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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연 Aug 25. 2024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게 해줘

덕업일치를 열망하는 덕후들의 몸부림

좋아하는 것을 좇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순수하게 빛나는 열정, 반짝거리는 눈빛, 그런 사람을 지켜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아주 약간이더라도 타고난 소질이 있어야 흥미를 느끼고 좋아하게 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좋아하기에 그만큼 관심과 열의를 가지게 되면서 더 잘하게 되는 것인지는 아직도 명확히 답을 내리기 어렵지만 (나의 경우 확실히 전자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 이들의 열정은 가히 존경할 만 하다. 


'잘'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잘하기 위해서는 잘하는 사람의 것을 많이 봐야 하고 상대적으로 못하는 나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해야한다. 이 과정 자체가 상당히 고통스럽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원하는 수준으로 잘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기가 무척 괴롭다. 하지만 그 고통을 온전히 마주해야만 잘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이제부터는 너덜거리는 마음을 잡아세우고 잘하기 위한 훈련을 해야한다. 훈련은 재미도 없고, 힘들고,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결과가 즉각적으로 보이는 경우도 드물며, 때로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전혀 관련도 없어 보이기도 한다. 나에게 잘 맞는 방법을 찾아 좋은 스승에게서 적절한 지도를 받지 못하는 경우 특히 훈련은 더 고통스러울 것이며, 당연하게도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나가떨어진다. 그러나 훈련은 의미 있다. 내가 잘 하는 것을 세상에 펼쳐 보이기 위해서, 더 정교하고 단단한 실력 위에 나만의 것을 쌓아 올릴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결국 힘들고 고통스러운 훈련을 견디고 자신의 기량을 발전시켜 나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좋아하는 것을 잘하고 싶다는 욕망이 큰 사람일 것이다. 결국 남들보다 더 진심이고 더 깊이 좋아해야만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좋아하는 것을 꼭 잘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잘할 필요 없이 좋아하는 것을 할때 보통 취미라고 부른다. 혹은 좋아하는 것에 시간과 돈을 많이 써서 더 깊이 좋아하는 것을 덕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좋아하는 것을 잘해서 업으로 삼는 것, 덕업일치라고도 부르는 그것이 아마 많은 현대인들의 바람이자 더없는 자아실현이라 할 수 있겠다. 


덕업일치가 힘든 이유는 아마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것 같다. 좋아하는 일에 소질이 없어서 잘 못하거나,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돈이 안되거나. 보통 돈을 벌려면 쓸모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또 내가 좋아하기만 해서 되는게 아니라 쓸모 있게 기능할 수 있는, 즉 내가 1인분은 해낼 수 있을 정도의 능력과 소질은 있는 분야의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돈이 되는 일,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번 돈으로 좋아하는 일(취미나 덕질 등)을 지속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고, 심지어는 잘 할 수 있는 일이 그 자체로는 쓸모가 없는 일이라면 힘들어진다.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옷, 내가 만들고 싶어 하고 실제로 잘 만드는 옷은 팔리지 않는 옷이다.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어 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 자체로는 쓸모가 없고, 돈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결국 내가 덜 좋아하는 옷이나마 만들어서 팔아야한다. 그렇게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돈을 벌 필요가 없는 일, 즉 내가 좋아하는 옷을 취미로 만들면 된다. 흔한 타협의 예시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말이 쉽지, 실제로는 덜 좋아하는 옷이나마 만들어서 돈을 버는 것 부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예 옷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일 자체에 소질이 없을 수도 있다. 어떻게든 팔리는 옷을 만들어서 돈을 번다고 해도 더이상 내가 좋아하는 옷을 만들 시간과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조금이나마 더 희망적인 경우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내 재능은 쓸모없지 않다. 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장르의 음악은 그 자체로서는 상품성이 없고, 돈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장르를 같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 음악을 계속 듣고싶어 한다면 돈을 쓸 것이다. 마이너 장르가 대체로 이렇게 굴러간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한다면  그 자체로 거대한 메이저 시장이 된다. 축구는 그 자체로는 십원 한 장 생산해내지 못하는 공놀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기꺼이 많은 돈을 지불하기 때문에 축구 산업은 엄청난 부가 가치를 창출해낸다. 물론 시장이 크다고 여기서 내가 가진 것으로 돈 벌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사람이 모이면 더 경쟁이 치열해지고, 어떻게든 시장에서 한 자리 해먹으려는 사람들까지 몰라며 레드 오션이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면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 나갈 수 있다. 적어도 내가 이 분야에서 남들보다 잘한다는 것을 인정받으면 성공할 수 있으니까. 


