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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산박 Mar 08. 2024

클래식에 나를 던지다.

베토벤 교향곡 9번 3악장

오랜만에, 진짜 오랜만에 브런치에 왔네요.

마지막 포스팅이 일 년 전의 글이니 꽤 오랫동안 방치한 것 같습니다. 

브런치 작가가 된다는 설렘이 엊그제였던 것 같은데 막상 작가라는 타이틀을 받자마자 이상하게 시들해져 귀한 시간을 순식간에 보내버린 것 같아요. 물론 필력이 떨어져 고개를 내밀지 못하는 측면도 있지만, 사실 저는 끈기가 좀 없어서 시작하다 만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솔직히 빨리 질려버리는 성격의 소유자는 아닌데, 왜 그런 은근과 끈기가 없는지 분석해 보니 거기엔 하나 이유가 있었습니다. 즉, 스스로 동기부여가 잘 안 된다고 생각하면 쉽게 손을 떼는 거예요. 그게 장단점은 있지만 단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즉, 한마디로 도전정신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누군가 인생을 BCD로 표현할 때 C를 주로 Choice나 Challenge로 쓰던데, 저는 가만 보면 타인의 장점을 Copy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뭔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자주 느낍니다. 진심이에요.^^


좀 서두가 길었는데요.

오늘 차를 가지고 도심을 떠나 잠시 교외로 나가면서 본 것이 있었어요. 꿈틀거리는 땅의 에너지,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호흡, 나무 위에서 반상회 하듯 모여 재잘거리는 참새들, 풀벌레의 댄스파티, 그 사이를 샘내듯 탐하듯 지나가는 겨울의 뒤끝, 그 모두가 그들만이 독특하게 보유한 커뮤니케이션이었어요. 그것은 거대한 대지의 오케스트라였죠. 이미 귀는 요즘 차만 타면 듣는 교향곡에 푹 빠져 있었는데, 이미 차창 밖은 이런 제목을 붙일만한 풍경이었습니다.


‘대지의 협연, 봄의 합창’


출처 : pexels


제가 조그마한 언덕에 올라 지휘를 해보았어요.

봄의 악보가 넘어가는데 그냥 바람에 휩쓸려 넘어가도 다 이해가 되는 거 있죠?ㅋ 원래 지휘자는 단원들 하나하나 어떤 소리를 내는지 명이(明耳)인데, 코러스로 울리는 소리의 근원도 금방 찾아내겠더라구요. 제가 잘 알아서요? 아니요, 단원들이 기가 막히게 연주하니까요. 여러분은 기타 하나 들고 잔디밭에 누워 귀를 땅에 대 보았나요? 땅이 내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라, 생명이 꿈틀거리는 소리와 밖의 새들의 노래가 줄탁동시(啐啄同時) 즉, 교향곡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러면 저도 모르게 동화되어 핑거링을 합니다. 대지의 숨결을 들으며 소위 탁(啄)! 하는 겁니다.


봄봄봄 봄이 왔네요,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의 향기 그대로…’ (로이킴)


이거 연주 많이 했어요.

쓰리핑거 주법으로 말입니다. 다시 차로 돌아와 아이폰에 연결된 곡을 듣습니다. 그리곤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3악장.

오래전에 조셉 젤리네크가 쓴 ‘10번 교향곡’이란 추리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고, 블로그에도 독후감이 포스팅되어 있는데요. 정말로 베토벤 10번 교향곡이 있습니다. 왜 10번 교향곡에 대해 ‘정말로’를 붙였을까요? 9번 다음 숫자가 10번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당연한데요. 그렇죠? 그런데 이유를 설명하면 긴데 짧게 말해서 음악의 거장들은 대부분 교향곡의 경우 9번이 무덤입니다.


출처 : pexels, 편집


베토벤 9번 교향곡은 4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아마 대중적인 악장은 4악장 ‘환희의 송가’ 일 것입니다. 제가 3악장을 좋아하는 이유가 강렬한 4악장에 앞서 차분하게 시작하기 때문이고, 거기엔 뭔가 애처로운 기분이 들면서도 비장한 느낌이 있어서입니다. 마치 영화 글래디에이터 OST, ‘Now we are free’처럼 말이죠. 반복적으로 듣는 이유는 초입에 잔잔하게 흐르는 소리에서 잃어버린 이미지가 자꾸 고개를 내미는 것 같아 그게 뭔지 실체가 궁금하기 때문이구요. 딱 이거다라는 결론이 나야 하는데 날듯 말듯한 그 애탐이 이 악장을 계속 듣게 만드는 힘 같습니다.


클래식을 들으면 마치 푸른 바다에서 조용히 혼자 카누를 타는 것 같기도 하고, 하얀 구름 위를 나는 비행기 속에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초원 위에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는 느낌도 나다가, 바다가 보이는 호텔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곡에 따라 또 각 악장마다 묘사되는 이미지와 느낌은 다르지만, 저에겐 대체로 감성을 자극하는 영혼의 울림으로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포스팅을 하게 된 동기도 대지의 살아있는 숨결을 느끼며 뭔가 표출하고 싶은 강렬함에서 나오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클래식은 행복입니다.

그것에 오늘도 나를 던져 봅니다.






https://youtu.be/ecDhLebBBhc?si=6aZoXdbY5NsFM_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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