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은 없다
요즘같이 인공지능이 모든 잡무를 대신 해결해줄 것 같은 시대에, 데이터는 여전히 노동 집약적인 채로 남아있다. 적어도 우리가 일하는 현장에서는 말이다. 숫자 데이터라면 말이 다르겠지만, 나는 정보의 바다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글자로 정리하고 있다. 방대한 문헌과 꼬리를 물고 들어가는 문헌 속 문헌. 따라가려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데이터를 추출하기 위해 정보를 읽어낼 때마다, 처음에는 내가 잘하고 있는 일인지, 지름길은 없는지 궁금했다. 공(空)으로 돌아갈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되었고, 그걸 누가 알아챌까 봐 두려웠다. 누가 나에게 '요즘 같은 시대에는 스마트하게 일하지 않으면 루저'라는 생각을 주입해 넣기라도 한 걸까. 효율성에 대한 강박은 늘 나를 사로잡는 편이다.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림 속의 그림을 찾아가면서 한 칸 한 칸 데이터를 채워 넣다 보면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데이터가 빼곡해질수록 마치 퍼즐의 큰 그림이 완성되는 것 같이 무언가 답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채워진 빽빽한 데이터와 형형색색의 칸이 보기 좋기만 하단 게 아니다. 데이터가 말을 하고 있단 걸 알 수 있는 순간이다. 모이면 모일수록 '내가 하는 해석의 편견'이 줄어들고 억지로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데이터가 방향을 일러주는' 현상이 벌어진다.
그렇다면 나는 삽질을 한 것이 아니란 걸 깨닫고 오히려 데이터를 모으는데 더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림 속의 그림을 들여다보는데도 그다지 지루하지가 않은 것이 신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