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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산박 Oct 04. 2022

[북리뷰] '힐빌리의 노래'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rgy)라는 책을 읽었습니다.힐빌리는 미국의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벨트 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백인 쓰레기라는 뜻의 '화이트 트래시', 햇볕에 그을려 목이 빨갛다는 데서 유래된 교육 수준이 낮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미국의 시골 백인을 가리키는 '레드넥(Red Neck)'이라는 모욕적 표현 등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 소설은 빈곤과 무너져가는 가족, 그 어둠 속에서 일어난 한 청년 J.D 밴스의 진솔한 성장기를 그린 것입니다. 김훈 작가도 '이 책은 가난의 한 복판에서 가까운 희망을 찾아낸 사람의 이야기다'라고 소설 평을 해주셨는데요. 정말 오랜만에 감동적인 책을 읽은 것 같습니다.




힐빌리의 노래 Hillbilly Elergy

저자 : J.D 밴스


마치 나렌드라 자다브의 회고록 ‘신도 버린 사람들’을 읽는 것 같았다. 똑같은 내용은 아니지만, 인도의 최하층 계급에도 들지 못하는 불가촉천민 출신의 성공스토리와 힐빌리라는 어둡고 쇠락한 철강 도시 출신인 주인공의 삶의 여정이 책을 읽는 내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사람들이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가난, 고통, 절망, 분노, 불안, 두려움을 통과한 인간승리라고 해야 할까. 영롱한 진주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의 과정을 통과한 산물이듯, 그 피할 수 없는 최악의 환경이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을 얘기하고 운명적인 성공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서로 유사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전체적으로 책에서 느끼는 감정은 서로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보색(補色)’의 느낌이었고 그래서 다가오는 감동의 깊이가 더했다. 그 끔찍한 환경 속에 던져진 등장인물들의 각각의 모습이 한껏 돋보인 것도, 읽으면서 주체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도 그런 이유였을 터이다.

이 책이 넷플릭스 영화로 나왔다고 해서 책을 읽는 중간에 먼저 영화로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것은 책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소화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더 현장감 있게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가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가 비판적 시각으로 언급한 사회제도나 정부의 역할 등 민감한 책의 내용을 다 담지는 못했지만, 핵심적인 내용을 전달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책이 솔직하게 한 인간의 지난(至難)한 삶과 그 극복과정 그리고 정신세계를 리얼스토리로 담담하고 자세하게 써 내려갔다면, 영화는 주인공의 성공스토리에 초점을 맞추면서 무너져 가는 가족이라는 공동체 회복과 위대한 미국이라는 국가적인 결속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이 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실제 이 감동적 이야기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 크게 반향을 일으킨 것도 그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책은 저자도 서두에서 언급했지만, 제조업 경제가 무너지면 사람들의 삶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와 열악한 상황에서 최악의 방식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고 사회적 부패에 대항하기는커녕 그것을 더욱더 조장하는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주인공 J.D 밴스의 자서전이다.



힐빌리(Hillbilly)는 미국의 쇠락한 공업지대에 사는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 책은 크게 힐빌리에 관한 내용과 주인공이 그 그늘에서 벗어나 성공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즉, 힐빌리의 어두운 삶과 그와 같은 환경에서 보통 사람들은 벗어나기 힘든 상황을 헤쳐 나온 주인공이 스스로 예외적이라는 뜻이 내포된 ‘이방인’이란 표현을 쓰면서 운명적으로 살아낸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바로 그 성공스토리의 기저에는 독설, 폭언, 고지식, 분노가 일상화된 강한 성격과 함께 사랑, 동정심, 성실함, 정의감 및 독립 의지가 내재한 또 다른 성격의 소유자인 할모(할머니)의 영향이 제일 컸다고 할 수 있다. 할모에 대한 추억이 책 전반에 걸쳐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보면, 할모가 그의 인생과 성공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에게 엄마는 약물중독과 수많은 남자를 바꾸는, 그리고 폭주하는 성격이 뒤섞인 절망과 애증의 대상이었지만, 특이하게 어렸을 때부터 그런 그의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성숙한 마음의 구조가 그에게 형성되어 있었다. 사실, 이런 불운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자녀들의 일탈은 당연하게 여겨지고, 숙명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의 쳇바퀴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그가 특별히 자신을 가리켜 이방인이란 표현을 썼는지도 모른다.

