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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형준 Sep 20. 2021

미미할 것 같지만 큰 동작

그저 팬을 한 두 번 뒤집었을 뿐인데

미미할 것 같지만 큰 영향을 주는 동작이 있다. 요리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한 두 개의 동작이나 첨가가 맛에 큰 차이를 불러온다. 그저 팬을 한 두 번 뒤집는 동작은 바로 만테까레다. 이 과정이 가진 의미를 알고 나면 반드시 해야 할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되지만, 해보기 전에는 '안 해도 될 것 같은' 과정으로 인식된다.


사천 요리인 수주육편(水煮肉片)에서 등장하는, '끓는 기름 붓기'에서도 이런 미미한 동작이 존재한다. 바로 '다진 마늘을 가장 꼭대기에 얹고' 나서 기름을 붓는 것이다. 이 또한 밑에 놓으나 위에 놓으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완성된 음식의 맛을 담보로 하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


파스타 만들기는 팬 파트와 냄비 파트로 나뉜다. 가장 간단한 알리오 올리오를 예로 들면, 마늘을 올리브유에 볶는 곳이 팬이고 면을 따로 삶는 곳이 냄비다. 팬에서 젓가락을 이용해 기름방울들을 미세하게 분해한 뒤 파스타 면에 골고루 입혀주는 과정이 바로 만테까레다. 팬을 여러 차례 뒤집어가며 섞어주면 파스타의 색감부터 변한다. (참고로 커버 이미지에 쓴 파스타는 이 사실을 깨닫기 전에 만든 것이라 윤기가 부족하다.)


수주육편 뿐 아니라 많은 사천요리에서 등장하는 기법인 '끓는 기름 붓기'에서 마늘의 위치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마늘의 성질 때문이다. 마늘을 가장 위에 얹어두어야 나중에 마늘이 끈적한 즙을 내보내 음식 맛을 방해하지 않는다. 참고로 마늘은 닭볶음탕에서도 처음부터 넣고 오래 끓이면 쓴 맛이 우러나와 먹고 싶지 않게 된다.


두 가지 요리에서 각각의 작은 동작들은 맛의 큰 변화를 가져온다. 만테까레를 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파스타는 그 전의 맛과 영 딴판으로 맛있게 변모해 집에서 하는 파스타에서 식당에서 사 먹는 파스타로 변했고, 마늘 또한 깔끔한 맛과 향을 내는 차이를 보여주었다. 이런 차이는 '갬성'으로 치부해버리던 작은 요리기법들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무엇보다 혀가 증명해주지 않았는가?


한의사로서 한약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기를 기대한다. 수많은 치험 케이스를 분석하다 보면 현타가 올 때가 바로 '이 약재를 추가한다고 해서 큰 변화가 생길까?' 또는 '이 약재가 이 처방에서 꼭 필요할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 때다. 약재 구성에 약간의 변화만 주었는데 차도가 없던 증상이 완화되기 시작하는 케이스를 볼 때는 미세한 변화가 준 차이가 비교적 뚜렷이 나타나지만, 그렇지 않은 케이스들도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벽에 부딪힌 데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요리에 더 의미를 부여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물론 요리를 시작한 계기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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