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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Nov 24. 2022

저마다의 슬픔

잠수 탈출기 




  학원 현장에 있다 보면 코로나가 일으킨 영향이 피부에 하나씩 와닿는다. 단체 생활의 부재로 인해 이기주의를 장착하고,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지켜야 할 암묵적 규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집에서 온라인을 통해 학교 수업을 들어서일까. 아이들은 울기만 하면 부모님이 밥을 먹여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던 유치원생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선생님, 저는 다른 애들보다 불쌍해요.” 


  아토피가 있는 한 남자아이가 내게 말했다. 목덜미 피부가 우둘투둘 일어나고, 빨갛게 긁은 흔적이 보였다. 11월 말 찬바람이 부는 날씨에도, 자신은 더운 곳에 있으면 안 된다며 창문을 기어코 열었다. 나는 아이의 말을 듣고, 창문을 닫으며 대답했다. 


  “모두 저마다의 슬픔이 있는 거야.” 


  내가 왜 그렇게 대답했을까. 아직 어리다 보니 내 관심이 필요해서 그랬을 수도 있는데. 지나치게 어른 관점으로 본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밀려온 우울감에 어젯밤 두 시간 일찍 퇴근했다. 김치찌개나 닭가슴살 칼국수를 요리할까 싶었는데, 집이 가까워질수록 저녁밥을 만들어 먹을 기운이 사라졌다. 세탁기는 할 일을 다 마쳤다고 알려주는데, 걷은 빨래가 아직 산처럼 쌓여 있었다. 당장 널고, 개야 했다. 여러 옷이 뒤엉켜 구분이 안 되는 모습이 꼭 나 같아서 보기가 싫었다. 몸을 일으키고 꾸역꾸역 빨래를 갰다. 


  열두 시간 가까이 잤다. 위층 진동 소리에 새벽에 깨긴 했지만, 다시 잠들었다. ‘출근해야 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라고 생각하지 말고 ‘사람을 만나러 가야지, 일하러 가야지하는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하면 기분이 낫다길래 ‘아이들을 만나러 가야지’ 하면서 일어났다. 단백질 셰이크 마시고 나와 편의점에서 탄산수, 제로콜라, 제로 몬스터와 삼각김밥을 하나 샀다. 


  매번 비슷한 패턴이다. 지난달에는 의사 선생님께 다 나은 것 같다고 말했는데, 다음에 가면 너무 힘들다고 말하자고 다짐했다. 출퇴근하는 길에 숨을 쉬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고, 그냥 누가 나를 망치로 쾅 때려서 산산조각 내줬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뜨거운 물을 부어서 조각난 나를 끓여 녹인 다음, 다시 굳혀서 그냥 바위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이 기분을 꾹 눌러 참고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나도 오늘만큼은 어린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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