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9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엄마 이야기를 들으러 갑니다

보호자라고 쓰고 인터뷰어라고 읽다

by 서가앤필 Jan 10. 2025


엄마의 눈물 버튼이 기억납니다.


30년도 더 된 이야기네요.


엄마가 중학생인 저 앞에서 항상 눈물을 흘리던 이야기가 있었는데 엄마의 작은 엄마 이야기였습니다.


엄마의 작은 엄마란 엄마의 아빠, 외할아버지가 새로 결혼한 엄마입니다.


외할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도 돌아가셔서 얼굴을 뵌 적이 없어서 그런지 엄마의 이야기는 약간 비현실적 소설 이야기정도로 느껴졌었는데요.


엄마는 딸만 6명인 여섯 자매 중 첫째 딸이었습니다. 그 당시 딸만 있는게 싫으셨던지 엄마의 아빠는 아들을 갖겠다며 새로운 결혼을 하게 되는데요.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는 버젓이 계시는 상태였고, 외할아버지만 나가서 살림을 차리셨다고 했습니다.


엄마가 중학생이 되던 무렵, 엄마는 유학이라는 의미로 도시에 살던 아빠의 집으로 보내집니다. 엄마의 엄마를 두고 작은 엄마와 함께 살고 있던 아빠의 집이요.


여기서부터 엄마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합니다.


작은 엄마가 밥 때만 되면 당신의 아들들과 엄마를 차별했거든요. 아니 그랬다고 합니다.


엄마의 작은 엄마에겐 의기양양하게 낳은 아들 3명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엄마보다는 다 동생들이었구요.


매일 아침, 아들이었던 동생들에겐 따뜻한 쌀밥을 그릇가득 높게 퍼 주고 엄마에겐 찬 보리밥을 먹으라며 줬다고 했습니다. 


보리밥..

보리밥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할 때 엄마의 목소리가 더욱 울먹울먹해집니다.


보리밥..

보리밥이 그렇게 서글픈 음식이었나요?


그 당시 중학생이던 전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쌀밥보다 영양식으로 보리밥이 더 좋다는데 그게 왜 슬픈거지? 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까요.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는 부잣집 무녀독남이었다고 했습니다.


부자로 살던 시골 부부에게서 태어난 유일한 자녀였던거죠.


곱디 고운 딸이 결혼을 해서 딸만 6명을 내리 낳았습니다. 그 중에 첫째 딸이 엄마였구요.


부잣집 귀한 딸로 자라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외할머니를 대신해 엄마가 동생들을 많이 케어하며 자랐다고 했습니다.


외할아버지마저 아들을 낳겠다며 새 살림을 차려 나간 후 엄마는 부유하게 사시엄마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손에서 컸다고 했고요.


 당시 엄마의 시골집에는 일해주시는 분들이 10명 가까이 되었다고 하니 부자는 부자셨나봐요.


엄마의 아빠는 비록 집을 나가서 딴 살림을 차렸지만 부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덕분에 동네에서는 부족한거 없이 크셨다고 해요.


엄마가 초등학교 운동회를 할 때면 두 분이 동네 유지로 참석해서 선생님들의 밥과 간식을 다 책임져 줬다고 하니 이때 이야기를 할 때면 울었던 엄마가 다시금 환해졌습니다.


그런 부자 집안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병환으로 가세가 기울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일한 자식이었던 엄마의 엄마는 부모님이 떠나시고 난 후 관리를 잘 하지 못해서 폭싹 집안이 망하다시피 해 버렸고요.


6명의 딸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서울, 미국, 대구, 전주 등으로 떨어져 살게 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 나가다보니 엄마의 동생들인 다섯 이모의 삶도 궁금해지네요.




새로 결혼한 아빠 집에서 보리밥을 먹으며 서글퍼하던 중학생 아이는 어느새 75세 엄마가 되었습니다.


이때 이야기를 해도 지금은 울지 않는 엄마에게 그 시절의 조금 더 다른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중학생 딸 앞에서 울던 엄마가

47세가 된 딸에게 당신의 인생 이야기를 조금 더 풀어주실까요?


궁금함이 더해져서인지

엄마를 만나러 가는 날짜가 다가올수록 조금 더 설레입니다.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를 만나러 가는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참, 엄마는 뇌수술을 앞두고 있는거였죠..

엄마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는 설레임에 엄마가 곧 입원한다는 사실을 깜빡했네요..


보호자임을 잊지 않고 옆에 잘 있어주다 와야겠어요.


작가의 이전글 엄마 뇌수술 1주일 전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