책의 전반부에서 기술하는 그의 고향 힐빌리 잭슨의 형성과정과 한 마디로 강한 성격의 가족 구성원의 내력은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어 보인다. 다만, 보통 사람들은 극심한 환경의 지배를 받으면 대부분 순응하거나 체념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의 외조부모가 손주에게만큼은 그곳을 벗어날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주인공 밴스가 성공 이후에 계속 그 점을 회고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영향이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마치 가난하게 살아온 우리 농촌의 부모들이 자식 교육에 한평생 모든 노력을 쏟았던 부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아니라 어느 정도 재력이 되어야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성공의 꽃길을 걷는다고 하지만, 상처투성이 속에서 주인공에게 공들인 외조부모와 주인공이 살아낸 세상을 보면서 그와 같은 상황 속에 던져진 수많은 힐빌리의 주인공들에게 희망의 노래를 선사하는 것 같아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든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우리 사회의 기득권자들이 그들이 이룬 성취를 자신의 노력에 따른 대가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그것이 아니라 그들의 성공 뒤에는 여러 방면에서 수많은 무대 뒤의 희생이 있다고 언급했다. 즉, 그들의 성공신화가 상대적으로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과 똑같이 그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음에도 여러 제도나 부(富)와 관습 그리고 명성 등, 여러 불공평한 구조적 여건 때문에 그 기회를 놓쳐버린 사람들의 기회비용을 빼앗아간 순수하지 못한 성공이라고 말이다. 주인공은 그것을 예일대 로스쿨에 들어가고 난 후에 느낄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주인공 밴스의 운명론적인 삶을 읽으면서 그에게 더 끌리는 부분이 있었다면, 바로 그의 마음 구조였다. 어떻게 그런 마음이 만들어졌을까. 그것은 이 책의 이야기 중에서 보색(補色) 중의 보석(寶石)으로 느껴졌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외조부모의 강한 성격과 상처로 점철된 세상을 살아 마음이 고장 나 버린 엄마와 함께 살아오면서, 그들과는 정반대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사랑할 수 있는 그 마음이 만들어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외조부모의 사랑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전반적으로 좋은 부분만 보여줬지만, 책에서 주인공은 구조적인 사회제도를 비판하고 있다. 어쩌면 험난한 세월을 헤쳐오면서 이룩한 자신의 성공스토리를 통해 전 세계인의 마음을 울리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도 있지만, 이 순간에도 힐빌리로 대변되는 수많은 고통스러운 삶들을 생각하면서 그 원초적인 해결방안에 대해 숙고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정부의 정책이나 제도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 하지만, 최소한 소외된 곳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제도가 정착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주인공도 언급했듯이 오히려 그런 복지 정책이 더욱 그들의 삶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정부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조장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정부나 자선사업가들의 복지 정책이 단순히 삶을 지탱해 주는 부분에 국한하지 않고, 꿈을 키워주는 정책으로 바꾸어 가야 한다는 측면에서 오늘 우리나 정책입안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대로, 힐빌리와 같은 극심한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의 마음 구조도 바꾸어야 한다고 주인공은 역설한다.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힐빌리의 사람들 가운데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이비리그 대학에 들어간 사람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말이다.


힐빌리의 노래. 영어로는 Hillbilly Elegy로 되어 있다. 노래가 아닌 비애(Elegy)다. 주인공에게 힐빌리는 애증의 고향이다. 그러면서 성공의 뿌리가 된 마음의 고향이다. 책을 덮으면서 그의 삶과 성취한 것들을 생각하며 그의 인생 파노라마를 되짚어 보았다. 진한 감동, 말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 그리고 먹먹함과 기쁨이 교차하는 눈물.


물론, 그것은 그가 해병대와 예일대에서 얻은 삶의 방정식과 좋은 아내 우샤를 만났던 것, 또 다행스럽게 함께 고통의 언덕을 잘 넘어온 린지 누나와 몇몇 가족들의 헌신적인 사랑이나 거기에 더하여 그가 성취한 훌륭한 일들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성취된 그것들의 가장 기초가 된 ‘진주’와 같은 그의 마음 때문이었다.


아픔을 계속 뿜어내 만들어진 진주. 정말 그에게는 그 어떤 인생의 어려움도 이제는 어려움으로 다가올 것 같지는 않다. 이미 그는 복잡한 삶의 방정식을 풀 수 있는 수학적, 경험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럽다. 그의 아름다운 마음이, 그의 당찬 꿈과 젊음이…



사람들은 말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보이지 않는 마음의 힐빌리가 내재해 있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그것을 주인공처럼 성공을 위한 자산으로 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 힐빌리에 절망한다. 숙명으로 생각하며 인생을 허비한다.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음의 구조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무거운 현실을 받아들이며 궤도 탈출을 시도해 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주인공은 ‘신도 버린 사람들’의 주인공인 나렌드라 자다브의 말대로 이른바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닌 ‘백조’였다. 지금도 스스로 미운 오리 새끼라고 생각하고 생을 낭비하는 힐빌리의 백조들이 전 세계에는 얼마나 많을까.

물론, 이 책이 전 세계 수많은 힐빌리의 사람들에게 희망과 도전 정신을 주겠지만,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문명의 발달과 반비례하는 메말라 가는 마음 구조를 바꾸는 일이 아닐까. 사실 따지고 보면, 주인공 밴스도 마음을 바꾸었기 때문에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 그가 넘을 수 없는 현실에 비관하고 안주하며, 불운한 가족과 빈곤에 처한 형편을 탓했다면 그는 절대 오늘의 멋진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마음의 방에 들어온 생각들이 하루에도 오만가지가 넘는데, 이 주인공 밴스의 성공스토리를 통해 모든 사람이 좋은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더욱 긍정적이고 소망을 갖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변하기를, 그리고 그로 인한 우리들의 삶도 주인공처럼 멋지게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너무 좋은 책을 읽었다. 몸과 마음이 충만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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