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일 차 / 레온~산 마르틴 델 카미노)
오늘(10.16)의 코스는 레온(Leon)을 출발하여 ▷ 라 비르헨 델 카미노(La Virgen del Camino) ▷ 산 미겔 델 카미노 (San Miguel del Camino) ▷ 비야당고스 델 파라모(Villadangos del Paramo) ▷ 산 마르틴 델 카미노(San Martin del Camino)까지 총 26.8km를 5시간 30분 동안 4만 2천 보를 걸었다. 레온을 빠져나오는 길은 교차로마다 신호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더디고 어수선하고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레온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하마터면 순례 길을 또 한 번 놓칠 뻔했다. 큰 도시에서는 순례길 노란색 화살표보다는 조개껍데기 모양을 보도블록에다 표시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 표지를 찾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약간 어두운 상태라서 더욱 그렇다.
레온시 외곽으로 나오자 숲 속에 포도주 숙성 창고들이 여기저기 웅크리고 있는 모습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이색 풍경이었다. 두 시간 정도 걷자 두 갈래 길이 나타났다.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걸어야 했다. 매연이 없는 길로 3km를 더 돌아갈 것이냐? 매연과 소음을 감수하면서 3km를 덜 걸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짧은 코스를 택해 갔지만 우리는 잘난 체하면서 처음으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 그 이면에는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2번 루트를 택해서 산 미켈 델 카미노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냐고 말하지 마라. 인적이 드문 숲길에서 30분 이상을 구글 맵을 켜고 방향을 찾으려 했지만 먹통이었다. 마침 지나가던 사냥꾼을 만나 길 안내를 받아야 했다. 사냥꾼 옆에서 송아지만큼이나 큰 그레이하운드가 나를 토끼로 알고 쫓아왔는데 사람이라서 실망했던지 계속해서 으르렁거렸다.
코엘료의 소설 ‘순례자’에 등장하는 개가 생각났다. 그 소설에서 개는 ‘악마의 화신’으로 상징되었다. 이 개도 어쩌면 나를 물어뜯어버릴 악마일지도 모른다. 나는 착한 체하면서 개에게 우호적인 표정과 자세를 취했지만 바짝 쫄아 들었다.
아내는 나보다 훨씬 더 쫄아들어 움직이지 못했다. 야성이 넘치는 개와 눈을 맞추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인정머리 없는 악마의 화신은 아내의 바지에 코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신상 털기를 멈추지 않아 아내를 바짝 얼어붙게 만들어 버렸다.
순례길에서 만난 스페인의 개들은 거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개들의 체형을 갖고 있었다. 나는 일단 그 등치 때문에 기가 죽어야 했다. 용서의 언덕에 있는 순례자 철제 조형물에서 개를 동반하는 모습을 보았다. 여성 순례자가 데리고 온 애완견은 어디서 잠을 잘까? 궁금하다.
미국에서 자동차 여행할 때 보니까 모텔이나 호텔에서 여행자와 동반한 개들을 따로 개집에 한 군데 모아놓자 낯선 환경 때문에 불안한 개들과 처음 만난 개들끼리 서로 적대감을 가지고 으르렁거리며 밤새워 짖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왔다는 애완견 견주인 여성에게 말을 걸고 물었다.
이 개는 어디서 잠을 자느냐고 물어보는 것이 나의 버킷리스트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개는 순례자와 함께 침대에서 자는지 따로 마련된 개집에서 자는지가 궁금해서 죽을 지경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나에게 “너의 생명의 은인이 되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대답인즉 개를 동반할 수 있는 알베르게를 골라 투숙하며 개 침대와 자기 침대를 마련하기도 하고, 한 침대에서 자거나, 반려동물 숙소가 따로 있는 경우에는 그걸 이용한단다. 대답 치고는 너무 상식적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는 궁금증에 목숨을 걸었던 내가 민망하기 짝이 없다.
