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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기 Dec 19. 2023

방콕에서 직장인으로 보내는 하루


오전 6시면 눈을 뜬다. 근무는 방콕에서 하고 있으나 소속은 한국이기 때문에 방콕보다 2시간 빠른 한국 시간에 맞춰 7시에 출근해 4시에 퇴근한다. 내가 알람도 없이 일출을 볼 수 있는 사람인 줄 3n년 인생에서 처음 알았다. 몸이 노예 스케줄을 기억해 쉬는 날이면 늦게까지 침대에서 뭉개며 찌뿌둥한 듯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고 싶지만 쉬는 날에도 어김없이 6시 반이면 눈을 뜬다. 다시 잠도 안 와서 보통 저 이른 시간에 주섬주섬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건물 내 헬스장에 간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젊은 사람은 별로 없다. mz들은 절대 없다. 4개의 런닝머신 중 매번 3번째 런닝머신에서 약 1시간 정도 유산소를 하시는 백인 할아버지에게 내적 친밀감이 생겼다.


근무해야 하는 평일이면 6시, 늦어도 6시 30분에 일어나 아직 채 해도 다 뜨지 않아 여전히 어두컴컴한 방 안을 휘적휘적 걸어 나가 노트북을 켠다. 9시에 근무를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상태로 대애충 세팅을 해 두고 업무 메일을 잠시 열어 또 또 잔뜩 쌓인 메일함을 보며 살짝 진절머리를 좀 낸 뒤 다시 침대로 돌아가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아침에 일어나 아직 어두운 방 안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행위가 뇌건강에 꽤 좋지 않다는데, 곧 30분 안에 해가 완전히 뜰 것이고 그럼 곧 업무를 시작, 핸드폰을 계속 들여다보고 싶어도 볼 수 없으므로 잠깐 뇌건강을 방치하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여름 크리스마스


7시에 업무를 시작하고 약 9시까지는 와 씨 이럴 수 있냐, 이렇게 졸린데 업무를 할 수가 있는 거냐 하면서 커피를 거의 들이다 붓는다. 9시부터는 이제 곧 다가올 점심시간만을 바라보며 또 어느 정도 열심히 한다. 대체로 점심시간에 건물 내 헬스장에 가고 있기 때문에 업무 하며 틈틈이 그날 운동 스케줄을 짠다. 1시간 점심시간 중 헬스장을 오가는 5분, 샤워 10분, 유산소 5분을 제외하면 웨이트 운동을 할 시간은 딱 40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미리 어떤 운동을 할지 정해두는 게 좋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헬스장으로 튀어가 계획해 둔 운동을 한 뒤 점심시간 끝나기 10분을 앞두고 서둘러 올라와 샤워하고 점심을 만든다. 업무를 하면서 먹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샌드위치, 국수, 오믈렛 같은 간단한 걸 만들거나 시킨다. 점심시간 이후부터는 시간이 어지간해서는 참 잘 간다. 이때부터는 이제 퇴근 후 무엇을 할지 생각한다. 보통 카페에 가거나 마사지를 받으러 가거나 수영을 하러 간다. 20대 때는 혼자서도 펍에 아주 잘 갔는데, 카오산에서 밤도 새고 그랬는데 이제는 뭐랄까, 몸을 사리게 된다. 그리고 혼자서 펍을 가면 웬만하면 그닥 재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펍은 내 계획에서 주로 배제된다.



퇴근. 노트북을 덮으며 가장 큰 해방감을 느끼는 시간. 7시부터 하루를 시작한 덕분에 아직 밖이 훤하다. 그래도 얼른 서둘러야 한다. 방콕을 이미 9번이나 다녀왔고 이번이 10번째인데, 방콕은 대체로 6시면 해가 진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평균 35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에 해가 6시에 지다니, 한국인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기온이 35도쯤 되면 저녁 8시라도 환하니까. 미리 봐둔 카페, 마사지샵, 쇼핑몰에 간다. 그리고 혼자 잘 놀다가 대략 7-8시면 맥주를 사들고 다시 숙소로 돌아간다.


