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드레 Oct 29. 2024

자극에 무감각해진 시대 속 알 권리와 진실의 경계.

영화 <레드 룸스> 리뷰


알렉스 그리핀이 연출한 <레드 룸스>는 2024년 10월 9일에 개봉한 영화이다. 제27회 판타지아 영화제에서 장편영화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사운드트랙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 영화는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다. 현대 사회의 딜레마와 자극에 무감각해진 현실을 반영하며 현대 사회 문제에 대한 예술적 답변을 담아낸 영화이다.



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슈발리에 사건의 첫 번째 공판이 본격적으로 열리며 영화가 시작된다. 루도빅 슈발리에는 10대 소녀 3명을 끔찍하게 살해하고 그 영상을 생중계하여 다크웹에서 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서게 됐다. 다크웹을 통해 유통된 영상이 유출됐고 세 개 중 두 개를 경찰이 입수하며 증거를 확보했고, 이를 분석한 전문가들이 범인으로 슈발리에를 지목한 상황이다. 켈리 앤은 모델이자 해커로 한 재판에 매회 방청하고 그곳에서 슈발리에를 추종하는 클레멘타인을 만나게 된다.



영화는 재판 과정이 아닌 켈리 앤의 시선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그녀는 어떤 편에도 서있지 않으며 로봇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감정이 없다. 하지만 심상치 않은 인물임은 틀림없다. 극악무도한 범죄자인 슈발리아의 사건에 집착하는 모습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영화에서는 그녀가 왜 슈발리에 사건에 관심을 두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관찰자의 시점으로 사건을 바라보며 범죄 동영상이 널린 다크웹사이트 '레드룸'에서 무언가를 찾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충격적인 영상을 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왠지 그녀와 이 사건이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분명 모호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하이브리스토필리아로 추정된다. 하이브리스토필리아는 성적도착증 중 하나로 중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심리적 이상 증상이다. 이유를 없는 이 증상을 겪던 켈리 앤은 스스로도 그를 자각하지 못한 듯하다. 그런 소극적인 켈리 앤과는 다르게 클레망틴은 슈발리에를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비슷함을 느낀 사람은 점차 가까워지게 된다. 그러나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며 내면의 확신 또한 흔들린다.



납치와 감금 살인, 상해를 동반한 성폭력, 시체 모욕과 음란물 제작 및 배포 혐의를 받고 있는 슈발리에 사건. 피해자를 담은 끔찍한 영상은 아직 남아있지만 누가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변호사의 말처럼 추측이 확신이 될 수는 없다. 사실 관계가 확실한지 따져보아야 하며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의 정확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죄목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넘치는 피해자 착취 영상이 공개되기 전과 후가 명확히 나뉘는 순간이 인상 깊다. 그를 옹호하는 이와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차례대로 보여주면서 사건의 진실보다는 자극적인 정보를 아무런 비판 없이 소비하는 현대 사회의 이면을 드러낸다



<레드 룸스>는 현시대를 잘 반영한 영화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불편함을 야기한다. 자극적인 소재임에도 영화는 결코 자극적이게 보이지 않는다. 실체를 감췄지만 명확하게 드러나는 다크웹의 잔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도 않고, 피해자들이 죽어가는 영상을 전시하지도 않는다. 폭력적인 장면 없이 끔찍한 사건을 표현하고 있음에도 불편함은 오히려 다른 곳에서 드러난다. 바로 켈리 앤을 통해서다. 모델로서의 활동과 해커로서의 활동을 동시에 유지하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겉모습으로는 그녀를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릇된 욕망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지만 그 시선이 범죄자로 향할 줄이야. 켈리 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매혹되지 말아야 할 것에 매혹되고 자극적인 것을 추구한다.

 

켈리 앤을 마냥 비난할 수 없는 이 불편한 진실은 클레망틴의 변화하는 태도를 통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녀가 믿고 있었던 진실이 사실이 아님을 깨달으며 확신이 무너지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그녀가 혼란과 공포를 겪은 것은 사건에 대한 두려움도 있겠지만 이 영상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캘리 엔을 보고 나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포커는 괜히 등장하는 소재가 아니다. 캘리엠이 포커를 통해 돈을 벌고 그것을 통해 불법 영상물을 구매하기도 한다. "감정도 자제해야 하고 감정적인 선수를 찾아서 그걸 이용해야 해요. 기다리고 인내하면서 말려 죽이는 거죠. 전부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 좋아요."라는 말처럼 이 사건에도 반영된다. 켈리 앤이 포커를 통해 승부를 순식간에 뒤집었던 것처럼 이 사건 또한 켈리 앤으로 인해 순식간에 뒤집힌다.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완벽한 증거로 인해. 



영화는 알 권리라는 딜레마와 자극에 무감각해진 현대사회에 일침을 가하며 범죄에 매혹되기 쉬운 사회로 변질되고 있다고 말하는 감독의 메시지를 담았다. 영화의 초반부는 시종일관 답답함을 느끼게 만들지만 후반부에서 그 불편한 진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충격에 빠뜨린다. 그녀를 관찰하는 시선이 나를 향하는 것을 느끼며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단순하지 않고 복잡 미묘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만큼 쉽게 결론 낼 수 없는 묵직한 찝찝함을 남긴다. 법과 정의와는 거리가 먼 것에서 찾아오는 진실이 정의에 가까워지는 모순되는 상황을 통해 익명이라는 이름으로 '정의'가 얼마나 손쉽게 이루어졌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베놈, 매력적인 녀석의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하다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