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두 번째 날
이탈리아에 도착한 이후 내내 비가 왔다. 하늘은 흐렸고 한 번씩 번쩍이는 번개가 우중충한 여백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오늘은 비로소 맑다.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는 내내 창밖을 보았다. 맑은 날씨에는 꼭 바깥바람을 쐬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을 외면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밀라노에 갈까? 화요일이니 데젠자노 아침 시장을 다녀올까?’
밀라노는 너무 멀고, 데젠자노 아침 시장은 나갈 준비를 마치고 나니 폐장할 시간에 가까워졌다. 그렇게 고안한 목적지는 베로나였다. 멀지 않은 곳이지만, 사는 곳과 확연하게 다른 매력을 가진 도시다. 그렇기 때문에 늘 흥미롭다. 버스를 타고 1시간 20분 정도를 달려 베로나에 도착했다. 맑은 하늘 아래 아레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존재감을 풍겼다. 버스 안에서 들려보면 좋을듯한 빈티지 가게 몇 곳을 지도에 심었다. 하지만 막상 버스에서 내리고 나니 지도를 열어 보기보다는 익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걸음을 옮기며 지도를 확인해 보니, 가게는 내가 향하는 방향 반대편에 있었다.
‘다음에 가보지.’
‘늘 익숙한 곳에만 가려는 습성이 있어. 그게 좋을 리가 없어.’ 재미 삼아 만났던 사주 풀이 아저씨가 던진 말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일상 속에서 콤플렉스 역할을 했다. 또다시 익숙한 거리를 걷는 자기 모습을 두고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익숙한 동네를 벗어나 다른 도시에 왔잖아. 이만하면 오늘은 충분해.’라고 혼잣말을 하며 익히 새긴 길로 걷기 시작했다. 그나마 새로운 경험을 더하기 위해 이전에는 들어가 보지 않은 옷 가게에 한 번씩 머물기도 했다. 옷 구경을 어느 정도 마치고 갈증을 해소할 겸,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까지 무겁게 들고 온 노트북과 아이패드를 알차게 활용하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에 가야겠다.
이탈리아의 카페는 우리나라의 카페와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카페는 음료를 판매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공간 자체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것에 반해, 이탈리아에서의 카페는 순수하게 잘 내려진 커피를 ‘마시기’ 위한 공간 같다. 카페에서 노트북을 열고 몇 시간이며 볼일을 보는 사람은 드물다. 이전에 이탈리아 대학생들과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한국의 카페 문화를 설명해 주며 내가 반복한 키워드를 뽑자면 아무래도 ‘카공’이다. 그와 비롯하여 한국의 카페에서는 음료를 마시는 일뿐만 아니라, 긴 대화를 나누고, 독서를 하거나 더 많은 것들을 한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흥미로워했다. 나는 친구들의 반응이 더 흥미로웠다.
“그럼, 너네는 시험 기간에 공부 어디에서 해?”
“도서관.”
아! 그렇구나. 맞아 도서관이 있지. 명료한 대답이었다.
여하튼. 이런 이유로 베로나에서 ‘노트북 하기 좋은 카페’를 찾기 위해 현지 친구 3명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친구들은 모두 입을 모아 스타벅스를 추천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스타벅스였는데, 아무래도 베로나에 대학교가 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많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새로운 것들을 선호하기 때문에. 외국의 것은 새롭기 마련이기 때문에. 이곳에도 결국 스타벅스가 들어서고 말았다. ‘딱 바라던 분위기네.’ 웅성이는 사람들로 가득 찬 도서관. 심지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가 뒤섞인 음성은 백색소음의 역할을 해준다. 카페에 들어오고 대충 어느 자리에 앉으면 좋을지 훑어보는 자리 탐색전부터 시작했다. 원하는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주문하러 가려던 찰나 ‘아차차. 여기는 한국이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어 재빨리 가방을 다시 집어 들었다. 각종 전자기기가 들은 전 재산과도 같은 가방이 커피를 주문하고 돌아오는 사이 사라졌을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음료를 주문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많았다. 차례를 기다리며 자연스럽게 알록달록한 디저트에 눈독을 들이고, 베로나 스타벅스의 굿즈를 구경했다. 차례가 왔다. 스타벅스 모자를 눌러쓴 직원은 인사 대신 한숨으로 차례를 맞아줬다. 어떤 메뉴를 원하는지 물어보는 대신에, 고개를 기울이며 눈을 응시할 뿐이었다.
“브라운 슈가 카페라테 그란데 사이즈로 한 잔 부탁해.”
나는 멋쩍게 웃으며 원하는 음료를 주문했다. 스타벅스는 늘 주문자의 이름을 컵에 적고, 주문한 음료가 나오면 이름을 불러준다. 이탈리아 역시 마찬가지다.
“이름은?”
