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허용할 수 없는 기준 3가지
사회초년생이던 때를 생각해 보았다.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고, 회사에 입사했다는 사실을 3개월이나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구두로 나눈 월급 지급일은 있었지만, 계약서가 존재하지 않으니 밀리는 일이나 혹여 밀린 월급을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어련히 알아서 주겠지! 돈이 급해? 급하면 그냥 아, 내가 줄게. 계좌 찍어 보내."
"너 진짜 사람 귀찮게 한다."
우리 팀 팀장은 그래도 직급을 떠나서 같은 을의 관계로, 나를 이해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단단한 착각이었다.
월급일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어느 퇴근길, 몇 번째 물어보는 것인지도 모를 물음에 팀장은 참다가 터졌다는 듯 극심한 짜증을 내며 길 한 가운데서 대뜸 소리를 질렀다.
며칠째 대표는 회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사무실로 매번 점심 밥은 챙겨 먹으러 나오는 인간이, 월급날 전후로 감쪽같이 사라진다.
길면 3주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그런 와중에도 거래처 영업 뛴다며 이곳저곳 술을 마시러 다니는 듯했다. (팀장과의 은밀한 통화를 몇 번 듣기도 했고, 목격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월급 지급을 요청하는 나의 연락은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깟 거 좀 기다리면 되는 걸 왜 그걸 못 기다려! 왜! 너, 돈 없어? 대표님 바쁘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냐고, 씨..! 누가 돈 떼먹냐?! 어?"
누가 보면 지가 사장이고, 대표인 줄 알겠다.
“제 월급을 팀장님 사비로 따로 줄 수 있을 만큼 팀장님은 여유가 있으세요?"
내 물음에 팀장이 얼버무렸다. 나는 월급 제때 안 나오면 카드 값도 밀리고, 적금도, 통신비도, 교통비도 막히는 게 태반인데 팀장은 제 월급이 밀리는 상황에서 다른 직원 월급도 줄 수 있을 만큼 여유롭나 보다.
사실 팀장의 반응은 나에게도 심히 충격적이었다.
일단, 제 사비로 직원 월급을 따로 이체해 주겠다는 해결 방식 자체가 흔히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생각의 범주는 아닌 것 같아서 순간 내 정신도 흐리멍덩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제 월급, 제 몫 다 받을 때까지 대표님께 직접 연락할 겁니다, 저는."
"아니... 아니! 내가 준다고, 아! 좀!"
황당무계한 소리만 늘어놓는 팀장을 뒤로하고,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무슨 돈에 미쳐있는 것도 아니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거지 같이."
고래고래 외치는 팀장이 한심했다. 잘못한 건 내가 아닌데 서러워서 눈물날 것 같은 것도 나 하나 뿐이었다.
결론만 빠르게 말하자면, 모든 급여는 전부 받아냈다. 물론, 제대로 지급된 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야근 수당도, 4대 보험도, 제대로 적용된 것 하나 없는 대표 재량껏 매긴 액수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극에 치닫은 나는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중앙에 그대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차마 죽는 게 겁이 나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지만, 이때 나는 내 마음이 많이 아프다는 것도 몰랐다.
모르는 게 너무도 많았던 이 시기의 나는, 과거의 내가 스스로에게 남긴 죄악과도 같았다.
계약서를 쓰지 않고 노동을 제공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짓, 계약서와 관계 없이 월급이 단 하루라도 밀리는 곳은 유죄. 그 순간 미련 없이 사직서를 쓸 것, 내가 얻은 정말 중요한 깨달음이다.
물론 이는 경험해서도 안 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내가 신입이거나 대리 급의 주니어일 때, 사수가 없다면?
물론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로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환경을 함부로 성장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된다.
내 위에 사수가 없는 업무 환경의 유일한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법지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내 법대로 만들어, 마음대로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떤 프로젝트를 하든 그 누구와도 의논할 일이 없고, 아이디어 회의도 없고, 피드백 공유도 없다.
따라서 업무의 자율성과 자유도 만큼은 극한으로 무한하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의 단점은 앞선 유일한 장점을 제외한 모든 것이다.
타 부서에서는 나에게 피드백을 줄 수 없다. 내가 낸 결과물이 그들의 관점에서 아쉬운 부분은 있을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각자의 전문 분야는 따로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나의 업무 효율이나 스킬, 능력치를 올리는 데에 필요한 피드백을 받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렇듯 사수가 없는 무법지대에서 무엇보다 갓 신입인 내가 업무를 전담하여 핸들링하게 된다면, 나 또한 스스로 모르는 사이 자유로운 망아지가 되기 쉽다.
