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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산박 Mar 10. 2024

영화 ‘파묘’를 보았다.


영화 ‘파묘(破墓)’를 보았다.

사실 이 영화는 내 성향에 맞지 않고 불편하며 오컬트 영화에 가까운 터라 영화가 나왔을 때 볼 생각도 안 했는데, 무엇이 나를 영화관으로 불렀는지 생각해 보니 그건 내 잠재의식 속에 끓어오르는 항일(抗日)의 감정 때문이 아니었나 그런 느낌이 들었다. 집과 가까운 곳에 두 곳에 CGV가 있어, 걸어서 10분 이내의 거리라 20분 전에 출발해서 티켓팅하고 좌석에 앉으니 5분 정도 남았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관객이 약간 많은 편. 천만 관객 돌파가 눈앞에 있다고 하는 이 영화는 어떤 내용일까, 이미 유튜브에서 줄거리를 대략 알고 갔지만, 대형 스크린으로 보는 현장에서 느끼는 그것은 한 마디로 ‘아드레날린 분출과 소름’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영화관


원래 난 아무리 무서운 영화를 봐도 무섭다는 생각이나 별 감흥을 느끼지 않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 현실적이 아닌 가상의 상황설정 때문인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소름이 끼친다는 경우는 어릴 적 보았던 한 번의 귀신영화 빼곤 거의 없었다.

아버지를 따라 시골에서 처음 서울 큰아버지 댁을 찾았던 초등학교 1학년 때, 큰아버지는 당시 영화를 보여주신다고 해서 아버지와 같이 셋이서 귀신영화를 보았는데, 어린 나는 사실처럼 느껴지는 그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을 떨었고, 그날 밤 잠을 자면서 계속 헛소리를 했다고 한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몇몇 장면이 기억이 날 정도이니 얼마나 내게 충격을 줬는지 알 만하다.


파묘 하루 관객이 약 20만 명 정도라고 한다.


무당, 미신, 접신, 풍수, 사주, 팔자 등은 어린 시절에 많이 겪어봤던 터라 그것이 무섭다거나 섬뜩하다거나 뭐 그런 것은 없는 편이나, 크리스천이 되고 난 이후에 선악의 주체가 무엇인지 나름 확신이 있어서 아무리 오싹해도 소름이 잘 돋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영화 속 주인공 김고은(화림 역)의 역동적인 굿하는 연기가 압권인데다 현장의 입체적인 스테레오 사운드 그리고 빙의(憑依) 연기가 소름 돋게 하는 힘이 있어 나도 모르게 영화에 빠져들게 했다. 사실, 몇 년 전에 조부모와 부친 묘를 파묘(破墓)해 이장(移葬)을 할 때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고, 특히 무섭다거나 이상하다는 느낌조차도 없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마음에서 서로 싸우는 선악 간 불편함이 그런 오싹함으로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무당 화림 역의 김고은 굿하는 장면 중
파묘 포스터, 영화 속엔 디테일이 곳곳에 숨어 있다. 주인공들의 이름, 차량번호, 그리고 이 포스터 속에는 무엇이 보이는가?


앞서 언급했지만, 영화를 보러 온 목적이 오컬트적 취향이 아닌 항일(抗日) 소재여서 굳이 시간을 냈다고 했던 것처럼, 영화는 고관대작 친일파 묘에 함께 묻힌 일본 쇼군(將軍)의 기이하게 수직으로 서 있는 관(棺, 쇠말뚝 역할)과 우리나라 지형(地形)이 호랑이가 누워있는 형상으로 바로 그곳이 백두대간 중 척추에 해당하는 중간 지점이기에, 일제(日帝)가 이른바 대한(大韓)의 정기(精氣)를 죽이려고 그곳을 특정하여 위치를 잡은 장소라는 점. 그것을 찾아내 뽑아 버림으로써 민족정기를 되살리는 카타르시스를 맛보기 위해 보러 갔다고나 할까. 아마도 그것 때문에 많은 관객들이 더 찾지 않았나 싶은 마음이 든다. 소위 왜곡된 역사관을 가진 이승만을 우상화한 다큐 영화 ‘건국전쟁’의 감독이 ‘파묘’ 관객을 좌파들 운운하면서 억지 주장을 해도 오컬트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관객이라면 대부분 애국심 때문일 것이라는 점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영화 속 캐릭터의 이름, 차량번호 등 디테일에서 좌파적 성격이 아닌 항일 및 민족정기를 드러내는 감독의 의도를 똑같은 영화 감독인 그는 왜 캐치하지 못했을까?)


지관 역의 최민식, 무당 역의 김고은, 염장이 역 유해진


요즘은 넷플릭스가 안방 영화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어 어지간한 특별한 영화를 제외하곤 잘 현장관람 하지 않는 편인데, 역시 영화는 대형 스크린으로 보는 것이 좋아서 이렇게 가끔 보는 편이다. 특별히 김고은, 최민식, 유해진, 이도현 등 그들의 연기력은 크게 박수를 쳐줄 만하고, 역시 중국이나 인도네시아(벌써 개봉 후 백만 관객을 달성), 대만 등 과거 일제 식민지 국가가 이 영화에 민감한 데다 벌써부터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면 앞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을까 생각한다. K팝을 비롯한 한류의 전 세계적 문화혁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에 있어, 그에 조금이라도 동조해 주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흐름에 동참해 주는 의미에서 작은 참여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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