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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파링 Feb 02. 2021

너네는 동생 없지?_희망 편

고3 언니 초2 동생 육아일기_1화


"너네는 동생 없지?"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첫째, '나는 동생이 있어서 좋은데 너네는 없구나? 나를 부러워해라! 하하!' 동생 덕분에 좋다는 뜻. 둘째, '야... 너네가 동생이 없어서 뭘 모르나 본데, 너무 힘들어! 부럽다ㅠㅠ' 동생 때문에 힘들다는 뜻.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친구나 지인들과 모이면 꼭 한번 대화 주제가 되는 <언니(누나, 형, 오빠)가 더 힘들다 VS 동생이 더 힘들다> 토론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발언이다. 나는 매번 맏언니의 입장에서 열변을 토하려고 했지만 솔직히 내 동생들은 내가 보고 들은 다른 집 동생들에 비해서는 착하고 나와 친하기 때문에 할 말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번 글에서는 동생들의 언니로 살면서 느꼈던 좋은 점들을 자랑해보겠다. 여러분은 이런 동생 있나요?



왼쪽부터 찐빵 양(둘째), 사자 양(셋째), 양파링(나)


잠깐! 우선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소개부터 하겠다. 우리는 첫째인 나 양파링과 둘째인 찐빵 양, 셋째인 사자 양 이렇게 세 자매다. 양파링이라는 내 이름은 브런치에서 활동하려고 별 뜻 없이 지어낸 필명이고, 둘째와 셋째의 별명은 평소 우리 식구들끼리 닮았다고 부르는 데에서 따왔다. 둘째는 찐빵을, 셋째는 사자를 닮았다. 나는 고등학생, 찐빵은 중학생, 사자는 초등학생이다.




1. 동생아 이것 좀 갖다 줘~

2. 동생아 뭐해?

3. 내 동생 왜 이렇게 귀여워?

4. 동생아 사랑해!


내가 막내 사자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 다섯 가지다. 누군가의 동생으로 살고 계신 분이라면 '저런 말을 하는 언니라니...'라며 감탄 혹은 질색을 하실지도 모르겠다. 동생들과 사이가 나름 돈독한 편이라서 나올 수 있는 말들 같다. 나 혼자만 돈독하다고 생각하는 걸 수도 있긴 하지만...


1. 동생아 이것 좀 갖다 줘~


나는 우리 세 자매에서 귀차니스트를 맡고 있다. 방에 콕 박혀서 노트북을 하거나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며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낸다. 한 번 자리를 잡고 앉으면 엉덩이를 떼기가 싫어서, 가끔, 아니 솔직히 자주 동생들을 불러 이런저런 잔심부름을 시킨다. 아마 전국의 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언니의 행동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사자야 가위 갖다 줘! 사자야 안경 갖다 줘! 사자야 언니 핸드폰 봤어? 사자야 나 물 좀,


"으휴 양파링! 언니가 떠다 마셔!!"


이렇게 꼭 한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가끔 투덜대면서도 성큼성큼 내가 부탁한 물건을 가져와 전해주는 착한 내 동생 사자 그리고 찐빵. 어떨 땐 든든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내가 방에 혼자 있으면 꼭 같이 먹자며 불러주거나 내 몫을 챙겨 가져와준다. 그게 당연하다고 여겨 크게 불만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 사실은 당연한 일이 아니니 늘 고맙고 기특하다. 굳이 덧붙이자면 나도 동생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걸 꺼려하지 않기 때문에, 늦둥이인 사자가 나와 찐빵이 서로 돕는 모습을 보고 배운 것 같다.


2. 동생아 뭐해?


내가 심심할 때면 혼자 놀고 있는 사자나 찐빵에게 가서 은근슬쩍 이렇게 물어본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자매를 두고 사람들은 언니가 동생을 놀아준다고 보겠지만, 늘 그렇지만은 않다. 개인적으로 인형놀이나 역할극, 어린이용 보드게임 같은 놀이는 '내 기준엔 재미가 없지만 놀아준다'는 기분으로 하게 된다. 그런데 그림 그리기, 몸놀이, 블록 조립, 동화책 읽기 등등은 나 역시 즐긴다.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논다. 그리고 찐빵과 사자가 둘이서만 하하호호 놀고 있으면 왠지 끼고 싶은 마음이 들어 방 문턱에 서서 괜히 기웃거린다.


나 혼자 놀 때에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SNS를 하거나 유튜브 동영상을 보거나 모바일 게임을 하는데, 이것도 계속하다 보면 눈이 아프고 지겨워질뿐더러 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고 있다는 자괴감도 든다. 그 기분이 깊은 우울함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잦다. 그럴 때 동생이 내게 힘이 되어준다. 순수하고 씩씩한 그 애를 보고 있으면 몽글몽글 가슴을 울리는 애틋함이 우울함을 달랜다. 혼자 놀 때보다 둘이 놀 때 더 많이 웃는 나를 발견하고 새삼 놀란 적이 있다. 찐빵까지 셋이 모이면 서로 수준이 고만고만한 장난꾸러기가 되어 깔깔거리기도 한다.


