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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Jul 21. 2022

승리는 가장 끈질긴 자의 것이다

Victory belongs to the most tenacious.

100번째 글을 올리고 얼마 안 지나서 아주 가까운 후배의 전화가 왔다.


후배-오늘 글 제목 보고 골프 얘기인 줄 알았어요. 얼마 전 선배가 골프 잘 쳤다기에 그 이야기인 줄 알았지.

신데렐로-핫핫핫. 골프? 100을 보고 골프를 떠올려? 이 사람이 지금.


그런데 100이라는 숫자는 오해를 불러올 충분한 여지가 있었다. 지난달에 골프를 치고 난 후 그 후배와 통화할 때 내가 “어제 잘 쳤다, 리얼(real)로 100개 쳤다”고 했던 게 생각이 났다. 72타를 기준으로, 100타(*)면 +28타인데 그걸 갖고 잘 쳤느니 못 쳤느니 하는 수준이니 골프 얘기는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지만... 나의 골프 이야기는 이쯤 하고.



지난 달 하순 LPGA 메이저 대회 가운데 하나인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대회(이름이 몹시 길다)에서 우리나라의 전인지 선수가 우승을 했다. 전인지는 LPGA에 정식 데뷔하기도 전에 메이저 대회인 US 위민스 오픈에서 우승했다.(2015년) 불과 스물 한 살이었다. 


데뷔하던 해(2016)에는 또 다른 메이저인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했다. 처음 두 번의 우승이 모두 메이저였다. 그리고 한동안 우승이 없다가 2년 넘게 지나 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했다.(2018)


이후  무려 3년이 넘는 동안 우승 소식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오래 지난 후 다시 전성기의 실력을 보이거나, 우승을 하는 예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나이 먹으면서 체력과 집중력은 떨어지는데, 새로운 선수들은 끊임없이 등장한다. 게다가 자신감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우리라. 피지컬, 멘털 모두 쉽지 않다.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강자만이 인정받는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상황에서 전인지는 무려 3년 8개월 만에 다시 우승을 했다. 우승하던 순간의 TV 중계를 하마터면 놓칠 뻔 했다. 새벽에 중계를 보는 도중 앞서 나가던 전인지가 미국 선수에게 역전당하는 것을 보고 안 되리라고 생각해서 TV를 껐다. 


그러다가 내심 궁금해서 끝날 시간쯤 됐을 때 다시 TV를 켰는데, 바로 그때 전인지가 마지막 챔피언 퍼트(우승을 확정짓기 위해서 하는 퍼팅)를 하고 있었다.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 하지만 그 가까운 거리에서 퍼팅을 실패해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좌절을 맛보았던가. 전인지의 공은 구르기 시작했고 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두 팔을 번쩍 든 전인지. 


그렇게 전인지는 우승을 했고, 인터뷰를 하면서 울먹였다. “자신의 팬들은 자신이 어떻게 하든(무엇을 하든) 항상 믿어주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먼저 번 우승 후 거의 4년, 그동안 전인지는 먼 길을 쉬지 않고 걸어왔다. 가까운 팬들이 아니라면 그 과정이 어땠는지 정확히 모른다. 나도 그 가운데 하나고. 그녀의 절실함은 생각하지 않고 “안 되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던 것이 무언가 미안하게 느껴졌다.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 우승컵에 입 맞추는 전인지. (사진 출처 : 전인지 인스타그램)


그러면서 얼마 전 테니스 경기에서 본 문구가 떠올랐다. 같은 종목은 아니지만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Victory belongs to the most tenacious.”(**)

우리말로 옮기면 대략 이러하다. “승리는 가장 끈질긴 자의 것이다.”(***)


전인지는 마지막날 경기에서 역전을 허용한 후 틀림없이 짧게나마 자포자기 했을 듯하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물고 늘어져서 승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테니스 경기장에 써 있던 글귀와 잘 들어맞는 한판 승부였다.


골프 용품업체에서 홍보용으로 세운 거대한 골퍼 조각상. 대문 사진의 부분 확대. 대전 컨벤션센터 앞 광장에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나와 관계없는 듯하던 “Victory belongs to the most tenacious.”를 되뇌다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내가 아직 잘 할 수 있는 것도 꽤 있겠구나...


그 중 하나가 브런치에 글쓰기다. 브런치에 쓰는 글도 조금 더 잘 해 보리라. 좋은 글은 머리와 가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엉덩이와 손가락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의지를 다진다고 쓴 문장이 속(俗)스러움을 넘어 망언처럼도 느껴지지만...) 


골프 100타 깨기를 너무 일찍 포기한 것은 아닐까. 다들 휴가가고 쉬면서 건강 챙기는 한여름에 전의를 불태우며 운동할 생각을 하다니 무언가 거꾸로 된 느낌이지만. 갈비뼈 부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사족 : 전인지가 오늘(7/21.목요일)부터 6년 전에 우승했던 메이저대회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이름이 조금 바뀌었다)에 참가한다. 생수로 유명한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린다. 내가 응원하는 골프 선수 박민지도 참가한다. 아마도 이런 사람에게 승리가 돌아갈 것이다. “Victory belongs to the most tenacious.”


*100은 대부분의 경우 좋은 예로 쓰이지만, 골프에서 만큼은 드물게 안 좋은 의미로 쓰인다. 나처럼 100타 언저리를 기록하는 시원치 않은 주말골퍼들을 일러 ‘백돌이’라고 하는 게 아주 좋은 예다. 

**지난 5~6월 프랑스 오픈 테니스 경기가 열렸던 파리 롤랑 가로스 코트 1층과 2층 사이에 쓰여 있던 글귀다. 인터넷에서는 같은 내용으로 끝 단어만 바뀐 Victory belongs to the most persevering.이라는 문장이 나폴레옹의 말이라고 나온다. 

***영어 문장을 네이버 자동번역으로 돌리니 이런 번역이 떴다. 내 생각과 같아서 망설이지 않고 끌어왔다. “승리는 가장 끈기있는 자에게 돌아간다” 정도가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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