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와 통합이 바탕이 된 공동체주의의 실천과 노력
민주주의는 아테네의 도시국가에서 꽃피었다. 자유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에서 시작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로마의 도시국가 연합은 공화정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제도가 만들어졌고 그리스의 민주제도를 받아들이며 대제국으로 발전하였다. 이후 로마는 카이사르가 공화정의 핵심인 원로원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종신독재관의 지위에 스스로 올라 이를 옥타비아누스가 이어받았다. 훗날 카이사르의 양아들인 옥타비아누스를 황제로 칭하게 되었고 이는 경쟁자인 페르시아제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후 로마제국은 동로마가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비잔틴제국이 멸망하는 15세기까지 공화정의 전통을 명목상이지만 유지할 수 있었다. 훗날 이는 민주주의 제도의 기반이 되었다.
18세기 산업혁명과 더불어 일어난 시민혁명이 현대 민주주의의 시작이 되고 대의 민주주의 체계를 만든다. 카톨릭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된 종교개혁은 자유와 평등에 대한 민주주의의 새로운 사상적 기초와 환경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자본에 의한 자본적 약탈은 민주주의의 이름 아래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하게 하였다. 이것이 공산주의의 시작이다. 그러나 그리스나 로마의 위대함은 중장보병과 같은 시민의 군역에 대한 의무와 함께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개방적 정치제도를 통해 제국을 운영했다는 사실이고 이러한 정신은 현대 민주주의의 가치와 명분이 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이상이 현실에서 완전히 실현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는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이고 이러한 대의 민주주의는 특정 기득권집단의 전유물이 될 위험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인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국가의 형태를 갖추는 순간부터 정치권력을 집단화하여 왔다. 그리고 그러한 기득권은 세습되어 이어져 온 것이다. 사회계급이 와해되고 계층개념이 도입된 현대의 서구 유럽의 경우조차 계급에 비유될 만큼의 정치적 기득권이 지속되어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경제적 이익집단과 연계되어 세습되어지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민주주의 가치의 실천은 개방적 정치권력의 사회적 완성에 의하여 실현될 수 있다. 개방적 정치권력은 계층적 폐쇄구조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민주적 정치구조는 주요 정당이 사회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앙당 중심의 권력구조, 공천권의 독점, 국민에게서 괴리된 당원 구조, 정당권력의 사유화, 패거리 정치의 답습 등 과거 군사정권시절의 기득권 정당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정당이 존재가 사회적 편 가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당을 옮기는 행위가 정치인이든 일반인이든 자유로울 수가 있어야 하고 그 기준이 정책의 방향과 사람들이 자신과 뜻을 함께하고 있느냐라는 사실이 기준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만큼 다양한 형태의 정당이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 구성원인 당원이 중심이 되고 당원은 국민의 다수가 참여할 수 있는 정당구조가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결국 개방적 정치권력의 완성은 청년, 여성, 소외계층, 다양한 사회 분야 등이 정계진출을 함에 있어 보이지 않는 벽을 찾아내어 허무는 것이다.
정치는 국민에게 특별한 영역으로 다가와서는 안 된다. 인간은 모든 사회생활 자체가 정치적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이고 정치는 국민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를 한다는 것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삶의 최고의 봉사로 인식될 수 있는 수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정치인은 당연히 도덕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인에게 지나친 도덕적 수준에 대한 요구도 결국은 그들의 권력과 위치를 강화시키는 이유가 된다. 도덕적 수준의 형식을 만들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수준의 일반적인 사람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국민의 의식이 변해야 하며 나를 대신하여 권력을 위임한다는 합리적인 기준이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이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길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었다. 유럽의 몇몇 국가는 블록체인기술을 활용한 직접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다. 대의 민주주의는 제도 자체가 정치를 특별한 영역으로 특정지우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이것은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대의민주주의를 할 수밖에 없는 주요한 이유는 시간적, 공간적, 경제적 제약을 이유로 든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이를 일시에 허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는 적절하게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복잡한 사회구조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대 사회에서 선거는 여전히 효율적인 정치제도로 존재한다. 국정 전반과 정책을 수립하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국가운영의 효율성은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정책에 있어 정치세력 간 첨예한 대립이 있는 경우 직접 국민에게 묻고 결정하는 제도가 보다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하는 분명한 방향이 되어야 한다.
전쟁 등의 긴급한 상황이 아니면 현대사회는 빠른 결정을 하여야 할 이유는 없다. 설사 그러한 결정이 필요한 경우도 사후의 결과에 대해서 국민에게 직접 묻는 사후국민투표를 하는 방안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국민에게 의견을 묻는 경우 충분한 시간을 통해 이를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야 하며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인내를 필요로 한다. 최근 이루어진 영국에서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기 위해 실시된 블렉시트의 찬반국민투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영국이 2016년 갑작스럽게 실시한 국민투표로 우여곡절 끝에 최종적으로 유럽공동체에서 탈퇴를 결정하며 세계의 관심이 이에 집중되고 있다.
