기타를 치고 있다.

일주일 중에 하루 이틀을 집중적으로 연습하는 것보다 단 십 분이라도 매일 연습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성실함, 꾸준함은 어떤 노력보다 어렵지만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가장 큰 무기인 듯하다.

몇 달 전 매일 십 분만이라도 연습해 보자, 그래도 잘 되지 않으면 그때 그만두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매일 연습했을 때의 엄청난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면 아마 기타를 그만뒀을 것이다.


아직 일 년도 되지 않았는데 꾸준하다고 평가하긴 이르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떠올려보면 꾸준하게 하고 있는 건 기타 뿐이니 내 기준에서 이 정도면 스스로 칭찬해 볼만하다.

항상 처음에 의욕 넘치게 시작을 하고 파이팅 뿜뿜 외치며 진행을 하다가 몇 달이 지나고 반년쯤 지나면 흐지부지 되기 일쑤였다.

브런치만 해도 그렇다.

처음 작가승인을 받았을 때 내 의욕은 거짓말 조금 보태 하늘을 찌를 듯했다.

적어도 매주 글을 쓰고 브런치에 올리고 그러다가 그림도 그리기 시작하면서 글에 맞는 삽화도 그려 브런치에 올렸다. 그러다가 반년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난 후에는 한 달에 한 번 글을 쓰다가 또 몇 개월에 한 번 그렇게 흐지부지되고 있다.




무언가를 매일 한다는 것,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몇 번씩 꾸준히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쉬운 일이 아니듯 꾸준함의 결과는 사람을 미치게 할 만큼 행복함과 성취감을 가져다준다.

그 결과에 대한 보상이 너무도 확고하고 자명한 탓에 꾸준함을 유지한다는 건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꿈을 위해 하루하루를 반복하며 몇 년의 시간을 쌓아 올리는 사람들, 자신의 분야에서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여전히 매일매일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들, 한 편도 힘든데 매일을 그리고 매주 글을 써나가는 작가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어제'가 없다.

어제 했으니까 오늘은 좀...

지난주에 했으니까 이번 주는 좀... 이 없다.

그냥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또 다른 날이니 오늘은 오늘이라 또 하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지난주에 얼마나 노력했나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냥 어제도 하고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할 거니까.

의지도 약하고 지구력도 없고 타협도 잘하는 나에게  '꾸준함'은 세상 어려운 일이지만 기타를 아직도 치고 있듯 매일매일 단 십 분만이라도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면 나도 조금은 변하지 않을까.

이제 기타 말고 뭘 꾸준히, 하루에 단 십 분만이라도 해야 할까?




요가학원에 등록했다. 날이 추워져서 걷기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고 집에 있는 러닝머신은 옷걸이로 변신해서 요가학원을 등록했다. 일단 3개월을 등록했는데 다음 주부터 시작이다.

요가를 하는 나에게 '꾸준함' 그 세상 어려운 일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딩가딩가

글. 그림 by 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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