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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Apr 18. 2022

포동포동한 사랑.

- 나의 소울푸드에 대하여


우리 할머니는 육식을 하지 않으신다. 육식을 하지 않는 우리 할머니의 텃밭은 늘 풍성했다. 할머니의 텃밭에는 늘 다양한 식물들이 있었고 대부분 아주 맛있었다. 앞마당에는 옥수수가 자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할머니는 음식물 쓰레기가 생기면 그냥 옥수수밭에 턱하니 던져 놓으셨다. 더운 여름에는 가끔 음식물 쓰레기 썩는 냄새 때문에 마당에 놀러 나갈 때는 "으! 냄시!"하면서 코를 틀어막고 나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1주에서 2주 정도만 지나면 정말 기름진 흙이 되어있었다. 물론 겨울에는 그냥 얼어있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할머니 집의 뒷마당에는 작은 식물들이 살았다. 고추, 상추, 방울토마토 같은 작은 식물들. 꼬맹이 시절 나는 할머니가 시키면 쪼르르 뛰어가서는 고추를 따오곤 했다. 어른들은 밥을 드실 때마다 "우리 슬기가 따온 고추라서 더 맛있네!"라고 말씀하시며 쌈장을 듬뿍 떠서 한입 아삭! 하게 베어 물어 드셨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런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깨가 으쓱, 무척 뿌듯해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나면 점심엔 뭘 먹을까, 점심을 먹고 나면 저녁엔 뭘 먹을까 고민하는 할머니 옆에서 나는 살이 포동 포동 하게 차올랐다.


소울푸드1) 해바라기씨와 고구마와 옥수수.


할머니네는 굉장한 대가족이었다. 지금은 그 인원이 이전보다 많이 줄어들었지만 내 눈에 할머니의 집은 정말 으리으리하게 컸다. 이전에 사시던 집은 지금 집의 바로 옆 언덕 너머에 자리하고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7남매가 함께 살던 집인데 지금 집보다도 훨씬 작았다.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곧잘 밭이나 산으로 산책을 많이 데리고 다녀주셨는데 어느 날은 그 옛집에 데려가주셨다. 문과 담벼락 정도만 남아있었던 그 옛집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지금 내 기억에 남아있는 작물은 해바라기, 고구마, 그리고 옥수수이다. 할머니를 도와 옥수수를 따고 고구마를 캐는 시간은 나에겐 최고의 놀이 시간이었다. 고구마는 신기하게도 그냥 호미로 한번 흙을 슥~ 훑어 내기만 해도 건져 올라왔다. 그렇게 따온 옥수수와 고구마는 할머니의 손에서 삶아졌다. (나는 지금도 그때 먹은 고구마와 옥수수의 맛과 똑같은 것을 찾지 못했다.) 할머니의 옥수수는 감칠맛이 대단했다. 옥수수보다 옥수수 국물이 더 맛있었던 지라 매번 옥수수 심 속에 있는 물까지 쪽-쪽 빨아먹었다. 고구마에는 먹을 때 거슬리는 심지나 뿌리가 전혀 없었다. 그냥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았다. 해바라기는 씨만 뽑아내서 햇빛에 며칠이고 평상에 널어 말려두셨다. 그리고 몇 번을 깨끗하게 씻어서 볶아주셨는데, 입안이 다 까질 정도로 해바라기씨만 먹었던 것 같다. 할머니 손에서 완성되는 음식들은 늘 그렇게 뭐든 맛있었다.




소울푸드2) 베지테리언의 오징어 만두.


할머니는 육고기를 드시지 않으신다. 그런 탓에 할머니는 만두를 하실 때도 본인이 먹을 오징어 만두와 가족들이 먹을 고기만두를 나누어 하셨다. 사실 오징어 만두는 본인이 드시려고 추가로 더 만드셨던 것인데, 어릴 적에는 그런 할머니가 먹는 오징어 만두가 그렇게 맛있었다. "이노무 기지배가 내가 먹을라고 만든 건데 다 먹고!"라고 매번 핀잔을 주시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남은 오징어 만두를 나에게 다 밀어주셨다. 대학시절 어느 날 학비를 벌겠다고 휴학을 하고 서울에 올라갔을 때도 먹고 싶은 건 없느냐.라고 질문을 하셨는데. "할머니, 할머니가 만든 오징어 만두가 먹고 싶어"라고 하자마자 "이놈의 기지배는 만들기 힘든 것만 맨날 먹고 싶다고 하네!"라고 하시곤 또 다음날 맛있게 만들어 주셨다. 지금도 먹고 싶다 우리 할머니의 오징어 만두.




소울푸드3) 숭늉은 왜 할아버지만 먹어?


지금이야 다 전기밥솥이지만 옛날 솥밥을 해먹던 할머니 집에서는 진짜 기깔나게 맛있는 누룽지가 매일 만들어졌다. 그걸 바삭하게 말려주시면 동생들과 나의 과자가 되었지만 대부분은 할아버지의 구수한 숭늉이 되었다. 근데 그 숭늉이 왜 그렇게 맛있어 보이는지... 밥상에서 숭늉 안 준다고 생떼를 부린 나의 흑역사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뭘 씹어 넘기는 게 힘들었던 할아버지는 매번 밥을 물에 말아 드시거나 숭늉을 드셨는데 결국에는 그 숭늉도 나에게 부어주시곤 했다. 첫째 손녀딸에게 가족들이 주신 사랑은 그래서 지금도 나에게 포동 포동 하게 남아있다.


할머니는 간 한번 보지 않고 늘 요리를 완성하셨다. 고기는 싫어하시면서도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맛깔나게 만들어 내셨다. 나는 늘 그렇게 요리를 해내는 할머니가 신기했다. 재료를 손수 키우고, 텃밭에서 따와서 요리를 하시고는 옆에서 구경하는 나에게 늘 간을 한 번 더 보라며 한 국자씩 입에 떠서 맛 보여주셨다. 상차림전에 가장 먼저 맛을 보는 시간은 할머니와 나, 둘만의 의식 같은 순간이었다. 할머니의 요리는 그렇게 아주 잔잔하게 사랑으로 나에게 베여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주신 사랑의 맛이 있어서,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성장기 시절을 건강하게 지나왔다. 그러니까 나의 소울푸드는 가족의 사랑이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할머니와의 기억까지 꺼내어보며, 오늘의 글쓰기에 유난히 감사해지는 하루다.




P.S : 소울푸드 1, 2, 3중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할머니의 오징어 만두를 뽑겠다!

그렇지만.. 만드는 게 너무 힘들 테니, 할머니에게 차마 먹고 싶다고 말은 못 하겠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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