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씩 의사 선생님을 뵙는다. 가끔 먼 친척처럼 느껴진다. 마냥 낯설지도, 아주 친하지도 않아서다. 그래서 마음속 이야기가 미주알고주알 흘러나온다. 어떨 땐 내 인생의 NPC 같다. 똑같은 자리에서 한결같은 시선과 목소리로 나에게 질문을 던지신다.
“지난달은 어떠셨어요?”
월요일 아침, 몇 번째인지도 모를 진료였다. 나는 조용히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한 달은 꽤 길다. 좋은 날과 나쁜 날이 번갈아가며 나타난다. 좋았다, 나빴다 중 한쪽에 치우친 답을 할 수 없었다. 나의 애매한 대답에 의사 선생님은 상냥하게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셨다.
“요즘 아이들 가르치는 건 어때요?”
“괜찮아졌어요.”
“그래요? 어떤 점에서요?”
하루 종일 말하는 직업을 갖고서도 자꾸 혀가 꼬여 말은 두서없이 나왔다.
요 근래 나는 백점 짜리 수업을 하려고 애쓰지 않는다고, 내가 백을 던진다고 아이들이 백을 전부 흡수하는 게 아니니 함께 즐거울 수 있는 선에서 조절한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부담을 많이 내려놓은 것 같다고 하셨다. 사실이었다. 처음 아이들을 향한 내 기준치는 꼭대기에 있었다. ‘논술 학원을 다니면 이만큼은 써야지.’ 같은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거기까지 아이들을 끌어올리려니 모두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 수업이 100%라면 아이들은 1%만 얻어가도 된다고 마음을 바꿨다. 오늘이 1%라면, 다음엔 2%, 그다음엔 3%가 되어 언젠가 100%를 쌓을 테니까. 아이들의 눈높이로 내려오자 교실에 웃음이 더 많아졌다.
“선생님, 그런데 여섯 명당 한 명 꼴로 주의력이 부족한 아이가 있어요.”
”여섯 명당 한 명이요? 확률이 높네요?”
평소에도 주의력 결핍이 있는 아이들이 등록할 때마다 의사 선생님께 이런저런 궁금증과 해결 방법을 많이 여쭤보았다. 그때마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조언을 해주셨다. 이번엔 한 초등학교에 강연을 나갔을 때 만드셨다는 ADHD 관련 자료를 건네주셨다. 이 자료를 보면 아이들을 이해하기 쉬울 거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이번엔 궁금한 점을 여쭤보았다.
“제가 느끼기엔 전보다 많이 나아졌는데, 밤에 약을 깜박하고 안 먹으면 새벽에 자주 깨요. 숨쉬기도 힘들고요. 약이 효과가 있는 걸까요?”
내 말을 들으신 의사 선생님께서 이마를 턱 짚으셨다. 지난번에도 ‘플라세보 효과 아닐까요?’하고, 최근 들어 느끼는 내 긍정적 변화에 물음표를 달았기 때문이다. 곧바로 의사 선생님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모든 약은 효능을 검증하기 위해 충분한 실험을 거쳐서 나오는 것이라는 자세한 설명과 함께 약을 의심하지 말라도 신신당부를 하셨다. 약은 동일하게 처방해드릴게요, 라는 마지막 말씀을 뒤로하며 진료실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