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섹스와 커피와 담배를 즐기고 왔다. 많은 이슈가 있었지만 이제는 서로 덤덤해진 파트너와 함께 밤을 보냈다. 그는 나와 같은 브랜드의 담배를 피우고 나와 같은 커피를 마셨다. 저녁으로는 육회와 육사시미를 먹었다. 세 번의 섹스, 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리고 말보로 블랙후레쉬. 그는 말이 없다. 그게 편하다. 나는 잠이 든 그의 곁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며 킥킥 웃었다. 조르바가 미친 사람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춤을 추는 대목에서 나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며 커피를 연신 들이켜며 책을 읽다가 불을 끄고 그의 곁으로 갔다. 그의 머리에 내 머리를 대고 잠시 손을 잡고 있다가 몸을 떼었다. 나비잠을 잤다. 시트는 부드러웠고 잠자리는 편안했다. 완벽한 주말이었다.
나는 책과 음악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섹스와 커피와 담배를 사랑한다. 책상 위에는 언제나 콘돔과 조울증 약봉지가 굴러다니고, 컴퓨터 옆에는 커피와 책 한 권이 놓여져 있다. 얼터너티브 알앤비를 틀어놓고 나는 글을 쓴다. 왜, Cigarettes After Sex라는 밴드 있지 않나. 소위 말해 섹후땡인데, 이건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섹스 후엔 곧장 담배를 피운다. 우리 둘은 말이 없다. 커들링이나 후희도 없다. 마치 할 일을 마친 노동자처럼 우리는 말없이 담배를 피우고는 각자 할 일을 한다. 그는 눈을 감고 음악을 듣거나 자고, 나는 담배를 피우면서 책을 본다. 난 딱히 내가 섹스를 좋아하고 즐긴다는 걸 숨기고 싶지 않다. 뭐, 그렇다고 해서 동네방네 떠들 건 아니지만, 섹스로 풀리는 것들이 꽤 되기 때문에 난 이 관계를 멈추고 싶은 생각이 없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 관계에 대해서 많이 동요하고 감정적으로 휘말렸지만 이제는 사브리나 클라우디오의 노래 <Numb>처럼 몸과 마음이, 끝내 무감각해졌다. 마침내 그에 대한 마음이 가라앉고 온전히 섹스를 즐길 수만 있게 되었다. 이게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아니면 난 좀 더 늙은 건지, 성숙해진 건지 모르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내 섹스 라이프를 알았을 때 난 낡아 바래진 인간으로 비춰질지, 아니면 그냥 그저 그런 인간으로 비춰질지 말이다. 근데 남들 눈이 뭐 중요한가, 내가 만족했으면 됐지, 뭐.
책과 음악과 글쓰기를 사랑하지만 섹스와 커피, 담배를 좋아하는 느낌과는 좀 다르다. 책은 몰입하는 힘을 기르게 되고 음악을 들으면 정신이 순화되며 글을 쓰면 내 마음을 정돈하는 느낌이 든다. 셋 다 어쩌면 나를 단도리하는 작업이다. 근데 섹스와 커피와 담배는 좀 다르다. 그건 내뱉는다. 즉물적이다. 즉각 다가온다. 섹스가 주는 쾌락, 커피가 주는 환각, 담배가 주는 편안함. 마치 패스트푸드처럼 바로 섭취할 수 있는 것들. 따로 소화가 필요 없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풀린다. 빨리 해소된다. 특히 섹스는 살과 살이 맞닿는 데에서 고양되는 특별한 감각이 있다. 타인의 몸을 만진다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다. 한강이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썼던, '이상하다, 살아 있는 것과 닿았던 감각은. 불에 데었던 것도,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닌데 살갗에서 지워지지 않는다.'라는 구절을 떠올려 본다. 한두 번도 아니고 수백번을 몸을 섞었다. 그래도 그 사람을 만지고, 안고, 하나로 연결되는 감각은 정말이지 환상적이고 특별하다. 절대 잊을 수 없다. 잊혀지지도 않는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술에 취해 섹스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 느낌이 어떤지 궁금하지도 않다. 술에 취하는 것도 싫고 취한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다. 난 섹스와 커피와 담배면 충분하다. 완벽한 밤을 보내기에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사실 여기에 섹스 이야기를 올리지 않으려고 했다. 너무 개인사적인 일인 것 같아서 그랬는데, 어쩔 거냐, 나는 글을 쓰는 사람. 삶을 글로 옮기는 사람이다. 내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글로 옮기는 건 당연한 이치인 것을. '이혼한 주제에, 딸도 있는 주제에, 조울증을 앓고 있는 무직의 40세 여성 주제에' 파트너가 있고 커피와 담배를 즐긴다는 사실이 뭔가 타인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혼자 걱정한 건지도 모른다. 읽고 생각하는 것은 독자님들의 몫. 나는 그저 내 삶을 반추하고 정리해 글을 올리는 것뿐. (나는 브런치에 섹스, 커피, 담배를 검색해보기까지 했다-웃음)
그래, 기분 좋아서 글 쓰는 거 맞다. 섹스와 커피와 담배는 계속 즐겨왔던 거지만 어젯밤은 특별히 더 좋았다. 11월 중순치고는 포근한 날씨에, 호텔 안은 쾌적했고 그는 여전히 내 타입의 몸, 고양이 같은 그. 수백번이나 반복된 섹스지만 우리는 잘 맞다. 꿈속에서는 병원을 헤맸다. 며칠 사이에 입원한 환자 네 분이 돌아가셨다. 나는 새벽에 꿈 때문에 뒤척이다가 일어나 담배를 피우며 창밖을 바라봤다. 어슴푸레한 하늘, 비가 그친 풍경은 나를 쉽게 감상에 빠지게 했다. 옆에서 자던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남은 커피를 다 마시고 그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또 시작된 마지막 섹스, 그리고 또 담배. 그의 머리를 한번 뒤적이며 '잘 자'라고 속삭였다. 나는 씻고 뱀처럼 스르륵 호텔방을 기어나왔다.
예전에는 내 삶을 '하드보일드하다'거나 '잠들지 않는 여름' 같은 미사여구로 포장하길 좋아했다. 그래, 내 삶은 이런 스타일이지, 내 삶은 이렇게 가지, 하고 정의내리길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잘 모르겠다. 내 삶의 꼴이 어떤 형태인지, 어떤 색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정의내리고 싶지 않다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난 끊임없이 외로움을 탈 테고, 그 외로움에 대적하기 위해 여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낼 거다. 이 외로운 인간은 섹스와 커피와 담배에 기대어 하룻밤을 잘 보냈다. 누군가는 영화를 보며 울었을 테고 누군가는 자식을 꼭 끌어안고 잠에 들었을 토요일 밤. 당신들은 어찌 보내셨나요.
서두르지 않는다.
느긋하게, 즐기면서.
오늘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