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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기 Jul 22. 2021

나의 입장, 강아지의 입장

뽀뽀

나, 인간


아니 다른 집 강아지들 보면 주인이 귀가하기가 무섭게, 아니, 귀가하는 발걸음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올 때부터 현관에 쪼르르 달려가 주인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현관문이 열리면 깨금발로 콩콩 뛰며 호들갑스러울만치 사랑스럽게 주인을 맞이하던데 말야. 아, 이 모습 보려고 퇴근한다 싶은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말이지. 근데 너는 뭐냐구. 어릴 때부터 한결같이 내가 오건 말건 하던 일이나, 자던 잠이나 계속 자는 널 보면 내가 반갑긴 한 걸까 싶어. 그런데 있지, 네가 시큰둥해도 나는 말이야, 마침내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서면 꼭 너의 털에 얼굴을 부비며 콧잔등에 뽀뽀를 해야겠더라.


처음엔 단지 너에게서 나는 꼬수운 냄새가 좋아서 그랬던 것 같아. 너의 털을 손으로 만지며 뽀뽀를 할 때면 마침내 긴 하루 끝 집에 돌아왔구나 하는 안도감도 느껴지고 말이야. 순전히 내가 좋아서 그랬던 거지. 그러던 어느 아침, 내가 늦잠을 자버린 거야. 혹여 지각이라도 할까봐 졸린 눈을 비빌 새도 없이 허겁지겁 화장을 하고 헐레벌떡 옷을 챙겨입은 뒤 쏜살같이 집을 나섰어. 역시나 너는 늘 그렇듯 내가 난리 법석을 떨거나 말거나 이불 위에서 자고 있었고. 그렇게 정신없이 집을 나선 뒤 지하철 역을 향해 뛰는데, 사원증을 챙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거야. 가방을 보니 역시나 없더라구. 머리가 새하얘져서 아이씨 하며 다시 집으로 냅다 뛰어가 현관문을 열었지. 그런데 네가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쏜살같이 침대에서 내려와 활짝 웃으며 내 앞으로 뛰어 오더라. 꼬리를 살랑살랑 열심히도 흔들면서. 그때 알았어. 너는 날 기다리지 않았던 게 아니라,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 결국 잠들어 버렸다는 걸. 그래서 그날 이후로 네가 좋아하던 싫어하던 퇴근을 하면 겉옷도 벗기 전에 쪼르르 너에게 달려가 뽀뽀를 하게 되더라구.



연두, 강아지


누나, 나 솔직하게 말할게. 내가 인간들이랑 7년 동안 같이 살아보니 그, 뭐라구? 갑자기 나에게 바짝 얼굴을 가까이 들이댄 다음 내 코에 대고 부비면서 쪽쪽 소리를 내는 그거, 뽀뽀? 그래, 그 뽀뽀라는 게 인간들이 애정표현을 하는 방식이라는 걸 이제는 알겠어. 그런데 그건 내 강아지 엄마가 나를 예뻐해주던 방식이 아니란 말이야. 우리 엄마는 내 얼굴을 핥아주고 몸도 핥아주면서 나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별안간 커다란 얼굴을 들이대면서 내 코에 대고 쪽쪽 소리를 내지는 않았어. 그래서 처음 누나를 만나고 누나 방식의 애정표현을 갑자기 받아들이기가 부담스럽더라. 영 적응이 안 되더라구. 특히나 누나가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5번 7번 쉬지않고 퍼붓는 뽀뽀는 말이지. (절레절레) 그래서 누나가 퇴근하고 돌아올 때마다 자는척을 했던 적이 많아. 실망했다면 미안해! 나 거짓말 못 하는 거 알잖아. 그래도 그 동안은 누나가 뽀뽀할 때 종종 누나 몰래 살짝 고개를 돌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안 그래! 저번에 누나가 퇴근했는데 내가 잠만 자고 있다고 하도 궁시렁거리길래 귀가 따가워서 다음 날 아랫집 흰둥이한테 물어봤거든. 그랬더니 걔는 주인이 돌아올 때마다 문 앞까지 쫓아가서 반겨준다는거야. 그러다 뽀뽀 당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백퍼센트 뽀뽀를 당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잠깐의 뽀뽀를 견디면 주인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흰둥이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을 준대. 그런게 사회생활이라는데, 나는 그런 건 잘 모르겠어. 그냥 이제는 누나가 뽀뽀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길래 나도 조금은 좋아진 것뿐이야. 흰둥이네 집처럼 간식도 주면 뽀뽀가 더 좋아질 수도 있어! 그리고 누나가 지각할 뻔한 그 날은 말야, 사실 누나 출근하고 나면 나 맨날 현관문에 앉아서 흰둥이랑 수다를 떨거든. 그 날도 수다 떨러 신나게 뛰어가는데 누나가 갑자기 들어오더라구. 예상치 못한 일이라 놀랐지만 그래도 누나 얼굴 봐서 기분은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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