마이너의 설움은 여기에서 부각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의 매력과 가치를 세상이 모르고 아주 소수의 인원만 안다면,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해서 남들보다 잘하더라도 누가 알아줄 것인가? 사실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서면 더이상 사회적, 경제적 성공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그저 좋아하는 일을 계속 좋아하기만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통해 버는 수익으로는 생계를 지속할 수 없기에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기 위해 다른 수단으로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러면 좋아하는 일을 할 시간과 에너지를 상당 부분 소모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좋아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는 사람들이 발휘하는 경이로운 능력으로 세상이 바뀌어 간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능력치로 인해 우리 삶이 더 풍성해지기도, 윤택해지기도 한다. 과학 실험도 한때 생계 걱정 없는 귀족들이 하는 호화 취미였다는 것을 아는가? 사비를 들여서 제 저택에 실험실이며 천문대를 만들고, 고가의 장비를 사모으고,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실험을 하고 관찰하고 측정하고.... 그 과정에서 재미를 발견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모두 그들의 관심사, 즉 좋아하는 것을 향한 애정과 열정일 것이다. 태초의 덕후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이공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공계 학자들만큼 순수한 덕후가 또 없다고 생각한다. 생명체, 세포, 결정이며 분자며 양자 현상... 자연과 진리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그렇게 오랜 시간과 정성을 쏟아 더 잘 알고자 할 리가 없다. 그들은 그저 덕업일치를 추구하다가 그러한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비록 누군가의 인정과 쓸모가 없더라도 좋아하는 것을 순수하게 더 잘 하고, 더 잘 알고자 하는 욕망은 어떤 분야에서든 공통적으로 통한다. 순수 과학이며 인문학, 예체능이 특히 그러하다. 


올림픽을 보면 태어나서 처음 보는 종목도 많다. 더 신기한 것은 그 종목을 위해 4년, 그 이상 혹은 평생을 바쳐 준비한 선수들만이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것이다. 비인기 종목이라 중계도 안 해주고, 좋은 성적을 거둬도 스포트라이트는 커녕 대다수는 관심도 없는 종목인데도 말이다. 심지어 생계 걱정 없이 할 수 있는 프로 종목도 아닌데도, 엄청난 사비를 들여가며 훈련을 하고 대회에 나가기도 한다. 물론 원래부터 돈좀 있어야 시작이라도 해 볼 수 있는 스포츠도 있지만, 그 비용 마련을 위해 다른 직업을 갖는 선수들도 있다고 한다. 정말이지 그 노력과 열정을 생각하면 경이롭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어떻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종목을 접하고, 직업으로 선택할 결심을 하고, 그토록 많은 난관에도 선수생활을 지속해 나갈 수 있을까? 아마 그렇게 해서라도 포기하고 싶지 않을 만큼 그 스포츠만의 설명할 수 없는 매력에 푹 빠진 사람들일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이란 이렇게도 강하다. 


나는 다만 나를 비롯한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좋아하는 종목의 스포츠를, 좋아하는 장르의 예술을, 좋아하는 분야의 학문을, 단지 그것들이 인기가 없고 쓸모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하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애정과 열정을 가진 일에 마음 놓고 온 정성을 쏟을 수 있도록 밀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 좋아할 수 있을 때, 좋아서 하는 덕질이 업이 될 때, 우리는 상상도 못할 만큼 많은 사람들의 잠재력이 꽃피는 것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구구절절 길게 적었지만 앞서 한 모든 만들을 한줄로 줄이면 이렇다. 

덕후는 위대하다! 그리고 덕질은 세상을 바꾼다. 


좋아하는 마음, 대상의 매력에 빠져 깊은 애정을 가지고 더 잘 알고 더 잘 하고자 하는 마음, 덕질의 본질은 그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밥 먹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재차 말했듯이, 나는 더 많은 덕후들이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고 인정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가슴 뛰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다. 부와 사회적 지위,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나가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싶을 때 까지 계속 좋아하는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덕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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