사실 알라딘이라는 중고 서점에서는 개의 출입을 우회적으로 막고 있다. 문 앞에 출입자 경고문에는 -책을 읽을 줄 아는 개만 출입할 수 있다-는 취지의 안내문을 읽은 기억이 있다.
코엘료는 소설 <순례자>에서 개를 ‘악마의 화신’으로 풍자하고 있다. 왜 개를 그렇게 표현했을까? 하기야 우리네 가정에는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개만 보이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소설 ‘순례자’에서 "선한 싸움"과 "악마인 개"의 관계는 주인공 파울로가 내면의 도전과 싸우는 과정을 풍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파울로가 자신의 영적인 여정에서 마주하는 내부와 외부의 장애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묘사하고 있다. 소설에서 파울로는 순례길 도중 위협적인 개와 마주치게 된다. 이 개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파울로가 내면에서 직면하는 두려움, 불안, 그리고 자신을 방해하는 악마틱한 존재를 상징한다. 개는 그를 공격하려 하고, 이로 인해 파울로는 극도의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이 개는 파울로가 "선한 싸움"을 치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내면의 악마로 묘사되어 있다. 파울로는 개와 직면하면서 처음에는 두려움에 압도되지만, 이내 개와 싸우기로 결심한다. 파울로가 개를 물리치는 과정이 그가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는 과정이다. 개를 넘어서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승리가 아니라, 자신의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고 영적인 성장을 이루는 여정에 속한다. 코엘료는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전달하고 싶었다.
"선한 싸움"은 외부의 적뿐만 아니라 내면의 악마와 싸우는 과정이며,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고 극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순례길에서 고약한 개들을 만나게 된다. 험하게 생긴 개가 사납게 달려드는 가하면,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가출한 개들은 내게 먹을 것을 달라고 자꾸만 따라오는 거지 같은 개들도 있다. 그들을 쫒을 스틱으로 위협하면 따라오기를 포기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린다. 그들과 순례자들은 심리적인 싸움을 하면서 순례길을 서둘러 걷는다.
라 비르헨 델 카미노(La Virgen del Camino)는 레온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로, 가장 유명한 전설은 성모 마리아의 현현이다. 1505년, 목동인 알바로 시몽(Alvar Simón)이 이 지역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이 자리에 성당을 세우라고 명령했단다. 알바로는 성모 마리아의 지시에 따라 레온 성당의 주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알바로 시몽이 성모 마리아가 지시한 대로 성당을 세우는 과정에서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났다. 성모 마리아는 알바로에게 지팡이를 던지는 곳에 성당을 세우라는 지시를 받아 실행했다. 이 성당은 기적적인 치유의 장소로 유명세가 붙었다. 특히, 성모 마리아의 동상을 참배하는 동안 기적적인 치유가 일어났다는 증언이 많다. 이로 인해 이곳은 병자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순례자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주는 장소가 되었다.
매년 9월 15일, 라 비르헨 델 카미노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기리기 위한 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는 성모 마리아의 기적을 기념하며, 많은 순례자들들이 성당을 찾아와 기도하고 축복을 받는다. 축제 기간 동안 성당과 마을은 다양한 종교 행사와 축제로 사람들이 보여 들고, 이 지역의 신앙과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산 미겔 델 카미노(San Miguel del Camino) 마을의 이름은 성 미카엘 대천사(Saint Michael the Archangel)에서 유래되었다. 중세시대 이 마을은 성 미카엘 대천사의 보호를 받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지나가는 순례자들은 종종 도적이나 야생 동물의 공격을 받곤 했다. 성 미카엘 대천사는 강력한 힘과 용기를 발휘하여 많은 순례자들이 무사히 산티아고로 향할 수 있었다. 한 순례자가 산 미겔 델 카미노에서 기도하던 중 성 미카엘 대천사가 나타나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고 한다. 그는 오랫동안 병으로 고통받고 있었는데, 성 미카엘의 현현 후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 오늘의 목적지 마을인 산 마르틴 델 카미노(San Martin del Camino)는 산티아고 프랑스 순례길 위에 작은 마을이다. 중세 시대에 한 순례자가 이 마을을 지나는 도중 큰 어려움에 처했다. 그는 물과 음식이 부족해 거의 탈진 상태여서, 더 이상 걷기 힘들어졌다.
