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세계든 아는 세계든 혼자 뛰어들기도 하는 용기
세상이 코로나의 이전과 이후로 나뉘듯, 비행도 코로나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여행이 우리를 떠나고 비행기도 멈췄다. 동시에 전 세계 항공사의 채용 문도 굳게 닫혔다. 이런 와중에 나는 운이 좋게(?) 2020년, 코로나 시국의 신입 객실 승무원이 되었다.
2020년 코시국 신입승무원. 다시 말하자면, 이전에 어느 항공사에서도 전혀 경험할 수 없는 채용 과정과 훈련 과정(ex: 마스크 끼고 면접 보기, 입사 후 마스크 끼고 Make up & Hair-do 배우기, 실습 비행 손님 없는 텅 빈 비행기에서 해보기, 훈련 중 코로나로 일시 중단 등…)을 몸소 체득해온 전무후무한 코시국 버전 객실 승무원이다.
나는 승무원 되면 전 세계의 호텔에서 동료들과 맥주도 마시고, 운동도 할 줄 알았다. 그리고 승무원 되면 라면 사러 집 근처 편의점 가듯 일본 갈 줄 알았고, 승무원 되면 퍼듐(객실 승무원의 해외 체류 시 생활비)으로 13월의 월급쯤은 만들 줄 알았다. 실제로 우리 엄마는 “어차피 ~ 너 승무원 됐으니까~ 외국 비행 나갔을 때 사와라~” 하고 안 사둔 영양제만 5종이다. 그렇게 승무원 되면, 승무원 되면...
세상에 알려진 ‘승무원 되면’ 경험할 수 있는 목록들은 이미 나에겐 선배님들의 LATTE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요즘 말로 하면 딱 이 말이다. 승무원 로망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참 운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취업을 했어도 근무 시간보다 휴무 시간이 더 많았다. 취업을 했었는데요. 안 했었어요.
"이번 신입은 참 운이 좋아요."
첫 비행을 앞둔 이른 새벽의 브리핑실에서 사무장님의 말이다. “코로나 때문에 서비스가 줄어서 우리 신입은 운이 좋게 업무를 더 쉽게, 천천히 익힐 수 있을 거예요. 남들은 울면서 배운답니다. 호호” 속물인 나는 와! 행운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실수 연발의 첫 비행 날이었지만, 어쩐지 매 순간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만약 당시 실수투성이 막내 크루였던 내가 첫 비행 만석 국제선 크루였다면…? ( 이 글을 천국에서 쓰고 있었겠지…)
사실, 요즘 세상에 “제 직업은 승무원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측은한 눈빛 한번 안 받아본 객실 승무원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한 때는 나도 비행 못 가는 내 상황을 스스로 안타깝게 여겼으니까. 그런데 이대로 라면 또 뭐 어떤가?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인생의 박자와 속도가 있듯, 지금 삶의 박자는 ‘안단테 (느리게)’에 맞춰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바리스타, 베이킹, 한식 조리 등등 자격증 챌린지 만랩이 되어가는 크루, 비행에 치여 뒤로 밀어 뒀던 외국어 공부에 전념인 크루.
멈춰버린 비행에 주저앉아 있기보다 모르는 세계든 아는 세계든 혼자 뛰어들기도 하는 용기.
우리 모두는 결국, 그 용기를 가지고 있는, ‘행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