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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 May 23. 2021

나는 왜 퇴사만 할까?

예민한 고라니의 이직 역사

회사를 관두자 자연스레 공백기가 시작되었다. 이직 준비는 하지 않았다. 일련의 사건을 겪고 생긴 두려움 탓에 엄두가 나지 않은 탓이었다. 그래서 휴식에 안주하며, 차일피일 취업을 미루었다.


그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를 건져 올린 것은 다름 아닌 바닥난 잔고였다.




모 문구 회사의 디자인 팀 신입으로 들어가게 됐다. 나에게 인수인계를 해준 선배와 팀으로 일을 하는 줄 알았는데, 그는 사실 퇴사를 예정에 두고 있었다. 고로 선배의 자리에 내가 그대로 들어가는 거였고 이말인즉 팀 내 인원은 나 하나 뿐이라는 것이었다.


선배는 '혼자라 외로울 수 있다'는 말을 자주 덧붙였다. 그 말엔 분명한 뼈가 있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외로운 것쯤이야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혼자라 좋은 것도 많은데, 아무튼 해보면 알 거예요. 힘들면 고민 말고 나오고요. 그래도 사무실 분들이 워낙 좋으셔서 재밌고 괜찮을 거야. 잘 적응해봐요."

선배는 인수인계 하루 만에 떠났다. 어딘가 의미심장했던 선배의 말을 실감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본사에서 가지 뻗어 나간 지점까지 총 일곱이었다. 그런데 담당 디자인 팀은 본사 한 곳, 직원은 나 하나였다.


하나 좋았던 건, 정시 퇴근이었다. 다섯 시 오십 분이면 사무실의 모든 인원이 분주하게 가방을 챙기고, 여섯 시 땡 치기가 무섭게 '내일 뵙겠습니다' 연발 외치며 나갔다. 여섯 시면 모든 전력을 오프시켜야 하는 규정이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중에서 나만이 늘 발목을 잡혔는데, 단 하나 뿐인 디자이너란 이유였다.


각 지점의 시니어, 주니어들은 퇴근 직전이면 불티나게 전화를 했다. 요구사항은 항상 비슷했다. '저희 것 먼저 좀 해주세요! 이것만 바로 해 주세요! 빨리요!'


그때마다 부장은 수화기 너머까지 들으라는 듯 소리쳤다.


"내일 해! 빨리 가!"




정시 퇴근을 마다하고 싶지는 않았다. 모든 직장인들의 간절한 바람이 아닌가. 심지어 회사에서 정시 퇴근을 권장하다 못해, 강제성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게 꼭 정한 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었다. 총 일곱 개 지점을 상대로 디자인 시안을 뽑아내야 했던 나는 늘 퇴근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무실에서는 여섯 시 땡만 치면 전기부터 꺼버리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이 모든 흐름과 상황이 이질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퇴근을 하고 나면 핸드폰이 불티나게 울린다. 각 지점에서 요구사항 전달을 빌미로 근무 시간과 무관히 연락을 해왔다. 전화 연결이 제때 안 되면 그 다음은 메시지다.


나의 능력 부족인가, 이곳 인력의 부족인가. 손 쓸 수도 없이 물 밀듯 밀려드는 상황이 벅차기 시작했다.


오픈과 마감, 지점 직원들의 현장 근무, 파트 타임, 아르바이트생 투입... 지점의 생태계는 본사 사무실과 확연히 다른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나는 근무 시간 외 연락은 받지 않는다고 각 지점에 알렸다. 연락통을 열어 두니, 하루 24시간 내내 전화와 메시지가 쏟아진 탓이었다.


피치 못할 상황이라는 게 있을 수는 있지만, '제가 까먹을 거 같으니까 기억 좀 해주세요. 그리고 내일 출근하셔서 바로 저희 것부터 해 주시고요!' 같은 것들이 자정 넘어 올 사안이 맞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였다.