어제는 셋이 같이 벽에다 낙서를 했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중인데, 나중에 가려진 부분이라고 해서 마음껏 그림을 그렸다.


(회색으로 칠한 부분은 실명이 적혀있어 가렸다)


실은 어제 저녁에도 내가 이유 없이 기분이 나빠 투덜이 모드였는데, 그런 나에게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고... 자기들끼리 너무 재밌게 그림을 그리는 찐빵과 사자를 보다가 나도 결국 컴퓨터 싸인펜을 들고 쪼르르 벽 앞으로 갔다. 신나게 낙서를 하다 보니 꽁하던 기분이 어느새 풀어졌다.


내가 그린 당근, 토마토, 가지, 오이
사자가 그린 무와 쪽파
사자의 작품


사자가 여러 가지 색의 색연필을 한 손에 뭉텅이로 들고 그림을 그리길래 "뭐야 피카소야? ㅎㅎ" 했더니 맞다며 작품을 뽐냈다. 피카소를 알긴 알고 말하는 건가 싶어 "근데 피카소가 뭔데?"라고 물었더니 하는 대답. "뭔가 이상하게 막 한 거 같은데 멋있는 거." 그래. 네가 맞다. 피카소가 사람인지는 모르면서 내가 자신 그림을 피카소에 비유한 포인트는 정확하게 캐치하는 똑똑이 사자에게 내가 또 졌다.


3. 내 동생 왜 이렇게 귀여워?


보통 잘 먹는 모습이나 잘 노는 모습을 보다가, 똑 부러지게 말하는 모습을 보다가 너무 귀여워서 충동적으로 사자의 통통한 양볼을 붙잡고 하는 말이다. 내가 이 말을 많이 하긴 했나 보다. 이젠 "사자야~" 하고 조금만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사자를 부르면 '오늘도 저러네. 나의 인기란.' 하는 눈빛과 말투로 "왜 불러. 왜 이렇게 귀엽냐고?"라며 되묻는다. 그럼 나는 좀 어이가 없기도 하고 그렇게 되묻는 게 또 귀엽다는 생각을 한다. 나참...


4. 동생아 사랑해!


언제는 '나에게 사랑이란?'을 주제로 글을 써서 내야 했다.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로맨틱 혹은 섹슈얼한 끌림을 강하게 느껴본 적이 없어서, 흔히 사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연애적 감정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별로 없었다. 내가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표현인 '진정한 사랑'을 느껴본 대상은 친구들, 그리고 동생들이다.


누군가 아파하자 내가 아픔을 덜어주고 싶어질 때, 그로 인해서 살아갈 용기가 생길 때,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생각과 기분을 가지고 있는지 자주 궁금해질 때,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생각과 기분을 가지고 있는지 그가 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을 때,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그를 응원하고 싶을 때,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으면 슬퍼질 때, 그의 평범한 말과 행동이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일 때, 세게 마주 안아주고 싶을 때, 그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주고 싶을 때, 그를 위해서 시간을 내어줄 수 있을 때, 다툼이 일어나거나 상처를 주고받아도 신뢰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를 회복해낼 수 있을 때, 함께하는 일을 자꾸만 상상하게 될 때… 이런 순간들마다 나는 사랑을 하고 있다고 느껴요. 살아오면서 이런 순간들이 없었다면 나는 덜 웃고 더 울었을 거예요. 앞으로 이런 순간들이 많이 많이 생긴다면 나는 덜 괴로워하고 더 기뻐하면서 살 수 있겠죠? 그렇기에 나에게 사랑은 정말 정말 필요해요.

그리고, 사랑을 가능한 많은 존재들에게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죄 없이 고통받고 있는 자연환경과, 소수 집단에 속해있다는 이유로 배제당하는 여러 생명들, 스스로를 사랑하기가 어려워서 마음을 앓는 사람들처럼 많이 괴로워하고 적게 기뻐하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기 때문이에요. 이해, 존중, 평등, 평화… 내가 믿는, 만들어갈 가치들은 전부 사랑을 전제로 하고 있음과 동시에 그 자체가 사랑의 한 측면이에요.


당시 썼던 글의 일부를 가져왔다. 대신 아플 수 있다면 그러고 싶은 마음, 덕분에 살아갈 용기를 얻어서 고마운 마음,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진실하게 느끼는 순간 나는 이게 사랑이구나 매번 새로 깨닫는다. 사랑할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참 소중한 행운인 것 같다. 친한 자매형제가 있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외에도 옷이나 물건을 함께 사용할 수 있어 절약이 된다는 점, 동생 나이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쉽게 소통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는 점, 아동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점 등등 동생의 존재가 나에게 준 선한 영향력의 결과는 더욱 많다. 나도 저 애들에게 그런 존재이고 싶다.


나의 첫 브런치 글인 지난 화에서 나처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이 있는 언니이신 독자 분도, 그런 자매의 엄마이신 독자 분도 댓글을 남겨주셨다. 정말 감사하고 반가웠다. 그분들을 포함한 모든 독자 분들께 이번 글이 각자 자신의 주변 소중한 이들을 떠올리게 하는 계기로써 따뜻하게 가닿기를 바란다.



커버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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