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만든 필연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 브라운 운동

by 엠삼

‘그때 그랬었더라면.’


이런 생각해 본 적 있는가? 가끔 새벽에 잠을 못 자고 있으면 과거에 했던 선택들에 대해 떠올릴 때가 있다. ‘그때 걔한테 좋아한다고 말할걸.’, ‘그때 그 과목을 신청하지 말걸.’, ‘그때 그 기회가 왔을 때 잡을걸.’ 이렇게 수많은 후회를 하고 있노라면 선택했던 그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누군가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는 무수한 선택(Choice)이 있다고 말했다. 매 순간마다 결정해 온 수많은 선택으로 우리는 지금 여기에 서 있다. 과연 현재의 우리는 과연 필연적일까? 만일 과거로 다시 돌아가서 그때 그 선택을 바꿨다면 우리가 지금이라고 느끼는 이 상황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도달한 현재는 이미 정해진 장면일까?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시대가 바뀌며 점차 다양해졌다. 가장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받아들인 관점은 시간이 한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그래서 이 경우 시간이라는 주어 뒤에 ‘흐른다’라는 서술어를 쓰고는 한다. 마치 흐르는 물에 떠 있는 나뭇잎이 물의 흐름에 따라 위치를 이동하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도 세월을 살아낸다고 보는 것이다. 흐르는 강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나뭇잎을 관찰하고 있으면, 내 앞에 있던 나뭇잎은 곧 강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더 이상 ‘내 앞’에 있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다. 내 앞에 보이는 것은 언제나 현재이지만, 강물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것들은 이미 흐르는 방향으로 사라진 과거인 것이다.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과거의 좌표로 명확하게 도착한다. (비록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했지만)

따라서, 흐르는 방향으로 시간이 흐르는 것보다 더 빨리 뛰어가 과거의 시점과 만날 수 있다면, 즉, ‘시점을 거스르는 힘’만 있다면 과거 시점의 좌표는 명확하니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강물의 흘러왔던 방향을 알고 있으니 다시 현재로도 충분히 되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이 사고의 핵심은 시간의 흐름은 한 방향이고 일직선이라는 점이다. 사주·팔자를 믿거나, 운명론자의 세계관은 주로 이쪽 관점을 빌린다.


그런데 시간이 방사형으로 뻗어나갈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모든 시점은 가능성의 얼굴을 가진 채 한 시점으로부터 뻗어나갈 수 있는 한 좌표인 것이다. 따라서 전 시점과 다음 시점을 잇는 선의 기울기가 모든 시점의 기울기로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다음 시점, 그리고 그 다다음의 시점이 예측 불가능하며, 한 시점으로부터 가능한 시간이 진행되는 경우의 수는 무한하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선택을 한 순간부터 갈라지는 모든 상황이 거미줄처럼 병렬적으로 나아가고 있어, 그 모든 순간에 어디든 여러 상황의 ‘내’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인 ‘멀티버스’라고 부르는 세계관을 전제한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웨이먼드와 결혼하여 미국에 이민 와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의 시공간과 병렬적으로 무림 고수에게 무술을 전수받은 에블린, 웨이먼드와 헤어지고 여배우가 된 에블린, 요리사로 성공한 에블린, 자기 딸을 피실험자로 삼았던 에블린, 손가락이 핫도그인 에블린, 심지어 돌인 에블린의 모든 시공간이 모두 동시에 존재한다. 단지 여러 시공간의 에블린 중 현재 이 영화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주인공 에블린이 세탁소를 운영하며 세금 조사원에게 정리한 영수증 더미를 가져가 세무조사를 받는 에블린일 뿐이다.