영국의 블렉시트는 지리환경과 역사적 맥락에서 기인한다. 영국은 강대한 해군을 보유하여 유럽해상무역을 독점하던 해양패권국가였다. 19세기 공업혁명 시기 증기동력에 의한 기차와 철도의 출현으로 유럽대륙 역시 급속한 경제부흥이 일어나 전통적인 대륙 국가들도 영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미국, 러시아, 독일 등이 새로 신흥강국으로 부각되면서 영국의 해양패권의 쇠락은 필연이 되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파운드화는 기축통화의 지위를 미국의 달러화에 넘기게 되었다.
영국은 서유럽의 정치적인 통일을 막으려 하였다. 그리고 독일과 프랑스에 대한 미국의 역할에 균형을 맞추며 소련이 접근하는 것을 견제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영국은 독일, 프랑스, 소련 사이의 관계에서 영국의 역할을 강화하려 하였지만 독일과 프랑스가 미국과 직접적인 접촉을 하였고 이에 대한 절충적인 입장에서 유럽연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후 영국은 계속해서 유럽의 정치적 통일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했다. 영국이 1973년 유럽연합에 돌연 가입한 이유는 미국이 월남 전쟁에서 좌절과 소련의 확장, 닉슨의 중공과의 관계개선, 일본의 중국 국교 정상화 등 세계정세의 급변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소련이 해체되어 독일이 재통일되자 유럽연합에서 영국의 역할이 작아져 탈퇴할 생각을 하게 된다.
영국은 전략적 차원에서 세계의 영향력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의 탈퇴는 충격과 연쇄반응의 가능성으로 유럽연합의 붕괴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블렉시트(Blexit)는 ‘british Exit’를 의미하는 것으로 2016년 6월 23일에 투표로 유럽연합에서 탈퇴를 결정했다. 영국의 유럽연합탈퇴는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진 것인데 2012년 그리스의 금융위기로 지원을 두고 불만이 생기던 중 보수당과 노동당의 총선을 앞두고 보수당이 선거승리를 위해 모험적인 정책을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국민들이 찬성한 이유는 유럽연합에 지출하는 비용이 과도하고 영국보다 빈곤한 국가들의 농업보조비로 지출되는 것에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그리고 지출에 비해 영국의 발언권이 너무 낮았던 것이다. 더욱이 영국의 수출 중 이윤의 44%가 유럽연합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중동의 정치적 불안은 이를 가중시켜 이민자들과 슬라브계의 370만이나 되는 동구권이민자들에게 취업기회를 빼앗겨 혐오를 표시하고 있었던 중이었다. 또한 아일랜드와의 갈등경문제와 이민문제, 스코틀랜드의 독립움직임과 국내외의 여러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추진되었다.
유럽연합의 최우선 목적은 경제적인 협력과 연합으로 단일시장을 구축하려 한 것으로 자유로운 유통이 목적이다. 대내적인 시장개방과 자원의 공동사용을 통해 대외적으로는 시장경쟁력의 확장에 있다. 점차 화폐의 통일까지로 진전하여 회원국 사이의 자유유통이 실현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은 과거에 통치하던 식민연맹체를 구성하고 있어 유럽외의 다른 나라들과의 무역을 제한하는 유럽연합의 법규에도 불만을 가진다. 이로 인해 이들 국가들과 상호우대조약의 지속에도 장애요인이 되었다. 캐나다, 인도, 남아공, 호주 등 연합국가들이 APEC이나 ASIAN등의 경제체제로 편입되어 곤란한 입장에 처하기도 하였다.
미국도 전략을 선회하여 영국을 통해 조정해오던 그 동안의 전략을 수정하였다. 유럽연합은 미국의 독점적 패권의 중요한 협력자로 유럽연합의 후퇴는 미국의 전략에도 큰 차질을 빗게 될 것이다. 미국의 전략은 현재 유럽연합을 이용하여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것이고 향후 중국을 동시에 견제해야 한다. 미국으로서는 유럽이 분열된다면 어려운 문제가 증가하는 것으로 러시아와 중국은 영국의 이탈을 전략적 기회로 보고 있다. 더구나 영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인 나토에서의 탈퇴로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영국은 여전히 세계의 금융 중심지이고 미국의 중요한 동맹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인내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영국의 경우를 통해 알 수 있다. 영국이 실시한 국민투표는 자국중심주의의 정치적 이유와 국제적 이해관계, 그리고 수천 년 동안 반복되어온 유럽갈등의 통합 사이의 대결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결 구도를 정확히 인지하고 국민투표가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우선이 되었고 이에 대한 결과로 블렉시트는 결국 이루어진 것이다. 이 또한 폐쇄적인 정치구조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유럽은 아직도 전통적인 귀족적 기득권이 인정되는 사회이다. 그들이 온전히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것은 정치권의 폐쇄적 구조를 허문다는 것이 시대적 요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야 하고 우리의 보편적 모습으로 세계질서구축에 참여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