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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미 Dec 31. 2023

소심한 나를 휴직하게 해 준 3명의 사람들

너 왜 거기에 있어? 너의 행복을 추구해도 돼!

나를 휴직하게 해 준 첫 번째 사람:  남편

남편은 나와 같은 직업이지만 참 다른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힘들다는 형사를 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면서도 아침에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를 하고 출근했다.


평생 이 직업을 하다가 퇴직할 거라는 확고한 마음이 있는 사람, 내가 회사에 발딪고 있지만 속으로 정처 없이 부유할 때  그는 이 직업세계에서 늘 확고하고 알미울만큼 안정적이었다.


남편은 내가 회사에서 힘들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가족이기도 했다.


어느 날 우리 부부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던 남편의 친구 와이프 이야기를 했다.

OO이 와이프가 휴직을 했는데
난임 휴직이라는 게 있다네?
거긴 공기업인데도 썼다고 하니까 우리 회사도 되지 않을까? 한번 써 봐도 좋을 것 같아
어차피 돈은 우리가 아끼고 사니까 나만 벌어도 괜찮을 것 같고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거고 계속 스트레스받음 임신하는데도 더 안 좋을 것 같아

그런 휴직이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더 늦기 전에 사십이 되기 전에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과 한번쯤은 쉬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잠시 들떴다.


하지만 나는 소심했기 때문에 이 정도의 화력 가지고는

휴직을 결정하긴 부족했다. 육아휴직이 아닌 일반적이지 않은 난임휴직을 쓰는 게 두려웠다.


나를 휴직하게 해 준 두 번째 사람: M선배

다른 부서 선배 M은 내향적이고 소심한 내가 결혼 후 옮긴 경찰서에서 처음으로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었다.

가끔 만나서 밥을 먹고 회사 이야기를 했다.


부서 상황을 몇 번 말했고 그즈음 공기업에 다니는 지인이 임신을 하기 위해  난임 휴직을 썼다는 이야기도 했다. M선배는 "너 거기에 뭐 하러 있어? 생활이 엄청 어려워? 그게 아니라면 휴직 쓰고 임신 준비해. 네가 아이 가지기로 마음먹었잖아.  이번 기회에 좀 쉬어"


난 용기가 없었다.

남들 다 다니는 회사 뭐가 힘들다고 쉴까? 

남들 다 잘하는 임신!  왜 못 할까?

여기 여직원들은 일하면서도 임신만 잘하고 만삭 때까지 일하다 출산하러 가는 것도  많이 보았는데

왜 나만 유난을 떨까? 스스로를 비난했다.


난임병원을 다니고 나서는 남들 다 잘하는 임신이라는 말은 잘못된 말임을 알았지만 어쨌든 튀는 선택을 하려는 내가 싫었다. 어떻게 사람들에게 말할지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과연 휴직을 할 수 있는 건지  혼란스럽고 정리가 되지 않았다.


이럴 때 M선배의 말은 나의 결정에 명분을 마련해 주었다. 이 정도면 휴직하고 조직의 이익에서 잠시 벗어나 개인의 행복을 추구해도 괜찮다는 면죄부를 받은 느낌이었다.


나를 휴직하게 해 준 세 번째 사람: C계장

처음부터 그를 싫어했던 건 아니었다. 나는 피해자 보호 업무를 담당했고 그중 악성 민원인이 있었다. 피해사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앞으로 더 이상 피해자 보호를 할 근거도 없었으나 보호를 종결할 경우 민원이 예상되었다.


담당자로서의 고민을 이야기했을 때 C계장은 행정력 낭비가 아니겠냐며 보호종료하라는 말을 들었다. 어쩌면 직원들이 이야기하는 만큼 나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잘 지내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는데 끝은 안 좋았다.


존댓말을 하고 직원들을 존중하는 척했지만 그 존댓말로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사람이었다.


귀를 막고 본인의 잘못된 의견만 고집하면 부서 전체가 얼마나 망하는지를 보게 해 주었다.


연차가 올라감에 따라 역치가 낮아져서 못 참아냈는지

모르겠다. 신입시절 겪었던 면전에서의  직접적인 모욕들이나 타 지역 출신으로 겪었던 텃세에 비하면 괜찮은 수준이었다. 적어도 대놓고 욕을 하거나 비하하질 않는데도 더 참아내기가 힘들었다.


C계장은 어처구니없게도 내가 휴직을 쓰는데 가장 용기를 준 사람이다. 결론적으로는


나중에 사람들로부터 그가 갑질 신고를 받아서 감사 중이라든가 그 이후에 또 직원에게 난리 쳐서 다시 감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딱히 시원하진 않았다.


비슷한 인상의 중년 남성을 보면 언른 피하거나 심지어 티브이에 나온 배우의 재혼 상대자가 C계장과 닮아서 채널을 돌려버린 적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도 리지 않고 나도 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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