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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산박 Oct 24. 2022

가을빛이 붉게 내려앉았네요.

고향의 가을에 푹 빠지다


어머님이 계신 고향에 왔습니다.

들판에 벼들이 추수가 끝난 모습입니다. 여물어 고개 숙이고 넘어져 서울 손님맞이한 것 같은데 하룻만에 콤바인이 지나가 말끔히 정리가 되었네요. 가을빛은 들판의 움직임에 아랑곳하지 않고 감나무에 그대로 붉게 내려앉아 한참 담금질하고 있습니다. 아침, 고요한 들판의 모습이 안개 때문에 너무나 이국적인 모습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 모양이야 어떻든 고향이라 다 좋습니다.


아침 안갯속, 추수가 끝난 들판. 저 너머 강과 산들이 마치 배경을 사라지게 한 것처럼 사라져,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처럼 보입니다.


아침 안갯속을 거닐었습니다. 멀리 안개 너머로 강과 산이 있는데 마치 끝없는 지평선을 보는 듯합니다. 우리 눈은 언제나 무엇인가에 덮여 있을 때는 전혀 인식을 못하는 한정된 능력에 머물러 있는데도 마치 모든 것을 보고 아는 양, 자신만만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보이는 세상의 모습을 보면서도 이러한데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자신의 마음 눈으로 재단한다면 참 우스운 일이 되겠지요. 그 사실을 모르는 자체를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추수가 지나간 들판의 아침 고요


추수가 지나간 자리엔 평화가 있습니다.

하루 전에 쓰러져 있던 벼들이 콤바인 몇 번 지나가니 저렇게 가지런히 베어져 있습니다. 기계가 일을 다하는 농촌도 옛날과 달라서 가을 추수에도 농부들 모습이 좀체 보이지 않습니다.


늘 꿈과 기억 속에 머물러 있는 고향의 쉼터입니다.


꿈에도 자주 등장하는 고향의 쉼터

여름날,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올 때 저 원두막 같은 쉼터에 누워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잠을 잡니다. 아무 상념에 젖지 않고 혼자만이 누리는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 바로 그때입니다. 배경 사진이 순식간에 없어진 것 같아 참 신기합니다.


가을이 붉어지면 사람보다 먼저 새들이 잔치를 합니다.


해마다 열리는 감을 보면 신기합니다.

나무속에 저런 홍시를 만드는 공장이 있나 봅니다. 물론 조력자가 많지만 어쨌든 저 감나무가 만들어낸 작품이 너무나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홍시를 그냥 따서 먹어봤는데 너무 달아 연달아 세 개를 먹고 배탈이 나서 화장실을 몇 번 들락거렸습니다. 눈 맛, 단맛이 배로 들어가니 속살들이 시기했나 속 맛이 탈을 나게 한 것 같습니다.


장두감, 농익어 홍시가 되면 그 단맛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지요.


능금처럼 농익어가는 장두감

왜 장두감이라 했는지 모르지만 대봉이라고도 하죠. 익어 물렁물렁한 홍시가 되면 정말 단맛이 온몸을 감싸는 맛있는 감입니다. 장두감을 보면 할머님이 생각납니다. 중학생 시절 방에서 책을 보고 있으면 할머님이 뒷짐을 지시고 살그머니 다가와 ‘옛다 홍시!’라고 말씀하시면서 내밀던 감이었거든요. 그 맛은 꿀맛보다 달달한 할머님 마음이 묻어있었던 사랑의 감이었습니다. 그 할머님이 그립습니다.


이 멋진 보색, 곱게 세상에 선보이려고 이파리는 상처를 많이 입었어요.


수고한 이파리가 남긴 붉은 진주

누가 이 색깔을 만들어 낼 수가 있을까요. 팔레트에서 아무리 찾으려 해도 똑같은 색을 찾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잎사귀와 보색인 것을 보세요. 참 기막히지 않나요? 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저 이파리는 이 홍시를 만들려고 얼마나 많은 광합성 작용을 쉴 새 없이 했을까 싶네요. 그래서 가을이 오면 그 고통이 변하여 빛바랜 색으로 투명해지고, 결국 풍장 되어 온몸을 산화하는 것 같아요. 우리는 이제라도 붉고 아름다운 감에 눈이 머무름보다 그것을 만들어낸 이파리를 보는 눈이 더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속이 차진 않았지만 12월 초가 되면 모두들 모여듭니다.


어머님의 손길이 묻어있는 작은 비닐하우스

어머님이 김장용 김치를 많이 심어 놓으셨습니다. 아직 속이 차진 않았지만 정말 푸릇한 배춧잎이 잘 자랐네요. 노란 속이 가득 찰 때 동생 식구들과 또 내려와 김장을 해야겠습니다. 이젠 연례행사가 되었는데 연세 많으신 어머님이 김장보다 자식들 오는 것 때문에 그만 두시라고 해도 계속 심으시는 것 같아요. 늘 핑계는 ‘노는 땅 눈으로 빤히 보면서 그냥 놀리긴 아까워서’라고 하시는데 왕복 교통비가 더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ㅎ


지는 해지만 낮 동안 땅에 베푼 그 모든 것을 노트에 기록하라 하면 온 우주만큼이나 많을 것 같군요. 거기엔 제 감사의 기록도 들어가 있을까요?


많은 일을 하고 돌아가는 고향의 해넘이

산에 걸린 석양이 고단한 농촌에 쉼을 주려는 듯 수고한 하루를 넘어갑니다. 추수가 끝난 들판도 아름답고 감나무도 해바라기처럼 인사하는 것 같아요. 그림 속, 추수 끝나고 아낙들이 삼삼오오 모여 들판에서 허리를 굽히고 이삭 줍다가 교회 종소리에 잠시 서서 고개 숙이는 장엄한 장관도 상상이 됩니다. 그 경건과 평화는 정말 연출이 아닌 자연과 합일한 위대한 그림일 것 같습니다. 요즘 세태가 연출이 많아서인지 자꾸 옛날 순수한 모습들이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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