이는 또 다른 쉬운 말로, '일을 잘못 배웠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잘못된 부분을 몰라 스스로 개선이 되지 않으니, 매 결과마다 납품이 가능한 퀄리티인지, 처참한 수준인지 아닌지, 객관적으로 보는 시선도 갖춰질 리가 없다.
그 안에 동화되어 자만한 자신이 된다면, 이는 곧 성장이 아닌 고인물로 가는 지름길일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가 만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또 져야 하다 보니, 독박을 쓰는 일도 많다. 이때는 뭐가 잘못된 지도 명확히 모르는 상태일 확률이 높다.
나는 고작 1년 차에 사수 없이 혼자 일하며, 책임까지 지는 위치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쉽게 망아지가 됐고, 또 쉽게 바가지도 쓰며, 그보다 더 쉽게 책임도 지고 좌절도 하고 그야말로 사방으로 갈려나갔다.
회사에서 사수의 역할은 팀원들이 업무를 익히도록 돕고, 올바른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그들의 실수에 대해서는 커버도 쳐줄 수 있는 든든한 방패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수가 과감히 제거된 곳에서 생신입이 홀로 분투하는 경우에는, 높은 확률로 부서 경계 없이 이곳저곳에 불려 다니며 치이는 동네북이 될 가능성 또한 크다.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불확실한 소속'이다. 팀에 책임질 사람이 없는데, 있는 거라고는 뭣도 모르는 신입 한 명, 만만한 건 당연한 수순이다.
훗날 미래에서 만난 한 사수가 말했다.
"이제 막 사회 경험하는 초년생들, 그러니까 윤이 씨 같은 친구들한테는 사수가 꼭 있어야 해. 일종의 방패막 같은 의미로... 이제 막 사회생활 처음 시작한 친구들이 뭘 알아서 얼마나 잘해. 모르는 것 투성이인데, 책임을 어떻게 져. 그걸 모르는 애들한테 뭐라고 하면 안 되지."
고로 결국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를 스스로 갖추기 전까지는 어딜 가든 일단, 사수가 존재하는 곳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 다 똑같아요. 여기 나가서 다른 데 간다고 거긴 다를 거 같아요?”
퇴사일을 확정 짓고 난 어느 날, 불시에 나에게 던져진 사수의 물음 아닌 물음이었다.
“회사 다 똑같은 거 저도 아는데요.”
“아는데 그래요?”
“회사를 관두는 건 제 마음이잖아요."
노예 하나 나간다고 이렇게까지 난리인가 싶은 것이다.
“그 나이에 열정이 있어야지. 벌써 돈부터 쫓아가고..."
심지어 과장님은 별안간 나보고 돈만 쫓아간다며, 무어라 훈수까지 두기 시작했다. 진짜 돈만 쫓았으면 야근 수당도 안 주는 이곳에서 2년 반까지 버티지도 않았다.
“내가 다 윤이 씨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선배들이 퇴근을 못하고 있는데, 어디 막내가 감히 먼저 가?”
퇴근 전, 선배들에게 먼저 더 도울 일은 없는지 충분히 물어본 다음 받을 일이 없을 때, 그때 퇴근하는 것이 맞다고 해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이곳 법은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업무 시간 내내 수차례 물어보았다. 나도 계속 물어보는 내가 질릴 정도로. 대부분 돌아오는 대답은 '윤이 씨, 그렇게 한가해?'였다.
추가로 더 얹어 받은 일도 퇴근 전에 모두 끝내고 전달에 보고까지 완료했다. 그럼에도 퇴근 시간에 맞춰 퇴근하는 건 문제라고 한다. 이유는 정말 간단했다. 감히 아랫사람이, 윗사람들은 퇴근 준비도 못하고 있는데 먼저 집에 간다는 게 아주 되바라졌다는 것이다.
어느 날 사무실에 대표님 지인이 방문한 날이었다. 대표님과 누군지 모를 사람이 같이 회의실에 들어가는 모습은 대충 본 거 같은데, 난데없이 일에 열중하고 있는 나보고 커피를 타오란다.
"제가요?"
"어어, 막내가 커피 한 번 타서 내와봐."
순간 명치를 타고 스파크가 흐르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제가 왜요?"