이때 성 마르틴은 순례자에게 물과 음식을 제공하고, 그의 상처를 치유해 주었다. 이 기적적인 사건 이후, 많은 순례자들이 이 마을을 지나며 성 마르띤의 도움을 기원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성 마르띤이 종종 이 마을에 현현하여 여러 순례자들에게 축복을 내렸다고 한다. 또한 중세 시대에 한 병든 순례자가 이 마을을 지나며 성 마르띤의 성상 앞에서 기도하던 도중에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성 마르띤을 기리는 축일이 매년 11월 11일에 개최된다. 이 축제는 마을 주민들과 순례자들이 함께 모여 성 마르띤의 기적과 축복을 기념하며, 다양한 종교 행사와 축제가 열린다.
우여곡절 끝에 산 마르틴 델 카미노에 도착해서 예약된 숙소를 찾아 체크인하고 저녁식사를 하러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식사 중인 순례길에서 안면을 익혔던 독일 친구들을 만나 나는 오늘의 무용담을 그들에게 들려주었고, 그들은 나에게 독일 영화 “나의 산티아고”를 추천해 주었다.
숙소에 돌아와서 PC로 율리아 폰 하인츠가 감독한 2015년 독일 영화 "Ich bin dann mal weg"(나는 길을 떠난다: 우리말 번역/ 나의 산티아고)를 보았다. 이 영화는 하페 케르켈링의 산티아고 여행기를 원작으로 하며,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따라가는 그의 여정을 담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한 후 귀국해서 국내에 번역된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은행나무, 2006)에 그의 35일간의 기행문을 읽었다.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며 부와 명예를 차지하고 있는 인기 코미디언 하페가 과로로 쓰러지면서 큰 수술을 받게 된다. 수술 후 갖게 된 긴 휴가가 낯설기만 한 그는 곧 무력감에 시달리게 되고 돌연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첫날부터 폭우와 허름한 숙소, 불면의 밤까지. 하페는 고통과 동행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주인공 하페는 길을 걷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그들의 사연을 듣고 인생 경험을 공유한다. 특히 Stella는 하페와 함께 걷는 동안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우정을 쌓아간다.
그녀는 과거의 트라우마와 상처로 인해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순례길을 걷는 동안 자신을 되찾고 치유하기 위해 노력한다. Lena는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인생의 방향을 정하기 위해 순례길을 걷게 되었다. 자신의 삶에 어떤 목적이 있는지 고민한다. 순례길을 걸으며, 그녀는 삶의 의미와 목표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는 하페와 함께하는 순례길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준다. 한편 Udo는 순례길에서 하페와 만나면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함께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겪는다. 그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와 압박감 때문에 순례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신의 삶의 목적과 방향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 그는 순례길을 통해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려 한다. Udo는 내면의 평화와 행복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그는 순례길을 걷는 동안 자신을 되돌아보고, 내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이들 등장인물들의 상호 작용은 하페에게 다양한 관점을 갖게 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페는 여정이 육체적으로 힘들 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의심의 순간에 직면하고 포기하려는 생각도 한다. 동료 순례자들의 지원과 사연, 고요한 풍경은 그가 계속 걷도록 영감을 준다. 하페의 주특기인 코미디적 연기에 힘을 얻은 이 영화는 유머러스한 에피소드가 가득 차 있다. 여기에 삽입된 여러 장면들은 분위기를 밝게 하기도 하고 순례길에서 나타나는 부조리와 예상치 못한 기쁨을 창조하기도 한다.
하페는 순례길 여정을 통해 두려움에 단호하게 맞서고, 삶의 우선순위를 재평가하며, 새로운 목적의식과 내면의 평화를 찾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는 코미디와 드라마를 섞어서 카미노 데티아고를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