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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Jun 21. 2024

뜨거운 여름과 찬란한 가을 사이, 따뜻한 사랑의 레시피

영화 <프렌치수프> 리뷰


트란 안 홍 감독의 <프렌치 수프>는 2024년 6월 19일에 개봉한 영화이다. 제76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었으며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며 마티유 뷔르니아의 <도댕 부팡의 열정>이라는 원작 만화를 각색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사람들의 요리 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찬란하고 완연한 계절의 환희를 느끼게 만든다.



사랑과 요리의 조화.


외제니와 도댕은 서로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20년 간 최고의 요리를 함께 만들어왔다. 도댕은 요리사 외제니를 사랑하고 그 마음을 표현하지만 외제니는 지금의 관계로도 충분하다며 결혼을 거절한다. 그래서 도댕은 오직 외제니를 위해 요리를 하며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다. 그 음식을 통한 마음이 전달된 듯 외제니는 그 마음을 받아들이고 곧 찾아올 가을에 결혼을 약속한다. 하지만 외제니가 이름도 모를 병에 걸리며 떠나게 되고, 그들이 함께하던 열정 가득했던 부엌이 죄책감으로 가득한 어둠에 잠기게 된다. 친구들의 도움도 거절하던 도댕은 제자로 받아들이기로 한 폴린과 함께하며 그 슬픔을 애써 감추고, 끝마치지 못했던 요리를 다시 완성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미완성된 요리의 퍼즐을 다시 맞춘 후 그녀와 함께 하기로 했던 그때 여름을 다시 떠올린다. 오랜 시간 지속될 수 없는 아픔이 담겨 있지만 그녀가 남겨둔 부엌에는 여전히 따스한 햇살이 비추고 있음을 알려준다. 환희로 가득한 그녀와의 사랑을 다시 마주할 수는 없지만 그토록 열망했던 열정을 되찾는 순간이었다. 도댕은 어떤 요리를 다시 선보이게 될까.



부엌을 벗어나면 보이는 그녀의 뒷모습.


외제니에게 있어서 부엌은 자유의 공간이다. 영화에서는 계급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지 않지만 1885년의 프랑스와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남성들의 모습을 통해 시대적 배경을 추측할 수 있었다. 외제니에게 있어서 부엌은 평등함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기 때문에 부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결혼을 통해  변화하게 될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들어갔다면 좋았겠지만 이 영화는 이들의 사랑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둔 영화다. 그리 도댕이 외제니를 대하는 태도를 중점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존중과 이해를 두드러지게 표현하고 있다. 부엌을 벗어나도 도댕과 함께 한다면, 뜨겁게 타오르는 여름의 불꽃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말을 건네지 않아도 전해지는 진심 어린 존중.


많은 대화가 오가지 않아도 서로에게 익숙하게 배어 나오는 존중의 태도가 아름답게 그려진다. 밭에서 채소들을 선별해서 요리에 들어갈 재료들을 다듬어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하나의 요리를 완성하는 과정을 모두 담았다. 만든 이의 노고와 정성을 한껏 느낀 후, 먹는 이의 감상과 감사함 또한 마주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들이 요리를 함께하며 지내온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쌓아온 마음은 어느 순간 넘쳐흘러 인생의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 처음엔 그 사랑의 무게에 망설였고 주저하게 되는 순간도 있었으나 그 이후 익숙함의 경계를 넘어 따뜻함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찬란한 여름의 불꽃을 사랑하는 여자와 풍성한 가을의 환희뿐만 아니라 사계절을 사랑하는 남자가 만나 사랑을 나눈다. 무엇보다 그들의 배려와 존중으로 둘러싸인 관계라는 것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장면은 외제니와 도댕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드러난다. 당신은 내가 요리사라고 생각하나요? 아내라고 생각하나요?라는 말을 건넸을 때, 도댕은 요리사라고 답한다. 그 말에 웃음을 지으며 끄덕이는 외제니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많은 말이 오가지 않아도 인물들의 표정, 몸짓, 눈빛 속에서 드러나는 배려와 존중 그리고 존경의 태도를 통해 사랑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특별한 말을 건네지 않아도 거뜬히 전해지는 음식이라는 기쁨.


외제니의 죽음 후 도댕의 삶에 초점을 맞춘 원작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외제니와 도댕이 함께 일한 시간에 초점을 맞춘다. 그렇게 간단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음식과 사람의 관계를 적절하게 이으며 사랑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끊어지는 이야기 속에서도 단단한 이음새를 가진 이 영화의 매력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당연함과는 먼 이야기가 그려지며 서로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강조하고 음식을 통해 풍족한 마음을 적절하게 담아낸다. 음식에 담긴 기억들이 쏟아져 나오지는 않지만 다양한 음식들을 통해 그들에게 있어서 음식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영화의 단 한 가지 단점은 그 맛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리를 통해 교감을 나누고 관계를 맺는 따뜻한 이해의 과정을 통해 직접 요리를 맛보지 않아도 그 정성이 화면 너머에도 전해진다. 영화 너머로 음식 냄새가 풍겨오며 입에는 침이 고이고 배에는 꼬르륵 소리가 들린다. 영화사에서 왜 공복에는 관람을 자제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오랜 여운이 남는 이 영화를 여름 감기를 앓는 중에 봐서 더 따뜻하게 다가온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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