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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Apr 18. 2022

싱글의 명절맞이.

언제나 프라이빗하길 우리 우리 설날!

법정공휴일,

연차랑 붙여 쓰면 개꿀,

내 안의 백수 본능을 끌어올려 시간을 마구마구 낭비하고 싶은 날,

넷플릭스 정주행 할까? 잠이나 퍼질러 잘까!

근데 조금 외롭기도 해,

나도 가족들이랑 복작복작하게 보내고 싶다.

나도 명절 음식 먹고 싶어.

상을 종류별로 펼쳐놓고 밥상 차려 먹었던 때가 언제였지?



매년 명절을 앞두면 하는 생각들이다. 오래간만에 찾는 자유와 휴가가 너무 기쁘다가도 온 친척들이 모여서 번잡하게 보내던 옛날의 명절이 그립기도 하다. 가족들이 모여서 복작하게 보내는 시간은 장점보다 단점이 많고, 웃음보다 늘 갈등이 많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보내는 게 더 쉽고, 더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보낸 시간이 마음에는 더 오래 남는다. 함께한 좋은 것들만 기억에 남고 아픈 것들은 쉬이 잊는다.


가족 이야기.


명절 이야기를 하자니, 시시콜콜한 가족사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 부모님은 아주 풍성하고 행복한 유년기를 나에게 선물해 주시고 내가 성인이 되면서 결별하셨다. 부모님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할 어린 시절부터 친척들과의 왕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친가는 진작에 발길을 끊어 남보다도 어색한 사이가 된 지 오래되었다. 나의 유년 시절과 휴학생 시절을 돌보아준 외가는 발길을 끊은 지 한참 되었어도 떠올리면 마음이 애잔하다. 오랜 시간 나와 함께한 지인들이나, 직장동료들은 그런 나의 명절이 자신들과는 매우 다르단 것을 늘 알고 있어. 명절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해서는 늘 굳이 질문이 없었지만. 명절이 지나고 나면 꼭 한 봉지씩 과일이나 명절 음식을 싸다 주었다. 그 덕에 나는 지인과 동료들 가족의 음식 솜씨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만나지 않았지만 그분들과 명절을 같이 보낸 기분이 들기도 했다.


엄마에게 새 가족이 생기면서 나의 명절은 조금 색이 달라졌다. 늘 명절을 혼자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유롭게 보냈는데, 새 가족이 생긴 엄마는 명절은 같이 보내지 못하더라도 꼭 명절 전후로는 시간을 같이 보내려고 하셨고, 명절에 하신 반찬과 음식을 집에 가득 싸오셨다. 늘 내가 좋아하는 수육은 빠지지 않았다.


어느 명절이었나. 엄마가 가족과 함께 지내시던 어느 명절에 집으로 초대를 해주셨다. 엄마는 남편과 고모(어머니 남편의 누나분) 이렇게 세 분이서 함께 지내시는데, 그동안 내가 계속 아버지와 명절을 같이 보내는 줄 알아 초대할 생각을 못 하셨다는 것이다. 진작에 불러서 밥을 함께 먹었어야 했는데 이제야 불러 미안하다고 고모님이 말씀하셨다. 괜히 마음이 뭉클했다. 엄마는 그저 옆에서 반려견 꼬마를 쓰다듬고 계셨다. 함께 같이 명절에 몇 번 밥을 먹었고, 엄마가 가끔 싸주시는 반찬에서는 엄마 맛보다 고모님의 맛이 더 날 때도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식사로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떡국은 싫지만, 떡국 끓여주는 사람은 좋아.


명절 하면 정말 음식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나는 '떡국'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물에 빠진 '떡'이 싫고 그걸 국물과 같이 떠먹는 것 자체가 그냥 싫다. 나에게 떡국을 끓여주는 사람들은 늘 나에게 끓여주기 전에 "떡국 좋아해?"라고 물어보는데, 나는 매번 따뜻한 그들의 의도를 읽지 못하고 "아니 난 떡국 싫어!"라고 이야기하는 실수를 반복한다ㅠㅠ


어느 날은 직장의 보스가 똑같은 질문을 건네셨다. 역시 그날도 왜 물어보시는지 그 의도를 읽지 못했고 보스에게 내가 왜 떡국을 별로 안 좋아하는지 신나서 이야기를 했는데, 그날 점심에 보스는 미리 준비하신 떡국 재료로 식당에서 손수 떡국을 끓이고 계셨다. 그녀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나에게 그릇에 떡보다 물만두를 가득 담아서 "자, 이건 네 거 데이~ 떡 싫어하니깐 만두 엄청 넣었디!"라며 건네주셨다. 세상에 이런 보스가 있을까. 그날 나는 떡국 한 그릇을 모두 비웠다.


얼마 전 같은 질문을 똑같이 했다가 단박에 눈치 없는 나의 '떡국 싫어 송'을 한 번 더 들은 사람이 있다. 바로 이제 만난 지 1년이 되는 나의 짝꿍. 결국 그는 광주식 떡국 레시피로 떡국상을 차려주었는데, 그때 알았다. 나의 떡국 입맛은 광주 입맛이었구나. 탕에 가까운 떡국보다는 걸 쭈욱 하게 양념이 자작~하게 떡에 배인 그의 레시피가 나에게 딱 맞았다. 결국 올해 설까지 그의 두 번째 떡국까지 완벽하게 비워냈다. 매번 똥 손이라고 놀리는 나의 놀림에도 굴하지 않고 미역국부터 떡국까지 끊임없는 요리를 해내는 그에게 너무 고맙다. 이 정도면 앞으로 요리는 짝꿍이 담당해도 될 것 같아서 앞으로는 똥 손이라고 놀리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니 결론은, 싫어하는 떡국도 만들어주는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다 보니 어느 순간 괜찮은 음식이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음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이 중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이제 앞으로는 누가 떡국 좋아해?라고 물어보면 좋아해!....라고 까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싫다고 말하진 못할 것 같다.


설날이, 추석이 크리스마스보다 더 프라이빗하길!


글을 쓰면서 뿔뿔이 흩어져 지내는 나의 가족들을 다시 생각한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영혼인 나의 아버지와 남동생. 새 가족을 이룬 나의 엄마. 츤데레 엄마의 남편과 고모님. 그리고 나의 짝꿍과 그의 가족들까지. 글을 쓰면서 그들을 한 명 한 명에 대한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누군가를 사랑을 하면서 나를 사랑해 주었던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명절을 계기로 내 주변의 사람들을 이렇게 한 번씩이라도 생각할 수 있다면.... 명절은 크리스마스보다, 밸런타인데이보다, 화이트데이보다 더더 프라이빗 한 날이 아닐까? 설날이, 추석이, 앞으로는 크리스마스보다 더 즐거운 축제의 날이 되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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