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와 통합이 바탕이 된 공동체주의의 실천과 노력
역사적으로 정치는 사실상 사람을 다스리는 수단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는 현대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진 민주국가들은 민주주의를 현대 최고의 사회제도로 자리 잡았다고 자신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선거와 시민참여와 같은 형식적 제도에 머무르고 있을 따름이다. 정치권력이 국민을 다룬다는 근본적인 접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정치가 권력의 집단화를 이루는 과거의 행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 특정권력집단의 형성과 세습에서 벗어나는 길이 올바른 정치제도의 실현인 것이다. 정치발전의 본질은 개방적 구조의 실현에 있다.
정치제도의 개방성은 자발적인 시민들의 참여와 자각에서 비롯된다. 시민의 정치참여는 구조적인 문제가 수반되는 것이다. 다수가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가 어렵다는 물리적인 이유로 대의민주주의가 보편적인 제도로 정착하였지만 집단화 하는 정치권력이 정치적 개방성을 제한하는 수단으로 이용하여 온 것도 사실이다. 또한 선거제도가 제한적으로 작용하게 되는 부작용으로 선거를 치루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경제적인 이유가 구실이 되기도 하였다. 선거를 통해 얻은 권력은 변하지 않는 정당을 중심으로 집단화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 국가권력이 국민을 다스리는 시대는 사라졌다. 최소한 정치사상만큼은 이를 확실히 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는 이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실천하고 현실 사회에서 실현한다는 것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속가능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의 실현은 국민으로 하여금 정치에 관심을 갖고 이를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우선하여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이 적극적인 정치의 주체로 나서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란 사실은 인간이 정치적 동물이란 사실을 함께한다. 인간의 모든 사회적 활동은 정치행위를 기반으로 하고 생활 자체가 된다. 정치를 다스린다는 개념으로만 생각한다면 이는 선거를 통해 지배자를 뽑고 스스로에게 피지배자의 지위를 스스로 부여하는 수동적인 결과를 만든다. 권력을 위임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다음 선거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게 된다. 국민이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구조적 문제는 국민의 요구가 수시로 전달되어 반영될 수 있는 정치적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복잡해진 현대 사회는 다양한 이권과 집단적 이해로 구성되는 다수의 시민사회단체가 만들어졌다. 또한 이들의 지원을 받은 특정 정치집단과의 유대관계를 통해 권력화하기도 한다. 그러한 행위가 법적으로 정당성이 부여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집단이기주의는 노동운동을 비롯한 노동단체의 과격한 행동뿐만 아니라 보수기독교 단체의 극단적 정치행동과 업종 단체 등을 만들어 과격한 표현을 부추기는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이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는 대다수 국민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의사협회의 집단행동이 국민에 의해 저지된 사실이 있다. 이는 당장에 국민 개개인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모든 국민의 위기감에서 실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국민의 뜻이 언론에 의해 전달되는 과정을 거치며 언론권력에 의해 좌우되는 제도적 한계를 경험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의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의 확고한 기반 위에 있어야 한다. 실질적으로 정치인의 주민소환제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하고 IT와 방송통신기술을 통한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공청회를 통한 형식이 아닌 실질적인 의견을 수렴하고 모든 과정을 실질적으로 국민이 공유할 수 있는 제도가 확대되어야 하는 것이다.
민주정치의 실천적 구현은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 정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특정 집단의 무리한 요구를 통제할 힘을 가지고 있다. 이는 국민적 의사표현이 제도적으로 확대되어 국정과 지자체의 정책에 반영이 돼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국민의 정치적 관심은 일상생활 속에 주관적 의지로 살아 있어야 한다. 이는 개인차원에서도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보다 바른 삶을 살아야 하느냐는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다. 정치란 작게는 나와 나의 가족을 위해 존재한다. 이는 개개인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청와대 국민청원은 중요한 시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는 제도화 되어야 하고 단순히 일정 수의 청원에 답변하는 방식에 그치는 것은 형식적 정치행위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보다 많은 수의 청원에 대하여 이를 정부 또는 지자체 수준에서 정식적인 국민공청회 과정을 충분히 거치고 국회나 지방의회의 의결을 통해 국민에게 가부를 묻는 수준까지 고려되어야 한다. 여론조사의 왜곡이나 국민투표의 경제적 문제에 현실적 부담을 갖게 되는 문제점을 감안한다면 IT기술을 통해서 이에 대한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함이 옳을 것이다.
