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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Mar 27. 2023

미국은 샐러드 그릇, 언어는 생각 그릇

한국어를 잊어버리는 아이들, 한국을 잃어버릴 수 없는 어른들

We understand the beauty of our mother tongue when we are abroad. -George Bernard Shaw-


미국은 많고 많은 이민자들로 구성된 국가이다. 그간 미국에서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 뿐 아니라 북한에서 온 사람(정확히는 북한 탈출)도 만나봤다.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이 미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3억 3천만 명 중에서 백인이 약 70%(순수 백인  60%, 혼혈 백인 10%)로 가장 많다. 흑인은 12%, 나머지는 기타 민족으로 구성되는데, 아시아계는 4% 정도에 해당된다.


이러한 미국의 다양한 인종 구성은 미국을 멜팅 팟(melting pot)으로 불리게 했다. 멜팅 팟은 미국을 바라보는 하나의 이론으로 한국어로는 용광로를 뜻한다. 마치 여러 재료가 용광로에 들어가서 새로운 것으로 탄생되는 것처럼, 미국이라는 나라에 온 수많은 이민자들이 하나의 동질한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인종이나 민족성은 잊어버리게 되고 결국 미국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의미하는 비유다.  


하지만 이와는 다른 의미를 담은 이론이 있다. 그것은 샐러드 그릇(salad bowl)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샐러드 그릇에 담긴 각종 채소처럼 각기 고유의 특성을 잃지 않은 채 조화되는 사회를 의미한다. 이 이론은 근래에 와서 미국의 사회를 더 잘 반영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나 또한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동안 경험한 미국의 모습은 멜팅 팟이라기보다는 샐러드 그릇에 훨씬 가까웠다.


인종과 민족이 다르더라도 서로 어울리고 함께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지만 그건 용광로의 모습이 아니었다. 샐러드 그릇 속에서 각종 소스가 버무려지는 느낌이랄까? 결국 같은 인종과 같은 나라의 사람끼리 모임을 만들고 그 속에서 정체성과 소속감을 느끼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각 나라의 학생들은 그 나라의 국적을 대표하는 학생회를 만들었고, 그 나라 사람들의 협회나 조직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인맥을 쌓으며 자신을 표현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온 사람들 중에는 어렸을 때 온 사람도 있었고 나처럼 나이가 들어서 온 경우도 있었다. 부모가 미국으로 온 경우에는 자녀가 어릴 때 오거나 미국에서 자녀를 낳은 경우가 많았다. 성인이 된 이후 미국에 온 경우에는 아무리 미국에서 몇십 년 이상 오래 살았어도 한국의 문화, 특히 언어와 음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영어를 아무리 열심히 배우고, 배우자가 미국 사람이어서 매일 영어를 쓴다 할지라도 영어가 한국어보다 편할 수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미국 음식이 한국 음식을 이기긴 힘들어 보였다.


내가 그동안 만나 본 한국분들 중에서 미국에서 무려 50년 이상을 사신 분이 있다. 배우자도 미국분, 자녀 세 명 모두 한국어는 못하고 영어만 한다. 남편이 김치를 못 먹고 한국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분은 여전히 김치를 먹어야 하고 한국 드라마를 포기할 수 없다고 하셨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남편, 자녀들과 영어로만 소통을 했지만 그분의 영어 실력은 한국어를 뛰어넘을 수 없었다. 여전히 모국어는 한국어이며 한국 음식을 제일 좋아하신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으로 입양되어 한국에 대한 기억이 전혀 또는 거의 없는 분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같이 한국어 공부를 같이 하고 있는 한 여성분은 어릴 적 미국으로 입양이 된 분이다. 미국 부모의 밑에서 자랐고 사십 년을 미국에서 사셨다. 그동안 한국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이 없었음에도 성인이 된 이후 자신의 정체성을 한국에서 찾고 계신다. 젊은 시절에 한국 음식을 먹어 본 이후 계속 한국 음식을 해 먹게 되었고 결국 한국어도 배우기로 결심을 했다.


미국이 샐러드 그릇이어서 각기 고유의 모습을 잃지 않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건 분명 사실이다. 내 경험에서도 그러했다. 하지만 아주 안타까운 경우도 볼 수 있었다. 그건 바로 한국어를 잊어버리는 아이들이다. 부모의 이민으로 인해 어릴 적 미국으로 왔거나 미국에서 태어난 경우, 부모의 영어 실력 여부에 상관없이 한국어를 유지 또는 향상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미국으로 오기 전에 아이의 한국어 실력이 좋았다 하더라도 점점 후퇴되거나 정체되어 결국 포기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다.


부모는 한국어가 모국어이고 자녀는 영어가 모국어여서 의사소통이 같은 언어로 하는 것만큼 편할 수 없고, 결국 소통의 결핍과 부재로 이어진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한 한국 분이 계셨다. 그분께서 내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해 주신 적이 있다. 절대 자녀의 한국어를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집에서 꼭 한국어만 써야 하고 부모가 적극적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하셨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뿐 아니라 자녀의 정체성을 위해서라도 꼭 그래야 한다며 본인처럼 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가면서 한국어를 놓게 되고 십 대 시절에 한국어를 포기하게 되면서 결국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꽤 많이 접했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 한국어를 잘 못하게 된 후에야 이를 후회하고 심지어 부모를 원망을 하기도 했다. 한국어를 잊어버리는 아이들과 한국을 잃어버릴 수 없는 어른들을 동시에 보게 되면서 현재 우리 가족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본다. 최근에 똘똘이의 한국어 교육에 다소 소홀했던 내 모습을 반성해 본다.


미국이 샐러드 그릇이라면, 언어는 생각의 그릇

절대 포기하지 말자. 우리말, 우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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