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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Jul 18. 2022

100

<인간극장>이라는 ‘휴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있다. KBS1 TV에서 무려 22년째 방송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  끄트머리에 등장하는 “이 프로그램은 여러분의 시청료로 만들어졌습니다.”라는 자막이 거부감 없이 읽히는 드문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나의 개인적인 생각과 취향이다)


올해 2월 말에 인간극장에서 다룬 주인공은 1923년생 할아버지였다. 올해 우리나이로 물경 100세가 되신 분이다.


주인공 할아버지의 일상은 단조롭다. 나의 일상도 카메라에 담았다가 편집해서 펼쳐놓으면 단조롭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100세 주인공의 일상이 단조로운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눈을 열고, 귀를 열고 살펴보면 삶의 지혜라 할 만한 내용이 꽤 많았다.


PD-“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장수의 비결을 묻는 질문)

할아버지-특별한 것은 없다면서, 세 가지 정도를 말한다. 하나,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둘, 소식한다. 고기가 좋다고 많이 먹거나, 좋아하는 음식이 나왔다고 과식하지 않는다. 늘 먹는 만큼만 먹는다. 셋, 좋다는 것을 쫓아가며 하지는 않지만, 나쁘다는 것은 가급적 피하려고 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100세 할아버지는 귀도 어둡지 않고 눈도 밝은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에서 간단한 체조를 하고, 활쏘기를 포함해서 운동을 꾸준히 한다.


나와 비교해 보니 ‘소식한다’는 항목을 제외하고는 해당사항이 없다. 과식하지 않는 것도 그나마 최근에 생긴 습관에 불과하다. 그런 내가 바라보기엔 ‘100세까지 살기는 아무나 도달하는 경지가 아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별칭이 생긴다. 육십을 이순이라 하고, 칠십을 고희라고 한다. 77세는 희수(喜壽)라고 하고, 80세는 팔순이라고 한다. 89세는 망구(望九)라 하고 99세는 백수(白壽)라고 한다. 모두 다 옛날에는 드문 일이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결과일 게다.



무엇 때문에 느닷없이 인간극장을 들먹이고, 나이에 따른 별칭을 늘어놓았을까. 다른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겠지만, 이 글은 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이래 100번째 글이다.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려고 횡설수설하는 거야’ 했던 궁금증이 일거에 풀리지 않는가? ㅎㅎㅎ


작년 1월 브런치를 시작할 때 나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내 두 번째 책에 실을 원고를 모으기 위한 것이었다. 그 목적은 브런치를 시작한 지 4개월여 만에 달성했다. 뒤집어 말하면 나는 그 때 이후 브런치에 글을 쓰는 목적을 잃어버렸다. 목적 달성 후에 체험하는 욕망의 진공상태. 그럼에도 꼬박꼬박 매주 한두 편의 글을 쓰고, 브런치에 게재했다. 자평하자면 이런 글쓰기였다. 


아주 드물게 스스로 칭찬할 만한 글이 없지는 않았으나(이런 자아도취도 없었다면 100번을 채우지 못 했을 것이다. 하하하), 낯 뜨거운 글은 그 몇 배는 되었을 것이다. 글을 쓴다면서 적어도 오타와 비문은 없어야지 하는 생각에 나름 노력을 했으나, 그 간단한 오류를 피하느라  다른 실수를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빨리 써내려가는 재미에 정신이 팔려 맥락에 문제가 있는 글 또한 있었을 것이다. 주제의 동어반복, 단어의 동어반복, 표현의 동어반복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능력이 되지 않아 적잖이 동어반복을 늘어놓기도 했다.


무식이 용감하다는 말을 싫어하지만, 살아가다 한번쯤 그 카드를 쓸 수 있다면 지금이 가장 좋을 때가 아닐까 싶다.


세 번째 책을 쓸 가능성은 난망하고, 글쓰기 훈련을 피나게 해서 전도유망한 작가가 될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의 지가(紙價)를 올릴 베스트셀러를 써서 큰돈을 움켜쥘 것도 아닌데... 이런 생각을 억누르며 수십 편의 글을 써서 브런치에 올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첫손에 꼽을 이유는 분명하다. 쓰는 즐거움이 컸다. 똑같은 시간을 다른 일에 할애해서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을 얻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쓰는 시간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도 즐거웠다. 나의 삶을, 그리고 또 다른 이의 삶을 관찰하고 언젠가 그 관찰을 글로 옮기기 위해 틈나는 대로 메모하는 시간도 즐거웠다. 브런치에 글을 게재한 후에 느끼는 피드백도 나름 흥미로웠다. SNS의 세계를 몰랐기 때문에 더 그랬을 수도 있겠다.


춘천의 한 카페 실내 장식


이제 자찬(自讚) 같기도 하고, 자학(自虐) 같기도 한 신데렐로의 브런치 100번째 글을 정리할 시간이다.


<인간극장>의 주인공 할아버지가 100년을 사시는 동안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었겠는가. 기쁜 일이 있었다면 후회스런 일도 있었을 것이다. 만족스러운 순간만큼 안타까운 시간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쌓인 시간들이 모여 100년을 이뤘을 것이다. 


나의 글쓰기도 그와 같기를 희망한다.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그리하여 적어도 글을 준비하고 쓰는 동안은 나 자신이 즐겁기를, 그리고 부족한 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희망과 위안, 그리고 재미를 줄 수 있기를. 


다음 101번째 글부터 시작해서 다시 100번째 글을 쓰게 될 때 자책은 한 가지라도 줄고, 만족할 일은 다만 한 가지라도 늘어나기를. 


끝으로 신데렐로의 브런치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게 이 기회를 빌려 감사를 드린다. 그분들의 관심과 격려 덕에 엄청난 숫자 100번이 있게 되었다. 


*대문 사진 : 대전 예술의 전당 앞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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