필터링 하나 거치지 않은 순수 이물질 같은 말이 물음으로 튀어나갔다.
“아, 죄송한데 제가 커피를 못 타서요."
나름대로 아차 싶어 급하게 뒷말을 이어 붙였다. 하지만 사무실은 꽝꽝 얼은 뒤였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느낌은 솔직히 안 들었다. 그냥 조금 망한 것 같긴 했는데, 나는 이런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만한 센스가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 한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다른 대리님이 탕비실로 가서 커피를 탔다. 그 커피는 그대로 회의실 안으로 전달되었다.
나는 버르장머리 없는 신입 사원이 되었다. 내가 자초한 이미지라 딱히 불만은 없었다. 그 자리에서 해고 당하더라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 앞으로 커피 몇 잔 내가서 억지 미소 짓는 행위 따위는 기필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려고 이 일을 배운 것이 아니다.
이후 대리님은 따로 나를 불러 혼냈다. 거기에서도 조금 대들었다. 조금 부드럽고 유연하게, 보다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방법을 몰랐던 점에 있어서는 죄송하다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날과 같은 상황이 또 한 번 발생한다면, 나는 그때가서도 또 같은 거절을 반복할 것이다. 이 또한 덧붙여 항의 아닌 항의를 했다.
어딜 가나 그 시절 잘못된 사상과 가치관을 주입시키려고 가상한 노력을 펼치는 열성적인 꼰대는 많다. 대체로 그들은 악의적인 의도로 후려치다 안 되면 가스라이팅도 서슴지 않는 부류다.
그렇다고 나이 많은 꼰대가 없는 조직이 '완벽한 정답'인 것은 아니다. 꼰대는 나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사상, 가치관의 문제이지, 나이 먹었다고 다 꼰대고 젊다고 꼰대 아닌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양한 연령층이 고루 섞인 집단 혹은 조직이 그나마 이상적인 방향에 가까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회사든 어떤 구성원이든 유니콘은 없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빌런과 같았을 수 있고, 특히나 내 사수에게는 골칫덩이 그 자체였을 테니 말이다.
근래는 예전보다 조금 더 세상이 발전해서 취준생이나 취업을 준비하는 경력직들도 충분히 기업을 조사하고,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알 수는 없지만, 눈치껏 어떤 구조로 돌아가는 조직인지는 간략히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실 수습 3개월을 다녀도 내가 다니는 이 회사가 어떤 곳인지 파악이 잘 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고 6개월 정도 다니면 다 알 수 있을까? 아니다. 그래서 1년 정도 다니면 제법 알 것도 같은데, 그럼에도 파악하기 어려운 게 '회사'라는 곳이다.
이는 모든 직장인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난제가 아닐까?
하지만 경험을 쌓아가다 보면 분명 요령은 생긴다. 가령 예를 들면, ‘우리 회사가 뭐 하는 곳인지 알아요?’의 뉘앙스가 단번에 제대로 읽히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이때는 면접자로서 충분히 원하는 대답을 선별할 수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 회사는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로 이러한 목표가 있습니다’와 같이 조직의 목표와 포부를 먼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회사가 훨씬 준수한 수준을 갖췄음을 알 수 있다.
더 이상 갑을 관계에 쫓겨 ‘뽑아줘서 무조건 감사합니다’가 아닌, 이것저것 재고 따져 판단할 수 있는, 나와 맞는 조직을 찾는 데 필요한 일명 ‘안목’이 생기는 것이다.
실제로 회사를 선택하는 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자잘한 조건부는 많다. 직장 생활을 더욱이 연명하다 보면 조건은 더욱 디테일해질 수밖에 없는데 나의 경우는 회사 건물 내 화장실을 매우 꼼꼼하게 본다.
오히려 내가 일할 환경은 내가 업무 볼 자리만 있다면 창고에 놓여도 상관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화장실이 노후된 것은 참을 수 없다. 그래서 면접을 마치면 합불과 상관 없이 건물 내부 화장실 만큼은 꼭 확인하는 편이다.
을이 좀 까다롭고, 깐깐하고, 신중하면 어떤가? 갑은 나의 노동력과 능력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에 합당한 능력을 제공하고 댓가를 받는 것이고, 그러니 내가 일해야 할 곳의 환경과 조건이 나의 가치관, 그리고 기준에 부합하는지 충분히 살피고 따진 후에 결정하는 것은 사실 매우 당연한 일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