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혼자 있어지는 시간이 많아진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결혼을 했고, 그들의 인생터널에서 나의 입지는 아주 많이 좁아진 듯하다. 매일 하던 친구들과의 카톡도, 전화도, 만남도 뜸해지는 걸 느낀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집에 있는 시간도 길어졌다. 엄마랑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엄마에 대해서 지금까지 가만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의 머릿속에 엄마는 없었으니까.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내 옆에 당연히 있는 사람이니까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오히려 내가 힘들 때 엄마는 도움이 안 된다며 미워하고 마음으로 밀어내기 바빴던 날들이 많았다.
사람의 인생주기에서 3번의 노화가 크게 온다고 하는데 34세/60세/78세라고 한다. 작년에 60세 환갑을 지난 엄마가 요즘 부쩍 눈이 잘 안 보인다며 나에게 이것저것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시력이 좋아 버스정류장의 버스도착시간을 나에게 먼저 말하던 엄마였다. 이제는 핸드폰도 글자를 크게 키워야만 버스 도착시간을 알 수 있단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해서 나보다 식사량이 많았는데 이제는 소화가 잘 안 된다며 조금만 드신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안쓰럽기보다는 짜증을 내는 나는 나쁜 딸이다.
처음으로 가만히 엄마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우리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더라?
매일 이너피스! 우리 보살님!
템플스테이에 엄마랑 둘이서 간 적이 있었다. 평일이어서 그랬는지 엄마랑 나 단 둘만 신청을 했더랬다. 절밥도 먹고 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는데 스님이 엄마한테 '저보다 더 보살님이시네요.'라고 한다. 이유인즉 엄마는 화를 거의 안내시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화의 발화점이 높다고 해야 할까. 보통사람이 화가 날 만한 상황에서도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단다. 어릴 때부터 그랬단다. 나는 화가 나고 신경질이 나도 엄마는 평온하다. 어릴 때는 너무 답답했는데 덕분에 우리 가족이 평온하게 여기까지 잘 살아온 이유라는 걸 깨닫게 됐다. 사회생활 해보니까 그런 사람이 잘 없더라. 우리 엄마가 보살 맞더라.
사랑스러운 수다쟁이!
나이가 들면서 엄마는 점점 말이 많아지신다. 충청도 분인 우리 엄마는 절대 결론을 먼저 말씀하시지 않는다.
'엄마! 결론부터 얘기해! 그래서 핵심이 뭔데?'
뺑뺑 둘러서 말씀하시는 걸 나는 답답하다며 톡 쏘아붙인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은데 엄마는 나만 기다리셨나 보다. 내가 옷을 갈아입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하고 싶으신 말이 참 많으시다. 작년쯤부터 부쩍 말수가 많아진 엄마가 당황스러웠지만 요즘은 웃으면서 엄마랑 대화하는 시간이 편안하다. 엄마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지 알게 돼서 감사한 시간이다.
행운의 여신! 러키맘
우리 엄마는 내가 중학교 때 우리 집에 오셨다. 어릴 때 병으로 돌아가신 친엄마의 빈자리에 우리 엄마가 들어왔다. 당시 어린 마음에 표현은 못했지만 '나도 엄마가 생겼다'는 생각에 속으로 얼마나 반갑고 기뻤는지 우리 엄마는 알까. 엄마 덕분에 우리 가족은 안정도 되고, 집안 분위기도 밝아질 수 있었다. 엄마는 행운의 여신이다. 그만큼 소중한 우리 엄마라는 걸 잊고 살았다.
퇴근 후 피곤하다며 짜증을 내고 방에 들어가도 내일 회사에 가져갈 다이어트 도시락을 싸놓고 잠자리에 드는 엄마다. 어떻게 엄마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몇 달 전부터 츄러스가 뭐냐며 먹고 싶다고 하셨는데 잊어버리고 있었다. 나가서 바로 사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