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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동교 Jan 03. 2024

신해철의 흔적 남아있는 그곳

2023년 12월 28일 문 닫은 "신해철 스튜디오"에 다녀오다

2018년 초, “신해철거리”가 완공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 후로 종종 방문을 고민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2023년 12월 28일을 마지막으로 “신해철거리”에 있는 “신해철 스튜디오”가 문을 닫는다고 들었다. 운영비 문제라고 한다. 몸살 난 몸을 부여잡고 28일 분당구에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신해철답게 장난스러운 초대

횡단보도 너머 “신해철거리”가 적힌 노란색 아치가 보였다. ‘나에게 쓰는 편지’와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같은 대표곡이 적혀 있었다. 작업실에 들어서저마자 “아 이 곳! 했다” <KBS 불후의명곡 – 신해철편>을 비롯해 그가 출연한 여러 TV프로그램의 세트장으로 쓰였던 익숙한 이미지. 신해철의 손길을 떠올리며 슬쩍 고동빛 서재에 손을 갔다댔다.


이 밖에도 심리학과 판타지, 만화책에 이르기까지 넒은 취향을 드러냈다.


가저런히 꽂힌 저서들에 눈길이 갔다. 철학과 역사서가 주를 이뤘고, 루드비히 포이어바흐가 쓴 <기독교의 본질>(1841)와 발터 카스퍼 독일 추기경의 예수 그리스도(1977)도 보였다. 어렸을 적 신부를 꿈꿨던 신해철은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으로 버트런드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1927)를 들었다. 청소년기 교리에 관한 고민이 많았던 걸로 보인다. 노엄 촘스키 <숙명의 트라이앵글>(2001)도 눈에 띄었다.


CD 섹션도 흥미로웠다. 한 칸엔 블랙뮤직이 주를 이뤘고 뉴 에디션의 멤버였던 조니 길과 ‘Just Once’의 알앤비 명보컬 제임스 잉그램, 힙합 소울 그룹 드루 힐과 뉴잭스윙 대부 키스 스웨트의 이름이 보였다. “잡식성 헤비리스너”의 면모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나도 소장중인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와 메탈그룹 화이트 라이언의 1991년 작 <Mane Attraction> LP가 보였다.


신해철이 종종 "셀프 조크"했던 운동화 타이거 CF 

테이블 위 스크랩북엔 90문 90답, 넥스트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 등 귀중한 자료가 들어 있었다. 요즘엔 이런 잡지를 잘 안 보지만 1990년대엔 팬들이 동경하던 스타의 이모저모를 파악할 수 있는 요긴한 매체였다. “이렇게 많은 자료를 수집해두다니 정말 대단한 팬이다” 감탄하며 스크랩북을 탐독했다.


녹음실엔 신해철이 직접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건반과 컴퓨터가 있었다. 넥스트 3집 작업에 세계적인 엔지니어 믹 글로섭을 초빙하고, 비트겐슈타인에선 홈레코딩을 적극 활용하는 등 늘 음향 분야를 선도했던 신해철. 반대편엔 대부분의 정규앨범과 대표곡으로 경력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가 있었다. 넥스트와 노댄스의 음원이 담긴 귀한 마스터테이프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작업실에 머문 1시간 동안 꽤 많은 방문객이 오갔다. 다들 한차례씩 “오늘이 마지막 맞죠?”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한번 신해철의 흔적을 눈과 마음에 담아가려는 사람들. 새삼 그를 사랑하는 팬들이 얼마나 많은지 느껴졌다. 엄숙한 표정으로 스튜디오 구석구석을 응시했던 장발의 방문객이 기억에 남는다.


작업실을 나오니 더 쌀쌀했다. 신해철의 온기가 빠져나가서일까? 한동안 신해철 거리를 걸으며 대표곡의 가사가 적힌 나무팻말과 금빛 신해철 동상을 만났다. 그의 목엔 연둣빛 목도리가 메어이었었다. 어느 팬의 따스한 마음. 


신해철은 음악만큼이나 인간 자체에 관심을 품은 몇 안 되는 뮤지션이었다. ‘절망에 관하여’나 ‘The Ocean: 불멸에 관하여’같은 철학적인 노랫말과 성공보다 행복을,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사상이 적잖은 성찰을 가져다주었다. 2008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넥스트 공연을 볼 수 있었고, 2014년 사망 땐 공교롭게도 군대 휴가를 나와있어 아산병원 장례식에 갈 수 있었다. 평생 음악을 할 것 같았던 그이기에 세상이 허락한 너무 짧은 삶이 더욱 서글펐다. 


올해 10월이면 신해철 10주기다. 그와 관련한 다채로운 행사가 있을 것이다. 혹시 넥스트의 추모 콘서트가 열린다면 꼭 가보고 싶다. 팬으로서 그를 기리는 멋진 팬들이 많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다. 선선하거나 조금 쌀쌀한 2024년 10월의 가을날,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그를 추억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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