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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 Jul 13. 2023

Fitter Happier

건강한 삶을 위한 지침

어제 오후부터 온몸이 시린 듯 아프더니 밤에는 오한이 들었다. 세네 시간 이보다 추울 수 없겠다 싶을 만큼 춥더니 그 이후로는 너무나 더워서 잠에 들기가 어려웠다. 이불을 덮으면 너무 덥고 이불 없이는 추운데 오한이 들어 그런 온도변화에도 피부가 아렸다. 꼭 전에 코로나에 걸렸을 때처럼 아팠다. 목과 코에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인다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뒤척이며 긴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자마자 집 근처 병원에 갔다. 보통이라면 '장염 같아서요.', '감기에 걸려서요.'와 같이 증상을 토대로 내 증상에 나름의 이름을 붙여서 갔을 텐데 오늘은 정말 오리무중이었다. 아침 일찍 설사를 하긴 했지만 이후로는 배도 아프지 않아 장염도 아닌 것 같고 기침도 콧물도 없어 감기도 아닌 것 같았다. 근데 이렇게 고열에 오한과 몸살까지 밤새 나를 괴롭힌 걸 보면 뭔가 이름을 붙일 만큼 강한 녀석일 텐데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의사와의 상담으로 우선 내린 결론은 장염이었다. 하지만 배에서 나는 소리도 딱히 문제가 없다는 말을 첨언한 걸 보면 어제 밤새 앓았던 것으로 그 원이 무엇이 되었든 이미 지나간 것은 아닐까 한다.


 맵고 차고 뜨겁고 짜고 기름진 + 밀가루 음식 금지


장염에 걸려서 병원에 가면 꼭 듣고 오는 격언 같은 말이다. 자극이 적은 음식들을 섭취하며 장을 쉬게 해야 한다는 말에는 정말 깊게 공감하지만 저대로 지키는 건 기숙사에 혼자 사는 입장에서 쉽지 않다. 점심은 학식으로 해결한다고 해도 저녁 식사마다 난관에 부딪힌다. 외식을 하자니 대부분의 식당 음식은 저 격언에 들어맞지 않고 죽을 먹자니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탈락이다. 편의점 도시락도 고기 메뉴 하나씩은 필수로 들어있는 데다 간도 보통 음식보다 강하다. 전에는 김밥을 먹었다. 집 앞 김밥집에서 기본 김밥을 시키면 맵지도, 차거나 뜨겁지도, 짜지도 기름지지도 않은 건강식이 나왔다. 들기름은 K-기름이니 '기름진' 음식에서 빼줘도 되지 않을까? 이런 몇 가지 대안을 제외하면 건강한 식습관을 가꿔나가기란 참 어려운 목표다.


Radiohead, Fitter Happier, OK Computer, 1997

라디오헤드의 3집 OK Computer에 수록된 Fitter Happier는 기계음의 보컬이 좋은 삶에 대한 격언을 읊조리는 2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곡이다. 더 적절하고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일까. 주에 세 번 체육관에서 운동하고 술을 적게 마시고 주변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사려 깊은 운전자가 되는 것. 포화지방과 전자레인지의 음식을 멀리하고 좋은 것들을 먹는 것.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하면 Fitter 하고 Happier 한 삶이 기다릴 것처럼 수많은 조건을 기계적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윽고 곡의 마지막에서는 이 모든 격언에 대한 회의를 강하게 드러낸다. 조용하고 건강하고 더 생산적인 건 결국 우리 속 항생제에 절여진 돼지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의사의 조언이 우리를 돼지로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조언대로 살면 실제로 더 건강해질 테고 그 건강함으로 더욱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동시에 우리 주변을 맴돌며 스스로를 감시하게 하는 지침이 너무나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런 지침이 과연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지에 대한 회의까지 함께 든다. 이런 노력들을 통해 어떤 기준에 Fitter해지 기를 바라는 것일까. 건강한 삶이라는 단어 속 '건강'은 단지 육체적 건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회적으로 건강해 보이는 인간관계, 재정적 건강함, 도덕적 건강함까지 포함하는 삶의 총체에 대한 표현이다. 이들 중 육체적 건강에서의 지향점이 그나마 가장 합의점을 찾기 쉬울 것이나 가장 쉽다는 육체에 대해서 마저도 건강이 보이는 상품으로 간주되며 그 실체를 잃어가고 있다. 다른 방면에서는 더욱 논의가 어렵다. 


결국 중요한 건 자기만의 fitter happier로 향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것일 텐데, 이런 식의 결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만의 기준을 세우기에는 외부로부터의 공격이 너무나 거센 세상이니 말이다. 잠깐 스치듯 봤던 유튜브 쇼츠에서도, 누군가 유명한 사람이 나와서 이야기하는 강의에서도 다들 각자의 기준을 이야기한다. 말 그대로 기준, 가치관이 살포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오염되고 싶지 않아도 살포되는 가치관의 물살에 바짓자락이라도 젖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럴 때면 고전에서 답을 찾는 게 오랜 전통이었지만 지금은 세상이 좀 많이 달라졌다. 우비도 입고 장화도 신으며 가치관의 폭우 속에서 뽀송한 상태로 있으려고 노력해도 결국 내 몸에서 나오는 땀으로 온몸이 젖게 될 테니 말이다. 절제하며 좋다고 여겨지는 것들만 선택하는 방법이 우리 속 돼지가 되는 결말로 이어진다면 차라리 가치관의 폭우 속으로 몸을 던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PS.

Radiohead, Fitter Happier, OK Computer, 1997.


Fitter happier. More productive. Comfortable. Not drinking too much. Regular exercise at the gym (3 days a week). Getting on better with your associate employee contemporaries. At ease. Eating well (no more microwave dinners and saturated fats). A patient, better driver.  A safer car (baby smiling in back seat). Sleeping well (no bad dreams). No paranoia. Careful to all animals (never washing spiders down the plughole). Keep in contact with old friends (enjoy a drink now and then). Will frequently check credit at (moral) bank (hole in the wall). Favours for favours. Fond but not in love. Charity standing orders. On Sundays ring road supermarket. (No killing moths or putting boiling water on the ants) Car wash (also on Sundays). No longer afraid of the dark or midday shadows. Nothing so ridiculously teenage and desperate. Nothing so childish. At a better pace. Slower and more calculated. No chance of escape. Now self-employed. Concerned (but powerless). An empowered and informed member of society (pragmatism not idealism). Will not cry in public. Less chance of illness. Tyres that grip in the wet (shot of baby strapped in back seat). A good memory. Still cries at a good film. Still kisses with saliva. No longer empty and frantic. Like a cat tied to a stick that's driven into frozen winter shit (the ability to laugh at weakness)


Calm. Fitter, healthier and more productive.


A pig 

In a cage

On antibio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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