‘유성’이라고 말하려다, 못 알아들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Y-O-O(유)’라고 대답했다. 아마 일생에 한 번 보고 지나칠 사람인데 내 이름을 ‘유’로 알던, ‘킴’로 알던, 방귀로 알던. 상관없다. 한껏 축약해서 말한 이름인데, 이마저도 직원에게는 생소했는지 직원은 얌전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결제를 마쳤다.
영수증이 힘없이 포스 너머로 떨어졌다. 그 힘없는 영수증은 직원의 짧은 인사도 없이 외롭게, 그리고 씁쓸하게 내 앞으로 하강했다. 이탈리아에서 손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영수증 혹은 잔돈을 던져주는 게 얼마나 무례한 서비스인지 알고 있기에 기분이 상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분이 상했다는 표현보다는 ‘어이없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옆에서 음료를 기다리며 나도 모르게 해당 직원이 다른 손님에게는 어떤 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지켜보게 됐다. 뒤에 서있던 이탈리아 사람은 전혀 다른 서비스를 받았다. ‘저 여자 저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네!’ 직원은 밝은 인사와 따뜻한 미소로 손님을 응대했고, 결제를 마친 후 영수증을 직접 건네주었다.
‘흠…. 다음 사람한테는 어떻게 주나 보자.’
그렇게 옆쪽에 서서 음료를 기다리는 동안 직원이 다섯 손님 정도를 응대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감상평 : 속상해요.
어쩌면 파도처럼 밀려오는 손님들 탓에 내내 숨 쉴 틈을 찾다가 마침 나를 만났을 때 잠시 긴장을 풀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려는 마음 반쪽. ‘잠시만. 이거 인종차별인가?’ 생각하는 마음 반쪽. 위와 같은 상황이 생기면 (그러니까 대놓고 인종차별을 당하는 상황이 아닌, 은근하게 기분 상하는 행동. 근데 그 행동을 나에게만 하는 상황) 이전에는 쉽게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반된 의견을 내는 반쪽짜리 마음끼리 한차례 대립한다. 대개 전자에 속하는 반쪽짜리 생각이 상황을 정리한다. 소사에는 신경도, 감정도 소비하지 않는 털털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현실의 나는 그런 상황을 마주하면 순간적으로 당장 가서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입과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뭐라고 따져 물어야 할지 모호하기 때문이다. ‘너! 왜 나한테만 그랬니?’라고 묻는 건 바보 같은 질문이다. 아니라고 하면 그만. 본전도 못 찾을 논쟁이다.
이탈리아에서 지낸 시간을 도합 하면 2년쯤 되려나. 그동안 재밌는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아마 경험에 살이 붙으며 변화는 계속되겠지. 처음에는 난생처음 인종차별적인 상황을 겪으면 눈물부터 차올랐다. 기가 죽어 사건을 기점으로 남은 하루는 무기력하게 보냈다. 그러다 이탈리아어 수준이 어느 정도 일상 소통을 할 수 있는 단계까지 성장하자 전투력도 함께 상승했다. 길 가며 ‘곤니찌와 칭챙총’이라고 장난치며 지나가는 고등학생(으로 추정됨)을 그냥 지나쳐 보내지 않고 불러 세워 ‘부모님에게 네 교육의 심각성을 알려야겠으니, 네 부모님 전화번호를 달라.’며 겁을 주기도 했었다. 그렇게 소심한 전투를 몇 번 벌이고 나자, 같은 눈높이로 싸울 게 아니라 지성인답게 흥분하지 않고 그들의 무례함, 혹은 의도하지 않은 실수를 친절하게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차분한 대처로 일관했었다. 그러다 요즘은 그냥 아무 반응도 하고 싶지 않고, 최대한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다. 물론 정말 아무렇지 않기 때문은 아니다. 많은 깨달음이 뭉쳐 우선 그렇게 대처하기로 결론지었다. 종종 오늘처럼 따지고 싶은 것들을 삼키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잘 안다. 이렇게 삼킨 것들이 어느 컨디션 안 좋은 날, 명치에 콱 얹혀 결국 그동안 소화되지 않은 서러움을 전부 게워 내고야 마는 날이 올 거라는 걸.
이전에는 서러움을 삼키기는커녕 입에 넣고 맛보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눈물로 감정을 뱉어내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기분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의미 없는 순간은 빠르게 흘려보낼 줄 알고, 찰나의 기분을 이겨내는 법을 배운 거 같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여행에서 그칠 순간들이 나에게는 일상이 되어 삶에 스며든다. ‘외국인이 있는 다문화 사회’에서 ‘외국인’의 역할을 수행하며, 그 무게를 안고 지낸다. 그 경험 안에서 나만의 성장통을 겪으며 사회생활을 배우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이 꼭꼭 삼켜도 결국 무엇이든 소화하고 배출할 수 있는 강철 멘탈. 아니 강철 위장의 소유자로 거듭나기 위한 수련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최강 정신력. 아니 최강 위장의 소유자는 내가 되는, 그런 수련의 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