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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연 Mar 29. 2023

스물셋이 되었다.

나라는 존재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고찰

스무 살이 십 대에서 이십대가 되는 상징적인 나이였다면, 나에게는 줄곧 다음 분기점은 '스물셋'이었다.


하나, 셋, 다섯, 홀수로 끊어지는 한국인 정서그런지, 아니면 받침에 시옷이 들어가서 그런지,

스물하나, 스물둘까지는 갓 성인이 된, 고딩 티를 벗으려고 애쓰는 어설픈 이십대 초반의 느낌이었다면

스물셋은 법적 성인으로 3년을 살아본 시점인 만큼 어딘지 모르게 더 성숙하고 어른 같은 느낌이었다.

이전까지 줄곧 스물세 살인 '언니'들을 보는 내 시선이 그랬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코로나에 묻혀 희미한 2년을 보내고,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내가 고등학교를 다닌 것보다 대학교를 다닌 시간이 더 길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스물셋이 되어버린 것이다.


코로나가 한창인 비대면 시절에 시간을 벌어보고자 했던 휴학이 무색하게도, 나는 또다시 삼학년이 되었다.

분명 고등학교 삼학년 시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과연 어떤 식으로 달라졌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십대의 내가 바라고 꿈꾸던 그 모습일까? 나는 옳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걸까? 이런 의문들이 바람이 따뜻해지는 시점, 환절기 감기처럼 찾아와 나를 성가시게 한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평범함을 점점 인정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열 살 때 신동, 열다섯 살에 수재, 스무 살이 넘으면 보통 사람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이 글을 쓰기 전에 스물한 살, 스물두 살의 내가 썼던 글을 찬찬히 전부 읽어보았다.

야망 넘치고 반짝반짝하던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가고

문득

또다시

기어이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 것 같아

허탈함과 자괴감섞인 감정이 가래처럼 진득하게 붙어 떨어지질 않았.


지난 22년간의 자기 객관화를 통해 내가 유달리 머리가 좋지도, 예쁘지도, 성격이 좋지도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런 내가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방법은 나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특별한 나를 꿈꿨다.

더 정진하고, 더 발전하고, 더 넓고 깊어질 미래의 나를 상상했고 그럴 가능성을 지닌 나 자신을 믿었다.


작년을 돌아보면 내가 바라는 나 자신이 되고자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어느 것 하나 놓지 않는 것이었다.

선택과 집중보다는, 최대한 많은 것들을 동시에 다 하려고 아등바등했다.

덕분에-길지 않은 인생이지만-인생 최고로 바쁘게 살았다.


심화 전공에 부전공,

과외와 아르바이트,

동아리와 소모임

학생회

운동

연애까지....


물론 아직도 내 관점에서는, 그리고 누군가의 관점에서는 한참 부족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정작 돌아보니 이 알 수 없는 허탈함은 뭘까.  생각하기를 게을리한 게 가장 부끄럽다. 그저 욕심껏 벌려놓은 것들을 수습하기 급급하고 정작 남은 것은 없는 느낌이었다.


아직 덜 열심히 살아서 그런가?

아직도 못 고친 게으른 천성과 습관적 늦잠과

빼지 못하고 오히려 불어버린 살들과

작심삼일로 스쳐간 수많은 결심들이 떠오른다.


구색 맞추기만 했을 뿐 과정 하나하나에 소홀했던 것은 아닐까?

 더 많이, 좀 더 열심히, 좀 더 잘하면 뭔가 나아질까?


하지만 내가 아무리 아등바등 바쁘게 살아도

인스타를 켜서 조금만 들여다봐도 나보다 더 '갓생'사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찍어 발라도 나보다 예쁜 사람들이 길거리에 발에 채이듯 많았고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나보다 더 비상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널렸다.


그런데 나는 이제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꿈꾸지도 않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려한다.

이제 나는 무슨 수로, 외모도 능력 의지도 고만고만한 나를 다른 사람과 다른 특별한 사람으로 만드는가?

내가 성공할 사람, 크게 될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나 자신이 한순간에 초라해진다.


자기 합리화, 자기 연민

이 두 가지에 만큼은 절대 빠지지 않으려 그토록 되뇌었는데

이미 그 안에 푹 젖어들어 내가 하고 있는 게 정확히 그것들이라는 자각도 못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평범해지지 않으려 애쓰는 것, 동시에 어른이 되려는 것은 이다지도 괴로운 일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계절은 빠르게 바뀌어 만개한 꽃들이 가득한 봄이다.

거의 1년 만에, 활짝 핀 벚꽃과  달 아래에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나를 둘러싼 모든 변화와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 변하지 않아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서.


어째 내 봄은 매번 조금은 씁쓸하고 허하게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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