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가지는 뜨거운 감정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분자 운동 에너지

by 엠삼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Thou art more lovely and more temperate:

Rough winds do shake the darling buds of May,

And summer’s lease hath all too short a date:

Sometime too hot the eye of heaven shines,

And often is his gold complexion dimmed;

And every fair from fair sometime declines,

By chance, or nature’s changing course, untrimmed


너를 여름날에 비할까?

너는 더 사랑스럽고 온화하구나.

거친 바람이 오월의 사랑스러운 꽃봉오리를 흔들고,

여름의 임대 기간은 너무나 짧구나.

때로는 하늘의 눈이 너무 뜨거워 빛나고,

그의 황금빛 안색은 종종 어두워지네.

모든 아름다움은 때때로 아름다움에서 멀어져 가네.

우연이든, 자연의 변화하는 흐름이든, 다듬어지지 않은 채로.

(윌리엄 셰익스피어, 소네트 18번 中)


?src=http%3A%2F%2Fblogfiles.naver.net%2FMjAyNDA3MDNfMTI0%2FMDAxNzE5OTY4MzgwNDY1.OPjMLByONY5GDFeWPQf8GweLZnNkQpPzg2enazH_coYg.GBc7l4VdCSn40xPYTzrN3scr7sSe15truGlVhlOYyYwg.JPEG%2FIMG_0055.JPG&type=sc960_832 여름이었다 밈 사용 사례

예전에 ‘여름이었다.’라는 밈이 유행했다. 이 밈의 쓰임은 다음과 같다. 이 문장을 어떤 이야기의 마지막에 붙이기만 하면 마치 풋풋했던 첫사랑 이야기처럼 아련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 밈은 정말로 뜬금없는 이야기 뒤에 주로 말 줄임표와 함께 쓰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기에서도 이 문장을 쓴다고?’라는 생각과 함께 독자를 살짝 열받게 하는 포인트로 쓰인다. 이 밈이 생명력을 가지고 모두에게 이런 아련함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여름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어떤 성질 때문일 것이다.


작금의 여름은 습하고 무더워 에어컨을 간절하게 찾게 되는 불지옥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지만, 대개 북반구의 지구 온난화가 본격적으로 찾아오기 전 여름은 뜨거운 햇살 아래 넘치는 에너지로 생동하는 시기였다. 숲에서는 풀과 나무가 작열하는 태양 밑에서 쑥쑥 자라나며, 그 속 생태계 또한 마치 자신에게 한계란 없는 듯 무한히 확장하는 계절이었다. 이를 경험한 많은 창작자들은 여름을 혈기 왕성한 인간 삶의 청년기에 줄곧 빗대곤 했다. 위에 먼저 소개한 소네트를 쓴 셰익스피어는 여름을 빌려 청춘을 노래했으며, 그의 또 다른 작품 <한여름 밤의 꿈>에서 또한 젊은 청춘들이 사랑에 휩싸이는 어느 한 밤의 배경으로 여름이 등장하였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와서, 청춘을 이야기하는 이 여름이 과거형인 ‘~이었다.’라는 어미가 붙으며 어떻게 아련함을 가지게 된 것일까? 봄, 가을, 겨울은 가지지 못하는 그 느낌을 말이다.


원작의 이름부터 <그해, 여름 손님>인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이탈리아 한 북부 지방의 여름날 한 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다. 소년 엘리오가 별장에 찾아온 손님 올리버에게 이끌리는 것을 애써 부정하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여름날 나눴던 뜨거운 사랑을 보여준다. 물론 엘리오에게 올리버는 첫사랑이며, 대부분의 결말과 같이 뒤따라 찾아오는 헤어짐을 맞이한다. 언젠가 꺼질 벽난로의 불 옆에서 자신의 첫사랑이 끝났음을 깨달으며 우는 엘리오의 마지막 장면 속 모습은, 너무나 뜨거워 영원할 것 같던 첫사랑도 결국에는 식어가는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이 얼마나 가슴 아픈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maxresdefault.jpg 영화의 마지막 장면


