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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산박 Aug 23. 2022

아버지가 이상하게 조금씩 미워진다.

일기장 속에서 발견한 아버지 마음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이제 햇수로 5년,

아버지 몸을 실은 차 안에서 차창 밖 빗물을 바라보며 눈물을 닦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금방 시간이 가버렸다. 아버지는 가셨지만 크게 실수를 하신 것이 있었다. 이럴 줄 모르셨을 거다. 바로 이 일기다. 아버지가 급하게 가시지 않았더라면 이 수첩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어느 추운 겨울에 마당에 불을 피워놓고 한 장씩 읽어 보시다가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을 찢어 불에 태웠을 것이다. 식구들에게 숨기고 싶은 아버지만의 비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분명히 실수하신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갑자기 내 소지품과 수첩들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 하나씩 시간 있을 때 정리하자. 사람의 일이란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닌가.



일기를 읽다가 울기도 웃기도 했지만 화도 났다.

그것은 어떤 판단 때문은 아니었다. 일기에는 속마음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또 그것을 표출하고 싶은 욕망이 누구에게나 있다. 사실 길어 올리지 못한 깊은 물처럼, 살아계실 때는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길어낼 방법이 없었다. 그것은 소통 부족이었다. 아버지로서는 우리가 실수로라도 당신의 깊은 마음의 초원에 무단으로 넘어올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방어막으로 견고한 울타리를 쳐 놓으신 것이었을까. 어쨌든 지금은 그 울타리가 무너졌고 나만이 자유롭게 그곳을 드나들고 있다. 그것을 아버지가 아시면 얼마나 후회하실까. 내가 뭐라고 거기에 적어놨지? 생각도 안 나는데? 이러시지 않을까. 어쨌든 조금씩 아버지가 미워진다. 연민과 사랑이 교차한다. 그것을 애증이라고 해야 하나.



늘 강연할 때 이 말을 참 많이 했다.

바로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생각'을 따라가지 말라고 말이다.

우리 마음의 방에는 하루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락거리는데 그중에 대부분의 생각들은 그냥 왔다 가지만 부정적인 생각 하나가 들어오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긴다. 다시 말해서 우리 마음은 밭과 같아서 많은 생각들이 들어와 씨를 뿌린다. 마음의 밭이 견고하면 어떤 씨앗이 뿌려져도 말라죽지만 임팩트가 강한 생각의 씨앗이 심기면 어쩔 수 없이 그 생각의 씨를 받아들인다. 그러면 뿌리가 박히고 싹이 올라오고 줄기가 생기며 잎사귀가 나온다. 그리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그때부터는 그 나쁜 생각의 나무를 뽑아낼 수가 없고 그 생각이 이끄는 대로 몸과 마음이 따라가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 나쁜 생각 하나를 받아들였다.

조카가 동네 사람 어떤 아들과 닮았다고 농담 삼아 동네 어르신이 한 말을 가지고 그 말을 마음에 두면서 괴로워하셨던 것이다. 혹시나 어머니가 무슨 일이 있어서가 아닌가 하는 불손한 생각이다. 전에 이런 이야기들이 얼핏 돌다가 사라졌던 생각이 난다. 아무것도 아닌 말 한마디가 마음의 밭에 크게 심어져서 그 뿌리를 뽑아내지 못하고 괴로워하셨던 것이다. 참 아버지가 이런 분이 아니셨는데 소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도대체 말도 안 되는데 그것 때문에 얼마나 괴로우셨으면 교회까지 가셔서 그 허무함을 하소연했을까. 생각 하나를 잘못 받아들이면 거기 빠지게 되고 우울해지면서 심하면 극단적인 경우까지 간다.



오늘은 주일날이다. 하늘에 계신 예수님께 내 허무함을 하소연하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영과 몸을 맡기고 내 불안한 마음과 몸을 의지하기 위하여 예수님 큰 사랑에 묻히고자 교회에 갔다. - 중략 - 하나님 아버지 이 슬프고 서러운 사람을 더 큰 사랑으로 안아 주소서. 타는 마음으로 교회에 나가 고개 숙여 기도를 했다.  -  타는 마음으로 2012.12.11 (중략된 부분은 상상에 맡긴다)



우리는 자주 생각에 빠질 때가 있다.

생각이 잘못 흐르면 마음속으로 소설을 쓰게 된다. 소설은 그야말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간다.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흐르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금수저 흙수저의 단초가 되었던 사건을 우리는 기억한다. 바로 서울대 학생의 극단적 선택 사건이다. 그는 불합리한 사회 구조와 자신의 형편을 네거티브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단정했다. 얼마든지 각도를 달리 하면 하나도 문제가 안 될 일이었다.

"가진 자, 힘 있는 자의 논리에 굴복하는 것이 이 사회의 합리이며,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두뇌가 아니라 수저 색깔이다"

그가 가진 사회에 대한 편견이 그의 유서와 같은 메모지에 그대로 나타난다. 친구들의 부모는 소위 '사(士)'자 출신들로 쟁쟁하고 후광을 입어 잘 나가는데,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고 여긴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의 부모는 대학교수였고 고등학교 교사였다.   



아버지가 미운 것은 생각의 소설쓰신  때문이 아니다.

왜, 그런 부분을 서로 자세하게 풀어가려고 하지 않고 혼자서 고뇌하고 있었는지 그 부분 때문이다. 생각이 한번 길을 잘못 들어서면 매우 정상적인 길도 휘어져 보인다. 그 생각에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수렴하려는 나쁜 힘이 존재한다. 그러면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실제 판명되더라도 끝까지 자기가 잘못 생각했다는 부분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자신이 잘못 판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다. 결국 생각을 밖으로 표출하지 못한 것은 아버지 잘못만은 아니다. 그것을 간파하지 못한 아들들의 잘못도 분명히 있다. 그래서 안타깝다. 솔직하게 드러내 놓지 못한 아버지의 마음이 미웠을 뿐이다. 일기를 더 깊숙이 접할수록 더 아버지의 그런 마음을 많이 발견할지 모른다. 아버지를 미워해 보기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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