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 탈출기
엄마는 매일 아침마다 욕실을 청소하셨다. 내가 일찍 외출할 일이 생기면, 엄마와 욕실을 쓰는 시간이 겹쳤다. 우리 집 최고 권력자는 엄마였기에, 아빠도 나도 엄마가 청소를 마칠 때까지 꿍얼거리며 기다렸다.
우선 샴푸와 락스를 섞는다. 엄마는 샴푸를 만능 세척제라고 생각하셨다. 나는 사춘기 때부터 내 속옷을 직접 손으로 빨았는데, 엄마가 샴푸를 적극 추천하셨다. 그렇게 만든 비눗물을 벽과 바닥, 변기, 세면대까지 구석구석 붓는다. 그다음 작은 솔로 거품이 나도록 쓱쓱 문질러 닦으셨다. 예전에 욕조가 있었을 땐 욕조까지도 청소 대상이었다. 샤워기로 비눗물을 흔적 없이 밀어내고, 남은 물기까지 마른걸레로 닦아야 청소는 끝이 났다. 어렸을 땐 모든 집 욕실이 우리 집과 같을 줄 알았다. 혼자 살면서부터 매일 욕실 청소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부지런해야 할 수 있는 일인지 깨달았다.
세면대 위에 까만 먼지가 앉을 수 있다니. 세면대에 붙은 먼지의 원인을 찾다가 관두었다. 변기 속에 분홍색 물때가 띠를 두른 모습도 처음 보았다. 거울은 만지지도 않았는데 얼룩이 졌고, 수전은 닦아도 몇 시간만 지나면 금방 또 더러워졌다.
그중 제일 골치 아픈 건 물때이다. 내가 사는 곳은 임대주택이라 따로 줄눈 시공은 하지 않았다. 하얀 격자무늬 사이에 검은색, 주황색, 분홍색, 진한 하얀색까지 다채로운 물때가 생겼다. 착 붙는 락스, 물티슈에 락스 물 묻혀 반나절 놔두기, 샴푸와 락스 물 섞어 쓰기 등 모든 방법을 대동해도 다시 또 나타났다.
같은 자리에 물때가 자꾸 생기는 이유는, 그 부분에 물이 많이 묻기 때문일 것이다. 욕실은 마음과 참 닮았다. 더러움과 깨끗함이 공존한다. 게다가 물기가 많은 날도 물기가 적은 날도 있다. 같은 자리에 같은 물때가, 같은 이유로 같은 상처가 반복된다.
그래도 욕실은 환풍구가 있어 물기를 말릴 수 있다. 락스 물로 더러운 부분을 다시 깨끗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마음엔 환풍구도 청소용 락스도 없다. 그래도 외면할 수 없다. 지우지 않으면 곰팡이는 더 커지고, 색깔은 더 짙어질 걸 알기 때문이다.
본가처럼 깨끗한 욕실을 만드는 방법은 주기적인 청소 말고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일요일마다 욕실 청소를 한다. 평일엔 이른 아침과 늦은 밤 시간밖에 여유가 없어서 할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본 대로 따라 하지만, 마른 걸레질은 거의 하지 않는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선 주기적으로 청소를 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청소를 할 수 있을까? 마음을 청소하는 법도 어깨너머로 배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