에블린이 버스 점프를 통해 각 시공간에 뛰어들 수 있게 되자, 과거 자신이 했던 선택들을 하지 않았을 때의 여러 에블린을 만날 수 있게 된다. 특히 유명한 영화배우가 된 에블린을 경험하며 그 세계에 남고 싶어 했지만, 현재 시점의 딸을 살리기 위해 다시 돌아온다. 이제부터 돌아오는 미래는 현재의 에블린이 선택한 시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자연에서도 이렇게 무작위로 정해지는 여러 경로를 설명하는 개념이 있다. ‘브라운 운동’은 유체 속에서 미소 입자가 외부의 간섭 없이도 불규칙적으로 이동하는 현상으로, 로버트 브라운이 수면 위의 꽃가루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관찰하며 발견되었다. 초기 과학자들은 이 꽃가루의 움직임을 관통하는 하나의 경향성을 찾으려 했지만, 결국 경향성이 없는 것을 증명한다. 물 분자의 불규칙적인 운동으로 인해 꽃가루가 물 분자와 충돌하는 방향과 주기가 불규칙적이게 된다. 그렇기에 꽃가루도 무작위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아래 그림과 같이 시뮬레이션을 하면, 50번의 시도의 모든 꽃가루 이동 경로는 규칙성이 없으며 제각각이다.

(출처: https://quantgirluk.github.io/Understanding-Quantitative-Finance/)


브라운 운동을 설명하는 수학적 개념으로 ‘무작위 행보’가 있다. 정의는 다음과 같다.


무작위 행보의 가장 단순한 형태는

다음과 같은 규칙에 의해 생성된 경로이다.

- 시작 점이 있다.

- 경로 상의 한 점에서 다음 점까지의 거리는 상수이다.

- 경로 상의 한 점에서 다음 점으로의 방향은 특정 선호 조건 없이 임의로 선택된다.

때문에, 무작위 행보는 아래의 예시와 같이 행적이 불규칙하다.


다음 점으로의 방향은 임의로 선택되고 있는 결과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다음 점으로의 방향은 임의로 선택된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지나쳐 온 과거와 운명이라고 믿는 미래는 현재를 결정할 수 없다. 그래서 후회할 필요도 없다. 지나온 행보를 바탕으로 경향성을 찾을 필요도 없다. 우리는 무작위로 행보한다.


슬럼프인 것 같다며 찾아와 상담을 요청했던 학생 한 명이 떠오른다. 학교 생활 내내 성실했으며 넘치는 재능으로 반짝거리던 학생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난관에 부딪혔던 모양이다. 울먹이며 ‘이 슬럼프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전화위복,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삶을 거시적으로 보면 확실히 부침은 있지만,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매끄러운 연속의 다항 함수처럼 하락세와 상승세가 명확하지는 않아. 선생님은 인생이 불연속인 것 같아. 생각해 봐. 우리가 자는 동안 의식은 잠시 꺼져 있잖아. 자고 일어난 뒤 우리는 자기 전과 그다지 연결되어 있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어제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이미 찍힌 점 다음에 어디에 점을 찍는가는 우리 마음이야. 기어코 두 점을 이어 연속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대도, 기울기가 양수일지 음수일지는 그다음 좌표를 찍어야만 그때 결정돼.”


버스 점프를 하는 방법은 바로 'Improbable Actions'이다. Write a novel도 있다!

영화에서 에블린이 다른 시공간의 자신으로 버스 점프를 하는 방법은 ‘평소와 다른 선택을 하는 것(있을 법하지 않은 행동)’이다. 립밤을 껌처럼 씹는다든지, 영수증을 스테이플러로 머리에 박는다든지, 세무 조사원에게 갑자기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말이다. 완전히 다른 방향의 시점으로 가기 위한 조건이다. 이 원리는 영화 밖에서도 통한다. 앞서 학생에게 말했던 물음에 이어진 답이다.


“그러니까 슬럼프라 말하지 말자. 정 네가 이상하게 꼬여버린 음의 기울기를 타고 있는 거 같으면 평소와 다른 선택을 해. 오늘은 너를 위해 평소보다 더 잘 차려진 음식을 먹고, 평소보다 풍족하게 수면을 취해. 그렇게 맞이한 내일이 현재가 되었을 때 다시 점을 찍어. 그렇게 양의 기울기를 만들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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