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 yoon May 12. 2021

무력감이라는 이름의 파도에서 헤엄치기

그래도 흘러가는 시간을 따라서



마음에 파도가 치고, 폭풍이 휘몰아쳤다. 무력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있다면, 당장 저녁 타임에 예정된 요가 수업이나 가는 수밖에.


삐질삐질 울면서 저녁 밥 한 공기를 깨끗하게 비우고, 꺼이꺼이 울면서 옷을 갈아 입고 요가복이 운동 가방을 챙겨 들었다. 여전히 괜찮지도 않았고, 오히려 더 무너진 것 같지만 몸이 기억하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 밖을 나서고부터는 거의 오열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익숙한 길에서 두 번쯤은 주저 앉았다. 기분은 엿 같았다. 허망하고, 무언갈 시작도 하기 전인데 잔뜩 지친 상태였다. 그래도 요가 수업 중엔 울지 않았다.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모르겠다.




"흔한 일은 아니야."


나는 다카야수 동맥염이라는 희귀 난치성 질환을 21년째 앓고 있는 중이다. 오래 봐온 주치의 선생님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오랜 지병과 어떤 관계가 있진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서로 더 악화시킬지도 모르겠다. 다른 합병증이 따라오진 않을까? 이런 저런 암울한 고민과 걱정들이 한데 앞서 다투지만 여전히 그 어떤 답도 얻을 수는 없었다.


"이런 경우가 사실 잘 없으니까... 아무래도. 지켜봐야지. 관계가 있진 않아, 아직까지 그런 결과나 케이스는 없고...."


이후로 나의 눈물샘은 단단히 고장이 났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도 별안간 눈물을 쏟기 일쑤였고, 밥을 먹다가도 덜컥 울기 시작했다. 그러니 진료실이라고 다를 것도 없었다.


사실 나는 답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일말의 납득이 필요했다.


"안 그래도 긴급으로 전달 받고, 바로 찾아 보긴 했는데"


꼭 그 말이 신호탄이 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주체없이 눈물이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눈이 너무 아프다고도 생각했다. 진료실에 함께 있던 간호사 선생님도 우신다. 나는 더욱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내가 너무 많이 망해버린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이 태어난 이래 하나의 인생을 오롯 살면서 죽음의 순간이나 위기를 얼마나 겪을까? 평균치라는 게 있을까? 나에게는 이번이 어느덧 세 번째였다.


견고하게 쌓은 줄 알았던 나의 성이 사실은 물길 한 번에 스러지는 모래성이었을 줄이야. 이렇게 무너지고 싶지는 않았는데, 별 수 없이 무너졌다. 강한 줄 알았는데 너무도 연약했다.


그래서 목표를 변경하기로 했다. 더 단순하게 생각하겠노라. 이제부터 나는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삼겠다. 평생을 아프더라도 이왕 태어난 인생, 살고 싶은 만큼은 살아보겠다. 무너지면 어떤가, 다시 일어서면 된다. 모래성도 다시 쌓으면 될 일이다.


어떻게든 꿋꿋하기만 하면 되겠다.




각오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멈칫하게 되는 순간은 있다. 그건 아무래도 너무 하찮은 인간이란 존재라 그런 것 같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시간은 여전히 보란 듯 흘러가고 있다.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그만 인정하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일상이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언제로 예약해 드릴까요?"

"그냥 아무 때나 해 주세요. 가능한 대로 제일 빠른 날짜로요."


선종, 다른 말로 암덩어리, 암세포. 망할 독버섯을 제거하기 위한 시술 날짜를 잡았다. 젊으니 걱정 말라던 그 말은 어느새 젊어서 더 위험하단 의미로 바뀌었다. 전도 그렇게 쉽게 뒤집히진 않는다.


그리고 전이 유무를 확인하기 위한 CT와 채혈 검사가 추가되었다.


여름이 오기 직전의 시기였다. 탁한 무더움이 덮치기 일보직전의 봄, 그 어느 끝날. 나는 차근차근 일상을 정리했다. 회복과 생존을 위한 첫 번째 단계였다.


"저, 암이래요."


주변에 몇 번째 전하는 내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이정도면 익숙해질만도 한데, 퇴사를 이야기하면서 또 울고 말았다. 내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눈물 짓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좋은 걸까, 아픈 걸까. 아직도 그건 잘 모르겠다.


나를 온통 갈아 넣었던 2년의 시간을 하나, 둘씩 접었다. 이별을 앞뒀다고 순식간에 미화될 지난 날들은 아니지만 이런 식의 끝일 거라고는 상상조차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마음 한 편이 무겁고, 불편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백수가 되었다. 되게 아픈 백수.


아이러니하게도 백수가 되어서도 바쁜 나는 그간 돌보지 못한 몸을 추스르기 위해 이곳저곳 분야별로 병원 예약을 진행했다. 암과 함께 모조리 무너진 면역 체계로 성한 곳이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사실 딱히 건강했던 적도 없지만, 가만 두면 죽기 밖에 더할 게 없으니 살기 위해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사춘기 때도 한 번 난 적 없는 여드름, 두 달째 목감기, 원인 없는 아침 코피, 종종 안부 인사 겸 찾아오는 구역질. 하지만 병원에서는 말한다. 암으로부터의 신호는 '없다'고.


암은 소리 소문 없이 고요하게 찾아온다. 나는 일련의 기상천외한 사건들을 전조증상인양 여겼지만, 실상은 그냥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결과물 그 자체라는 것이다. 몸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친 걸로 보는 게 더 확실할 거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꾸준한 치료 병행과 인내, 기다림, 간절함.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도 현실적인 대처다.


에버랜드 티익스프레스를 타면서도 느껴본 적 없는 짜릿한 스릴감이 요지경을 살면서 든다. 풍파가 지난 이 자리에 남겨진 커다란 흉이 말끔히 씻길 일이 있을까?


그래도 잘 버틴다면 좋겠다. 그러기를 바란다.

스스로를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