화학에서 ‘뜨겁다’라는 것은 사실 상대적인 상태로, 높은 열에너지를 외부에서 받아 기존의 분자들이 이 얻은 열에너지를 통해 분자들이 활발히 운동하며 ‘평균 분자 운동 에너지’가 높아진 상태를 일컫는다. 평균 분자 운동 에너지는 여러 변인 중 오직 ‘온도’의 영향만 받으며, 그 값은 주위 온도에 비례한다. 이 높아진 운동 에너지를 가진 분자들은 더 빠르게 움직이게 된다. 그러면 같은 부피의 용기 내에서는 단위 시간당 벽에 충돌하는 횟수가 증가하며, 같은 압력으로 유지되는 용기에서는 늘어난 초기 충돌 횟수 증가로 인해 부피의 증가를 경험할 수 있다.

vm_sc1061_05_i01.jpg?type=w420 샤를의 법칙 : 같은 압력에서 온도가 증가할수록 기체의 부피는 증가한다


사랑에 빠진 관계를 설명할 때도 ‘뜨겁다’라는 관용적 표현을 쓴다. 특히 첫사랑에 이 형용사를 빈번하게 쓰곤 한다. 첫사랑을 앓고 있는 사람은 브레이크가 아직 달리지 않은 불도저나 다름없으며, 끊임없이 상대를 탐색하며 상대의 어디까지 자신의 자아가 닿을 수 있는지 무한히 확장하며 가보지 않는 길을 걷는다. 영화 속 엘리오는 자신의 종교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선을 성큼 넘기도 한다. (소년 엘리오는 유대인이며 그의 첫사랑 상대인 올리버는 ‘남자’다.)


한창 첫사랑에 눈이 멀어 새벽에나 겨우 들여다볼 수 있는 글을 쓰곤 할 때, 의지와 지식과 쌓아온 경험에서 말해주는 높은 확률의 답과는 다르게 비이성적인 선택을 했다. 이런 모습을 스스로 확인할 때마다, 마치 구렁텅이에 빠져 버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로등 불빛에 날아드는 나방처럼 적당한 선을 모르고, 자신을 버려둔 채 이성이 닿지 않는 곳, 뜨거운 불 구덩이 같은 곳에 달려가 기꺼이 다이빙했다. 난관에 빠진 상황이라 해결해야 할 것들은 산더미인데, 쏟아지는 도파민 때문에 주변의 심각성을 알리는 이성 담당 사이렌 신경 회로가 망가진 것이다.

파국 같지만 괜찮다. 그 결말은 나름 해피엔딩이다. 언젠가 첫사랑은 끝나고 그제야 겨우 불 구덩이에서 탈출하면, 찬 공기를 마시며 망가진 신경 회로를 복구할 것이다. 그곳에 가봤으니, 그쪽으로 가면 위험하다는 표지판도 설치할 것이고, 예전에 했던 무모한 행동은 하지 않게 오답 노트도 작성할 것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며 기온이 오르는 것과 달리, 여름이라는 이 시기를 지나가면 점차 이 열기가 식는 가을과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 주변 온도에 비례하는 평균 분자 운동 에너지는 줄어든다. 이렇듯 우리는 전처럼 무자비하게 충돌하지 않을 것이고, 고성능 온도 센서를 장착한 우리는 예전처럼 지나치게 뜨거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때만의 ‘뜨거움’이 아련함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도 그 뜨거움을 다시 느끼기 위해 무모하게 열기로 뛰어들지는 말자. 그러기에 너무 많이 아팠다.

여름날이 지나 적당히 단풍이 익는 가을이 오면, 이제는 적절한 온도에서 안정함으로 사랑하겠지. 그것도 좋다. 아무래도 뜨거운 것보단 따뜻한 것이 좋다.

작가의 이전글완벽한 창조의 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