직접민주주의를 제한하는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그 하나는 물리적인 이유이고 또 하나는 포퓰리즘에 의한 대중 민주주의의 위험성 때문이다. 그러나 물리적인 이유는 IT기술을 통해 향후 충분히 개선될 수 있으며 대중 민주주의의 위험성은 충분한 국민공청회를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인내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대의민주주의의 유래는 공화정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공화정은 국가의 태동과 함께 다섯 개 도시국가가 연합하며 이루어졌다. 이는 유목민족의 부족연합체제와 유사한 것으로 기원전 15세기 아리안족에서 스키타이족을 거치며 흉노족, 몽골족, 투르크족 등으로 이어진 유목민족을 기원으로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부여, 삼한이 세 개의 연맹국가였다는 점과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이 5부족 연합체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각 국가마다 화백제도 등의 협의체를 발달시켰다는 점은 로마의 공화정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지금도 중앙아시아의 키르키스탄은 세 개의 다민족 연맹국가 형태를 유지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
직접민주주의를 최초로 정치제도화를 한 나라는 고대 그리스이다. 페리클레스시대의 황금기는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를 꽃피웠고 이는 이후 알렉산더에 의해 동방으로 전파되었다. 그리고 중세암흑기를 거친 유럽에 르네상스로 다시 부활하였다. 민주주의는 특정 지역이나 특정 시대의 산물이 아니다. 거석문화로 대변되는 신석기 시대의 말기에 태동한 정치권력은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통합과 협의문화를 만들었다. 정복전쟁과 약탈로 대변되는 유목민족의 이면과 태생에는 오랜 시간 이러한 사회제도를 기반으로 했던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정신은 인간의 사회통합과 그 태생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사회문명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오래된 인간 사회인 신석기문화와 청동기 문화가 지극히 원시적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늘날 인간의 착각일 수 있다. 신석기 시대 반구대 암각화를 보면 거대한 고래를 잡을 수 있을 만큼의 고도로 집단화된 바다사냥을 볼 수 있으며 한반도의 거석문화와 동북아시아 전역에 걸쳐 산재한 피라미드 문화는 고도로 발달된 사회가 1만 년 전 또는 훨씬 오래전에 형성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의 절대 권력이 등장하기 이전, 사회의 구성방식은 협의체의 발달이 우선되었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서양사와 근·현대사 중심의 세계관은 재조명되어야 한다.
지구 어느 곳이든 자연부락이 존재한다. 문명사회든 오지의 원시부락이든 그 사회에 오래된 전통에는 부락민으로 구성되는 협의제도가 존재한다. 사실상의 그러한 부족을 대변하는 촌장의 독단과 독재를 보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부족이 연합하고 거대 정치권력의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게 되어 억압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어 독재 권력이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민중은 이에 대하여 저항의 역사를 반복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화정과 직접민주주의의 출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출현과 인본주의 사상이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신화 속의 허구로만 생각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의 자연부락을 살펴보면 지금도 협의체 중심의 공동체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직접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주민자치가 만들어져야하는 당위성을 찾을 수 있다. 이를 토대로 도시문화는 자연부락의 공동체 문화를 수용할 수 있도록 재구성되어야 하고 자연부락은 도시의 개방적 다원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정치지도자는 용기 있는 사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열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권력은 최고의 봉사와 희생으로서의 자각이 필요한 것이다. 단순한 명예와 자신의 이권을 위해 권력을 탐한다는 것은 죄악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이 발달시킨 자본주의는 정치과 밀접한 고리를 가지고 집단화 하였다. 그리고 이를 제도적으로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분명히 하여야 하는 것은 우리가 지나온 과거처럼 그들을 배우기 위해 그들을 비교하고 그들을 기준으로 우리의 정치제도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우리가 재창조해야 할 때가 되었다. 자신의 이권과 결부되어 정치권의 권력을 차지하고 있다면 이는 국민의 힘으로 퇴출시켜야 한다. 새로운 대한민국은 많은 개발도상국의 표상으로서의 위치를 다지고 세계를 선도하는 책임을 가져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우리는 이제 우리 국민에게 신나는 목표가 제시될 수 있는 정치를 소망한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이룰 수 있는 현실정치라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