이동을 할 때는 두 가지 옵션이 있다. 걷기와 오토바이 택시 타기. 평균 35도, 낮에는 체감 온도 40도를 웃돌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걷지 않는다. 정말 코 앞 세븐일레븐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그래서 주로 오토바이 택시를 탄다. 처음 오토바이 택시를 탔던 게 기억난다. 그 밤에 또 카오산로드를 가겠다고 버스를 탔는데, 버스를 엉뚱한 곳에서 내려버렸다. 그때가 아마 스마트폰 보급 초창기였을 거다. 지금처럼 실시간으로 내 위치를 구글맵에서 봐가면서 버스에서 내릴 수 없었다. 대충 눈치껏 내렸는데 카오산으로 가는 방향이 도대체 어디인지 감도 오지 않았다. 날은 이미 어둡지, 주변에 외국인이라고는 없이 다 현지인이지, 또 가로등도 별로 없어 어두컴컴하지, 나는 거의 울기 직전이 되어 주황색 조끼를 입은 오토바이 택시 기사에게 다가가 카오산 가는 방향을 물었다. 이곳의 오토바이 택시 기사들은 주황색 조끼를 입는다. 이어 태국어로 돌아온 답변을 나는 당연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대충 멀어 무지 멀어 이런 느낌이었다. 기사는 오토바이에 타라고 했다. 무서웠고, 나를 어디로 납치할 수도 있을 거라는 두려움에 싫다고 했다. 그런데 한사코 타라고 한다. 어리고 순진한 여행객을 등쳐 먹으려고 지금! 죽어도 싫었으나 그때는 다른 옵션이 없었다. 결국 오토바이에 몸을 실었고 오토바이를 태어나 처음 타본 나는 출발과 동시에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오토바이 기사 허리를 끌어안았다. 나중에 이 경험을 두고 어떤 외국인이 그래서 방콕 택시 어플 이름이 ’그랩‘인거라고 썩은 농담을 했다. 오토바이 기사 허리를 그랩 했다고. 참나. 여행객을 등쳐먹을 생각은 절대 없었던 그 기사는 나를 안전히 내려준 뒤 한사코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으나 너무 고마워서 아마도 운임의 두 세배는 돈을 지불했던 것 같다. 이때의 오들오들 거리던 나는 더 이상 없다. 이제는 한 손으로 핸드폰도 봐가며 여유롭게 탄다. 돌려 말해 안전 불감증이 생겼다고 할 수 있으려나.


방콕을 사진 한 장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래야 한다면


숙소에 돌아오면 유튜브를 보면서 보통 맥주를 마신다. 운수오진날이 보고 싶어 방콕행 비행기를 타는 날 한국에서 티빙 한 달권을 구독하고 왔으나 티빙은 한국 내에서만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한다. 구독권 취소라도 하고 싶은데 한국 내에서만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아예 어플이 켜지지도 않는다. 한국에 돌아가면 환불을 받을 수 있기 바란다. 맥주 한 두 캔을 비우고 나면 벌써 9-10시가 된다. 보통 이쯤 자는 게 다음날 컨디션을 위해 좋겠지만, 취침시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나 자신과 원만한 합의를 본 적이 없다. 매번 10시에 이제 좀 자지 않으련 하는 착하고 이성적인 나와 장난하냐고 지금 새나라의 어린이냐고 자존심도 없냐고 방콕까지 와서 아무리 펍 같은 곳도 안 가고(못 가고) 있다고 해도 이 야경 뷰를 눈앞에 두고 다음날 근무 할 거 뻔히 알면서 미쳤다고 10시에 잠을 자냐고 하는 분노에 휩싸인 내가 있고 보통은 후자가 이긴다. 기어이 맥주 한 캔을 더 따고 다음날 6시, 미쳤던 거지 하며 눈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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