'디자이너 님은 6시 퇴근일지 몰라도, 저희는 아닌데요?'

'아니, 급한 건데 제가 일이 너무 바빠서 깜빡했다니까요. 현장이 어떤지 모르셔서 그러시는 거 같은데...'

'지금 말씀드려서 죄송한데, 이거 바로 필요한 거거든요. 퇴근 전에 주시면 좋겠는데.'


친구들과의 메시지는 스크롤 최하단에 묵혀지게 되었다. 잠을 자기 위해 누우면 전화가 울렸다. 없던 불면증이 생겼다. 결국 모든 알림의 무음 상태가 생활화 되었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지경이었다. 직원들의 부탁 아닌 부탁은 본인들이 바쁘단 이유로 무례함이 더해졌다. 때때로 본인들의 요구를 바로 들어주지 않는다며 모욕적인 언행을 보내오기도 했다. 업무 요청인 척 지점으로 호출하고는 매장에서 대뜸 인신공격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본점 매니저에게 업무 요청을 받아 간 현장에서도 예상치 못한 모욕을 듣게 되었다. 그대로 사무실에 복귀한 나는 부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이 이상 감수하고 넘어갈 수준은 넘어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설마 내가 생각하는 건 아니지?"

온화한 미소와 함께 부장이 넌지시 물었다.


"방금 본점 매니저님이 업무상 확인 요청을 주셔서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업무 관련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시고, 손님들 계시는 현장에서 저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하셨어요."


구구절절 방금 전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이 부분에 대한 시정을 요청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네가 나이가 워낙 어려서 그래. 사회 경험이 부족하니까 그렇게 느낄 수 있어."였다.


"제 사회 경험이 부족한 것과 별개로 누가 보아도 비상식적인 태도가 아닌가요?"

"말 좀 가려서 해야겠네? 지금 조금 흥분한 거 같은데, 사회 생활이라는 건 이렇게 하면 안 돼."

"본인 마음에 안 들면 업무 이야기도 아니면서 업무 이야기인 척 불러놓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망신 주고 모욕을 주는 게 그럼 맞는 사회 생활인가요?"

"진정하고... 매니저님이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겠지. 먼저 숙이고 들어가, 별 일도 아닌 걸 참."


혼자라 외로울 수 있다던 선배의 지난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무슨 말인지 이제 제법 알 것 같았다.


"본점 업무, 지금부터 전체 보이콧 하겠습니다. 저한테 사과하실 때까지요."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부장이 코웃음을 쳤다.


물론,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안다. 그저 객기에 불과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정도의 객기. 꿈틀일지라도, 티끌 하나 영향이라도 끼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디자인 팀 인력 보충은 애진즉 까인 참이었다. 설 연휴도, 추석도 쉬지 못하고 연차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었다. 그 와중에 지점 횡포도 막지 않겠다, 환경도 개선해 주지 않겠다 하니, 나는 이 주어진 조건을 역으로 이용해 수를 두겠단 심산이었다. 여차하면 퇴사도 감행할 생각이었다. 모든 각오가 끝났다.


이곳은 계속 싸워야 하는 자리였다.





어느 날, 화장실에서 울고 있는 나에게 과장님이 찾아왔다.


'힘들지? 뭘 해줄 수 있는 게 없네, 내가... 네 자리에서 일 년 이상 버틴 사람이 여태껏 아무도 없었어. 그것만 봐도 알지.'


홀로 감당하긴 온 사방에 적이 너무도 많았다. 어김없이 울려대는 핸드폰은 꼴도 보기 싫을 정도였다. 어느샌가 불안정하게 뛰기 시작한 심장 소리까지, 이미 적신호는 선명했다.


'괜찮아. 너무 젊고, 예쁘잖니. 너는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


그렇게 일 년을 바듯이 채웠다. 그리고 기다렸단 듯 퇴사했다. 두 번째 회사였다.

그것은 틀림없이 내가 할 수 있었던, 그리고 나를 위한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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