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 드라마
국가 : 독일
러닝타임 : 137분
개봉일 : 2007.03.22
주연 : 울리히 뮤흐, 마르티나 게덱, 세바스티안 코치, 울리히 터커
타인의 삶으로 나의 삶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
영화 초반 비즐러는 취조를 할 때나 학생을 가르칠 때나 피도 눈물도 없는 원칙주의자였다. 그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던 동독에서 교육 받은 대로 살았고, 그에 따라 성실히 일할 뿐이었다. 모든 것을 원래와 원칙에 의해 판단하고 실행했지만, 정작 더 탄탄대로를 걷는 것은 기득권층에 아첨하는 대학 후배 그루비츠였다. 언뜻 실력을 인정 받는 듯 하지만 그가 맡은 교수직은 일종의 좌천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 그의 신념에 흔들림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일까?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학생을 가르치던 중에 잠을 재우지 않고 취조하는 과정과 이유를 설명할 때,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아무렇지 않게 질문한다.
"하지만 그건 비인간적이잖아요?"
모든 것은 범죄자에게 죄를 묻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고 의문이라고 생각했던 비즐러의 마음에 요동이 치기 시작한다. 사회주의라는 체제에 젖은 그의 신념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비즐러는 드라이만의 윗층인 창고에 몰래 도청을 시작한다.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공간이므로 드라이만을 모두 내려다보는 듯 하다. 하지만 왼쪽 사진인 도면 위를 걷는 장면은 마치 드라이만이 되어 집 안을 구석구석 느껴보려 하는 듯 하다. 이런 비즐러의 감정이입은 오른쪽 사진 장면에서 더욱 드러난다. 이 장면 이후 의자에 앉아 크리스타 같은 자세로 쪼그려 있는 비즐러의 모습이 감정이입을 직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점차 드라이만과 같은 심정을 느끼기 시작하는 비즐러는 결국 드라이만의 행보를 위조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를 돕기 시작한다.
드라이만이 동독의 현실을 폭로하는 글을 서독 측에 투고했다는 결정적 증거인 타자기를 숨겨주었다는 사실이 발각되고, 비즐러는 우체국의 아주 작은 사무직을 맡게 된다. 그는 자신의 유배를 힘겨워하지도 않는 듯 하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원망하지도 않고, 통일이 된 이후에도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매일 성실히 한다. 통일 이후 도청 자료를 열람한 드라이만은 그제서야 자신이 철저히 감시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HWG/XX7라는 이름으로 적힌 비즐러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는 비즐러를 찾아가다가 그의 뒷모습을 보고 그냥 가버린다. 그리고는 '영혼을 위한 소나타'라는 책을 내어 그에게 감사를 표한다. 비즐러가 보이지 않는 존재로서 자신을 지켜주었듯이, 그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비즐러에게 감사의 메세지를 전한다. 그 메세지를 받은 비즐러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저를 위한 겁니다."
이 대사를 바꾸어 말하면 '이 행동을 나를 위한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아마도 드라이만을 도울 때마다 비즐러가 속으로 되뇌었던 혼잣말이 아닐까. 드라이만이라는 본 적도 없는 명백한 '타인'을 도운 것은, 사실은 자신의 뒤바뀐 신념을 지키기 위한 철저히 자신만을 위한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이만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았고, 좌천 이후에도 그저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감사하고 있지만 명백히 '타인의 삶'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